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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18호 2021년 5월] 오피니언 관악춘추

코로나 1호가 될 순 없어

정성희 모교 관훈신영기금교수, 본지 논설위원
관악춘추

코로나 1호가 될 순 없어



정성희

국사 82-86
모교 관훈신영기금교수
본지 논설위원


‘1호가 될 순 없어’라는 제목의 TV 프로그램이 있길래 도대체 무슨 1호인가 했더니 ‘이혼 1호’란다. 개그맨 커플들이 유독 이혼을 하지 않고 잘 사는 이유를 보여주는 예능이라는데 나도 ‘1호’가 되기 싫은 게 있다. 나뿐 아니라 국민 모두가 되기 싫은 건 ‘코로나 감염 1호’다.

국내 코로나 확진자가 13만명에 이르며 코로나 바이러스가 사방에서 죄어오는 느낌이다. 재채기를 하거나 가려움증만 있어도 감염된 것 같고 체온이 36.5도만 넘어도 화들짝 놀라게 된다. 누적 검사자수가 900만명을 넘었으니 국민 다섯 명 중 한 명이 코를 찔려본 셈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가족과 직장, 들렀던 공연장이나 결혼식장에서 ‘1호’로 감염되긴 정말 싫다.

얼마 전 점심 겸 회의를 한 다음날, 회의 참석자한테서 떨리는 목소리로 전화가 왔다. “사무실 동료가 확진되었는데 그 친구와 마스크 쓴 채로 4차례 얘기를 했다. 나도 지금 검사를 받고 있으니 선배도 외출을 자제하고 기다려 달라.” 내가 아픈 건 둘째이고 이틀간 이런저런 이유로 마주친 사람은 어찌할 것인가. 잠깐이지만 앞이 하얘졌다.

한때 모범으로 칭송받았던 우리나라 방역은 사회적 거리두기와 감염자에 대한 동선 추적을 특징으로 한다. 지난해 2월 정부는 확진자의 동선을 공개했고 12월에야 성별 나이 국적 거주지 등 개인정보 공개를 금지했다. 지난해 5월 이태원 클럽발 코로나가 터진 후 1호로 지목된 학원 강사는 여론의 뭇매를 맞았고 정부는 휴대전화 기지국 접속정보를 뒤져 개인에게 검사를 받을 것을 종용했다. 심지어 한 지자체는 “코로나 청정지대라는 자부심에 상처를 줬다”는 이유로 코로나에 걸린 공무원을 직위해제하기도 했다.

이러한 시스템은 방역을 위해서는 인권은 희생될 수도 있다는 공감대가 있어 가능했지만 이제 그로 인해 잃어버린 것들도 나타나고 있다. 많은 사람들이 사회적 낙인과 피해에 두려움을 느끼고 있고 개인에 대한 국가의 통제는 무서울 정도로 커지고 있다. 한국인 최초의 유엔 자유권위원회 위원인 고려대 서창록 교수는 ‘나는 감염되었다’라는 저서를 통해 “유엔학회를 참여하기 위해 뉴욕으로 출국했다가 코로나에 감염된 뒤 사회에서 존엄성과 인격이 있는 인간이 아닌 ‘해외에서 바이러스를 묻혀온 보균자’로 낙인찍혔다”고 고백한다.

유럽이나 미국의 초기 방역 실패는 그 나라가 못나서가 아니라 개인의 자유와 인권을 제한하는 정책을 시행하지 못했기 때문이었다. 개인의 동선을 추적할 수 없기에 대신 봉쇄령을 내린 것이다. 스위스는 만12세 이하 어린이에 대한 마스크 착용을 아동에 대한 인권침해로 규정해 마스크를 벗도록 했다. 그 대가가 감염 확산일지라도. 그러니 국가는 무엇으로 방역을 하는가에 대한 답은 나온 셈이다. 미국은 과학(백신), 중국은 군대, 한국은 낙인으로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