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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17호 2021년 4월] 오피니언 관악춘추

경제적 자유를 얻는다는 것

지나온 길을 돌아보는 시간도 필요
관악춘추

경제적 자유를 얻는다는 것



박종성
서양사82-86
경향신문 논설위원
본지 논설위원


여러 해 전 일이다. 대법관을 지낸 이가 퇴임 후 작은 편의점에서 일하는 장면이 목격됐다. 부인이 운영하던 곳에서 점퍼를 입고 일하는 모습이 카메라에 찍힌 것이다. 사람들이 놀랐다. 대법관을 지낸 뒤에는 많은 보수를 주는 유명 로펌에 들어가는 게 일반적이기 때문이다. 부귀영화를 버리고 소박한 생활로 돌아간 것에 존경을 표했다.

6개월 뒤 새로운 기사가 실렸다. 그가 편의점을 그만두었다는 것이었다. 이유를 물었다. 그는 “무항산 무항심(無恒産 無恒心)”이라고 답했다. 거칠게 해석하자면 ‘돈이 없으면 바른 마음을 견지하기 어렵다’는 뜻이다. 더 줄이면 ‘돈이 필요했다’는 말이다.

자고이래로 재물욕은 줄어들지 않았다. 달라진 게 있다면 예전에는 욕심을 겉으로 드러내는 데 주저했으나 요즈음에는 숨기지 않는다는 것이다. 세상이 변했으니 나쁘다고 할 수도 없다. 서점가에는 재테크 서적이 베스트셀러 상단에 오른다. 해외의 전설적인 주식투자가, 국내에서 많은 부를 쌓은 개미 투자자, 증권사 전문가의 책까지 다양하다.

부동산도 마찬가지다. 유망 투자지역을 꼽아주고 절세방법도 상세히 알려준다. 비법을 알려준다고 하는 유명 유튜버의 채널은 구독자가 100만명을 넘는다. 집값이 갑자기 뛰어 ‘벼락거지’가 되는 상황에 재테크 열풍은 더욱 거세다. 벼락부자가 되지는 못할망정 하루아침에 거지로 전락하는 상황에는 참을 수 없던 것이다.

많은 이들은 돈에 목매는 이유에 대해 ‘경제적 자유’를 얻기 위해서라고 말한다. 돈의 굴레에서 벗어나 자신이 꿈꾸었던 삶을 살겠다는 뜻이다. 그것이 성공이라고 말한다. 부를 성공과 행복의 문으로 들어가는 입장권으로 여긴다는 얘기다. 결의도 굳다. 모든 것을 포기하고 목표를 달성할 때까지 시간과 노력, 몸을 갈아 넣겠다고 다짐한다.

인생에 관한 연구가 있다. 1930년대 말 시작한 하버드대생 268명을 포함한 700여 명의 삶의 연구다. 결론은 너무나 평범했다. 흔히들 말하는 물질이나 학벌, 명예 등은 성공의 조건에 없다. 대신에 고통에 적응하는 성숙한 자세, 교육, 안정적 결혼, 금연, 금주, 운동, 적당한 체중 등이 성공의 키워드였다.

어떤 길이든 각자가 행복이라고 여기는 일을 추구하는 것은 훌륭하고 숭고하다. 그러나 인생은 장기레이스이다. 방향을 잃을 수도 있다. 힘이 들 때 잠시 숨을 고르며 지나온 길을 돌아보는 시간도 필요하다. 엉뚱한 방향으로 달려간 뒤 되돌아오기에 인생은 너무 짧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