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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58호 2024년 9월] 오피니언 관악춘추

종합화 50주년에 거는 기대

강경희 (외교84-88) 조선일보 논설위원 본지 논설위원

종합화 50주년에 거는 기대


강경희 (외교84-88)
조선일보 논설위원·본지 논설위원

1975년의 대한민국은 두려울 것도, 거칠 것도 없는 청년 같았다. 1945년 광복, 1948년 정부 수립, 그리고 19503년의 전쟁으로 폐허가 된 동아시아의 빈국(貧國)1960년대에 경제 개발의 시동을 걸고 매년 두자릿수 성장률을 기록하면서 전속력으로 달렸다.

그 해, 서울의 남쪽 경계 우뚝한 관악산 기슭에 또 하나의 역사가 등장했다. 동숭동 캠퍼스의 이전을 시작으로 관악 시대가 막을 열었다. 서울대 종합화 원년이었다. 1975년에 수출 50억달러를 막 돌파하고 1인당 국민소득은 아직 1000달러도 안 되는 나라가 꿈은 원대했다. 세계적인 대학을 만들겠다며 세계 어디 내놔도 뒤지지 않을 거대한 캠퍼스 타운을 조성했다. 지난 반세기, 관악의 역사는 대한민국의 약진과 궤를 같이 해왔다. 오늘의 대한민국을 건설하는 대 역사(役事)에 관악이 배출한 숱한 인재들이 크고 작은 기여를 한 사실을 누가 부인하겠는가.

반세기가 지난 지금, 거대한 캠퍼스 타운의 서울대는 지극히 당연한 모습으로 받아들여지지만 쉽게 이뤄진 꿈은 아니었다. 창건 이래 서울대의 가장 큰 한계는 서울과 경기 일대에 뿔뿔이 흩어져 연합대학처럼 존재한다는 사실이었다. 1960년부터 종합화의 밑그림을 여러 차례 그렸다. 1960년의 종합화 7개년 계획, 1962년 수정된 종합화 5개년 계획, 1966년의 종합화 6개년 계획 등이 있었다. 전부 기존 시설을 활용해 메인 캠퍼스를 동숭동으로 설정하는 종합화 계획이었다. 그것이 새로운 부지에 광활한 캠퍼스로 바뀐 데는 세계적인 대학을 만들겠다는 박정희 대통령의 의지가 강하게 작용했다. 정부 주도의 종합화 10개년 계획이 19684월 국무회의 의결을 거쳐 국회에서 통과됐다. 19702월 관악산 기슭이 캠퍼스 부지로 선정됐고 아카데믹플랜을 공간에 구현하는 마스터플랜이 197112월에 공식 확정됐다. 주요 단과대학들의 관악 캠퍼스로의 이전은 1단계 조성사업이 끝난 1975121일부터 이뤄졌지만 공대는 1980년대, 농대와 수의대는 2003, 보건대학원은 2010년에 이전을 완료했을 정도로 오랜 세월에 걸쳐 진행된 초대형 프로젝트였다.

공간은 사유 체계를 바꾼다. 거대한 캠퍼스 타운은 단순히 건물들의 집합체가 아니다. 2025년 종합화 50주년을 앞두고 유홍림 총장은 과학 기술이 연결되는 대전환의 시대에 앞으로 필요한 역량, 미래의 불확실성에 대처하는 능력은 융합에서 나온다. 모든 학문 분야가 다 있어 이러한 과제 수행을 할 수 있는 혁신 생태계의 토대가 바로 서울대에 있다고 종합화에 각별한 의미를 부여해왔다. 이에 맞춰 올 3월에 융합 인재 양성을 위한 첨단융합학부를 출범했고, 내년 31일에는 학부대학도 출범시킨다.

융합의 플랫폼, 그 씨앗은 반 세기 전인 1975년에 뿌려졌지만 아직 완성본은 아닌 듯싶다. 캠퍼스는 광활하지만 구성원의 사고는 그동안 단과대의 작은 건물에 갇혀 분열되고 단절된 것은 아니었을까. 2025년 종합화 50주년을 계기로 그 의미를 곱씹어 보면서 서울대가 종합화의 혁신적 완결본인 융합의 플랫폼으로 거듭나는 원년으로 삼았으면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