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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50호 2024년 1월] 오피니언 관악춘추

‘진리는 나의 빛’ 로고 교체 어떤가

임석규 한겨레신문 선임기자·본지 논설위원

‘진리는 나의 빛’ 로고 교체 어떤가


임석규
언어84-91
한겨레신문 선임기자·본지 논설위원


‘진리는 나의 빛(Veritas Lux Mea)’이란 문구를 모르는 서울대인은 없을 것이다. 펜과 횃불, 월계관 문양과 함께 펼쳐진 책의 양쪽에 새겨진 서울대 모토 얘기다. 유홍림 서울대 총장이 이 고답적인 라틴어 문구에 이의를 제기하고 있다. 지난해 8월 유 총장을 만난 자리에서 이 얘기를 처음 들었을 때 고개가 끄덕여졌다. 유 총장은 이후 언론 인터뷰에서도 이 의견을 공식화했다.

“이 시대에 맞는가.” 유 총장의 의문은 여기서 시작됐다고 했다. 문구에 담긴 이성 중심 교육관, 개인주의적 세계관으로 지금 같은 불확실성 시대, 정답이 없는 혼돈의 시대를 헤쳐나가기 어렵다고 판단했다는 거다. 이 문구에선 어쩐지 고립무원의 상아탑에 틀어박혀 면벽 수행하는 창백한 중세 수도사의 그림자가 어른거린다. 끝없이 생성, 변형하는 세계에서 절대불변의 진리 추구가 가능한지도 의문이다. 그렇지 않다는 걸 과학 발전의 역사가 웅변한다. 

유 총장은 펼쳐진 “책의 페이지를 넘기자”고 제안했다. 책의 왼편에 ‘진리는 나의 빛’이란 문구를 살리되, 오른쪽엔 새로운 가치를 추가하자는 거다. 구체적 문구도 내놓았다. ‘아펙투스 클라모르 노비스(Affectus Clamor Nobis), ‘열정은 우리의 함성’이란 의미다. ‘진리와 열정’의 병립에, ‘나의 빛과 우리의 함성’의 조합이다. 이성과 감성, 나와 우리, 시각과 청각을 두루 아우른다. 물론, 로고, 문양 교체가 쉬운 일은 아니다. 여러 층위에서 다양한 의견 수렴도 필요할 것이다.

서울대는 과거 명성에 안주할 수 있는 처지가 아니다. 올해 수시모집에서 서울대에 최초 합격한 10명 가운데 1명은 등록을 포기했다고 한다. 수험생 2181명 가운데 228명이니 10.5%다. 대부분이 자연계열 학생인데, 입시 전문가들은 다른 대학의 의대, 치대 등으로 진학한 것으로 풀이했다. 지난해 미등록 비율도 9.4%였으니 일시적 현상으로 보긴 어렵다.

이런 흐름은 서울대가 안고 있는 문제를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확실한 미래 비전을 보여주지 못하고 있다는 얘기다. 서울대 책임만은 아니더라도 꼬인 매듭을 풀어나갈 실마리는 서울대가 마련해야 한다. 차제에 고만고만한 변화가 아니라 담대한 전환을 꾀해보는 건 어떨까 싶다. 유 총장도 지난해 취임 일성으로 “서울대의 대전환을 이루는 혁신에 헌신하겠다”고 다짐했다. 시대에 맞게 문양과 로고를 바꾸는 일이 그 첫걸음이 될 수도 있지 않을까 생각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