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62호 2025년 1월] 오피니언 관악춘추
정치는 성적순 아니다
이용식 (토목공학79-83) 문화일보 주필, 본지 논설위원
정치는 성적순 아니다
이용식
토목공학79-83
문화일보 주필·본지 논설위원
이코노미스트(The Economist)가 발간한 ‘2025 세계 대전망’ 머리말의 마지막 문장은 ‘어떤 놀라움이 기다리든 간에’이다. 깜짝 놀랄 일이 많을 테니, 삶의 안전벨트를 단단히 매고 처변불경(處變不驚) 태세를 유지하라는 충고다. 책자가 발행된 다음 날 밤에 비상계엄 선포와 해제가 이뤄졌으니, 그 예언을 한국이 곧바로 입증한 셈이다. 이코노미스트 전망이 아니더라도 변화의 쓰나미를 예상하기는 어렵지 않다. 미국 프랑스 독일 일본 캐나다 등 선진국 정치도 한결같이 불안하다. 우크라이나 전쟁과 중동 분쟁은 어디로 튈지 알 수 없고, 세계는 다시 군비 경쟁시대로 접어들었다. 보호무역주의와 미·중 갈등에다 인공지능(AI) 시대는 질적 도약과 거품 붕괴의 변곡점에 직면할 것이다.
세상이 어지러울수록 서울대의 무게중심 역할이 더욱 중요해진다. 마침 산지사방 흩어져 있던 단과대학들이 관악캠퍼스로 통합된 지 50년 되는 뜻깊은 해를 맞았다. 서울대와 동문이 받은 혜택을 잊어선 안 된다. 1971년 관악컨트리클럽 부지에 종합 캠퍼스를 기공할 때에도, 2011년 국립대학법인으로 전환할 때도 국가의 도움을 받았고, 지금도 매년 수천 억원씩의 예산을 지원받는다. 미국 도움도 받았다. 1946년 미 군정청은 국대안 반대 투쟁에도 불구하고 국립 서울대학교 설립을 강행했고, 미국 정부는 6·25 전쟁의 폐허 위에서 미네소타 프로젝트로 현대식 대학으로 변모할 수 있게 해주었다.
그만큼 책임도 무겁다. 관악캠퍼스 기공식 때 발표된 정희성 동문의 ‘여기 타오르는 빛의 성전이’ 축시가 표현한 그대로이다. ‘가슴에 서리담은 민족의 대학, 불처럼 일어서는 세계의 대학’을 축원하면서 ‘누가 조국으로 가는 길을 묻거든 눈 들어 관악을 보게 하라’고 했다. 실제로 어느 분야 할 것 없이 서울대 출신의 수많은 인재가 각계에서 탁월한 성취를 이뤄냈고, 지금도 그렇게 하고 있다.
그런데, 최근 윤석열 대통령 문제는 정파를 떠나 동문 모두를 안타깝게 한다. 김영삼 전 대통령에 이어 서울대 출신으로는 두 번째로 선출된 대통령이다. 대통령 권한대행을 수행하던 중 탄핵소추된 한덕수 국무총리와 2차 대행을 맡은 최상목 경제부총리도, 여당의 한동훈 전 대표와 권영세 비상대책위원장도 동문이다. 모처럼 서울대 출신으로 국정 최고책임자가 된 윤 대통령이 잘 해주기를 바랐지만, 현실은 달랐다. 정치는 대학순도 성적순도 아니었다.
김영삼 전 대통령은 ‘머리는 빌릴 수 있어도 건강은 빌릴 수 없다’고 했다. 김 전 대통령을 직접 취재한 젊은 시절 필자는 당시에 의아하게 생각했지만, 이젠 고개를 끄덕인다. 직책이 높을수록 더 적극적으로 다른 사람과 소통하고 경청하면서 지혜를 구해야 한다. 이것이 대통령을 시험이 아니라 선거로 뽑는 이유일 것이다.
우스갯소리로 ‘서울대 3대 바보’가 있다. 서울대입구역에서 서울대 입구까지 걸어가는 사람, 고등학교 때 전교 1등이었다고 자랑하는 사람, (재미없는) 서울대 축제에 열심히 참가하는 사람이다. 공부만 잘하면 다른 일도 잘한다고 생각하는 4번째 바보가 추가되지 않기를 소망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