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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60호 2024년 11월] 오피니언 관악춘추

노벨상과 서울대

임석규 (언어84-91) 한겨레신문 선임기자 본지 논설위원


노벨상과 서울대


임석규 (언어84-91)
한겨레신문 선임기자
본지 논설위원

 

작가 한강이 올해 노벨문학상을 받았다. 2000년 김대중 대통령의 노벨평화상에 이어 국내 두 번째 노벨상이다. 노벨상에 대한 한국인의 집착엔 유난스러운 데가 있다. 이제 그 상을 두 개나 갖게 됐으니, ‘노벨상 갈급증이 해소됐을까.

그럴 리가 없다. 문학상, 평화상을 탔으니 다음은 과학상 차례란 말들이 슬슬 흘러나온다. 노벨상 중에서도 물리, 화학, 생리의학 분야를 통틀어 과학상이라 부른다. 경제 규모로 따지면, 한국이 과학상 수상자를 배출하지 못한 게 이상할 정도다. 국내 총생산(GDP)이 우리보다 낮은 여러 나라에서 과학상 수상자가 나왔다. 1인당 GDP 34위인 일본은 25명이 과학상을 받았는데, 31위인 한국은 아직 수상자가 없다. GDP 대비 연구개발(R&D) 투자 비율(5.2%)이 세계 2위인데도 그렇다. 어쩌겠는가, 과학상은 경제 순이 아니다.

돈뿐만이 아니라 절대적인 투여 시간도 중요하다. 일본은 1949년 첫 과학상 수상자를 배출했다. 1868년 메이지유신 이후 80년 넘게 걸렸다. 일본에서 과학상 수상자가 집중적으로 나온 시기도 2000년대 이후다. 100년 이상의 기초과학 투자가 그 밑바탕이었다. 인위적 단기 부양책으로 받을 수 있는 노벨과학상이 아니다.

서울대도 은연중 노벨상에 대한 갈증을 드러내 왔다. 노벨상 육성 기금도 있고, 한동안 거액을 제공하며 노벨상 수상자 모시기에 공을 들였다. 2011년 노벨경제학상 수상자 토머스 사전트도 그중에 한 사람이다. 그는 1년 만에 서울대를 떠나면서 노벨상을 돈으로 사려는 것 같아 위험하다고 꼬집었다. “한국의 노벨과학상 콤플렉스엔 과학기술 수준에 대한 사회 내부의 자신감 부재가 드러나 있다.” 한국연구재단이 2018년 낸 노벨과학상 종합분석 보고서에 나오는 문장이다. 서울대도 예외가 아닌 것 같다. 조급하게 서두른다고 나올 과학상이 아니다.

지금 생각하면 황당하게 보이지만, 2005년 노벨과학상 후보감 1위는 황우석 당시 서울대 석좌교수였다. 한국과학문화재단이 대학교수와 국책기관 연구원, 의사 등 전문가를 대상으로 벌인 설문조사였다. ‘황우석 노벨상 추진단까지 꾸린 시절이었다. 당시의 사회적 파문도 노벨상에 대한 한국 특유의 안달이 빚어낸 한바탕 소동이었다.

다양한 분야에서 연구 성과가 쌓이면서 요즘엔 서울대인 중에 노벨과학상 후보로 이름이 오르내리는 인물이 제법 있다. 서울대 김빛내리 석좌교수, 현택환 석좌교수가 대표적이다. 이상엽 한국과학기술원(KAIST) 특훈교수, 유 룡 한국에너지공대 석좌교수, 박남규 성균관대 교수 등 과학상 후보로 꾸준히 거론되는 인물들이 모두 서울대 출신이다.

노벨과학상은 뛰어난 성취를 이룬 연구에 주어지는 보상이지 그것 자체가 목표일 수는 없다. 서울대의 과학적 토양이 비옥해지면 그 결과로서 자연스럽게 서울대인이 과학상을 수상할 날도 올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