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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53호 2024년 4월] 오피니언 관악춘추

고령 사회 대비 의대생만 늘려서 될 일인가

홍지영 SBS 선임기자·본지 논설위원 

 

고령 사회 대비 의대생만 늘려서 될 일인가


홍지영
식품영양87·불문89-93
SBS 선임기자·본지 논설위원 

 

대학에서 첨단 공학 분야를 전공했던 친구 한 명은 얼마 전 이런 한탄을 했다. 사람의 생명을 다루는 의사와는 또다른 의미 있는 일을 하고 싶어서 의대 진학이 아닌 다른 길을 택했는데, 이럴 줄 알았으면 의대를 갈 걸 그랬다고. 졸업 후 대기업에 입사해서 높은 자리까지 오르긴 했지만 결국 월급쟁이로 은퇴를 앞두고 있던 시점이었다. 그 친구는 아마도 세계적인 과학자가 되거나, 발명가가 되는 꿈을 품고 의대가 아닌 공대를 지원했을 거다. 내가 입학할 당시만 해도 공대의 몇몇 첨단 분야와 자연대의 몇몇학과는 의대보다 커트라인이 더 높았다. 적어도 그 학과에 지원하는 친구들은 의대를 갈 수 있는 성적이지만 기초 과학 분야에서, 첨단 공학 분야에서 꿈을 펼치고 싶다면서 의대를 지원하지 않는 경우가 많았다. 하지만 우리나라의 현실은 그런 친구들이 이제와 후회하는 상황이 됐다. 서울대에 합격했지만, 의대를 가기 위해 입학을 포기하는 학생이 늘어난 지 이미 오래. 이런 가운데 의대 정원을 늘리겠다는 정부 발표로 온 나라가 진통을 겪는 상황까지 온 거다. 초등학생을 둔 부모들 사이에서 벌써부터 지방 어디로 가야 의대 진학이 유리한 지 따지며 전학을 고민하는 집들도 많다고 한다.

고령화 사회로 인한 학령 인구 감소로 정부가 대학 구조 조정 작업을 벌이고 있는 상황에서 대학의 정원을 늘리는 것은 하늘의 별따기다. 이런 때 의대 정원을 늘리겠다고 하니 대학 입장에서는 절호의 찬스가 된 셈이다. 어디나 마찬가지겠지만 대학 역시 사람 수는 경쟁력과 직결된다. 서울대는 졸업 정원제로 정원을 대폭 늘렸다가 연구 중심 대학 육성이라는 정책에 따라 학부생을 대폭 줄여야 했던 것에서 보듯 국가 정책에 더 크게 좌우될 수밖에 없다. 최근에는 반도체 전쟁이 전세계적으로 치열해지면서 정부가 수도권 대학의 첨단 분야 학부생 증원을 허용했고, 덕분에 서울대도 이 분야에서 입학 정원을 약간 늘릴 수 있었다. 의대 정원을 늘리는 것이 고령화 사회에 대비해 필요한 조치라면 관련 분야 역시 인력 증원은 필요하다. 고령화 사회와 관련된 노인 복지 분야 등, 우리가 대비해야 할 분야가 한둘이 아닐 것이다. 그런 분야에서 서울대의 우수한 두뇌 집단이 앞장서면 좋겠다. 꼭 필요한 연구를 위해서 대학의 연구 인력도 늘리고, 이를 계기로 서울대의 국제 경쟁력도 한 단계 높일 수 있는 기회가 됐으면 더더욱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