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16호 2021년 3월] 인터뷰 화제의 동문
삶도 동창회도 “권위 없이, 자유롭게”
신임 광주전남지부 회장 최 협 전남대 연구석좌교수
삶도 동창회도 “권위 없이, 자유롭게”
신임 광주전남지부 회장
전남대 연구석좌교수 최 협 동문
반세기 인류학 연구 외길
‘광주 대부’ 최흥종 선생 장손
“문리대 출신답게, 리버럴(liberal)하게 할 겁니다.”
신임 광주전남지부 회장인 최 협(고고인류65-69) 전남대 연구석좌교수는 “권위적인 건 딱 질색”이라고 했다. ‘회원 증대’나 연례행사 계획 대신 그저 ‘자연스럽게, 자유롭게’ 만나겠노라 했다. 첫인상은 반(反)동창회적인가 싶었는데 점점 궁금해졌다. 뼛속까지 문리대인이 만드는 동창회는 어떤 모습일까.
2월 26일 광주 전남대에서 최 동문을 만났다. 관악캠퍼스 버금가게 넓은 캠퍼스 깊숙이 연구실이 있었다. 평생 연구한 인류학과 옛 추억담, 친구 얘기, 조부인 독립운동가 오방 최흥종 선생 회고담까지. 인류학자들은 대개 이야기꾼이라던데 종횡무진 입담에 두 시간이 훌쩍 지났다.
“제가 부임한 1980년 전부터 전남대 내에서 ‘문리대 동창회’로 인문·사회·자연대가 모이는 전통이 지금도 이어지고 있습니다. 공대, 사대, 치대 동문들도 각자 모임이 있고요. 저는 엉겁결에 회장이 됐어요. 지역 기반 기업체가 적어 활동 회원 100여 명은 대학 교수들이 주축이에요. 탈권위를 선호하는 분위기가 있죠.”
그는 광주일고 졸업 후 모교 고고인류학과(고고학은 문화인류학의 하위 갈래이기에, 그는 이 명칭을 좋아하지 않는다)에 들어갔다. 국내에 인류학 박사 한 명 없던 때였다. 매형 박권상(영문48-52) 전 KBS 사장의 영향이 컸다. “천생 ‘문리대 맨’이셨지. 프라이드가 대단했어요. 그 얘기를 듣고 자라 ‘대학은 서울로 간다, 가면 문리대다!’ 맘 먹었죠. 역사도, 지리도 좋아해서 학과를 고민할 때 하버드대에 언론인 연수차 가 있던 매형이 ‘여기 와서 보니 그걸 다 합친 것 같은 학문이 인류학’이라더군요.”
신시내티대에서 석사학위, 켄터키대에서 박사학위를 받고 귀국해 국내 인류학 발전에 보탠 몫이 적지 않다. 쉽고 재밌기로 소문난 인류학 입문서 ‘부시맨과 레비스트로스’를 썼다. 18쇄를 찍은 스테디셀러다. 30년에 걸쳐 인류학자 말리노브스키의 명저 ‘서태평양의 항해자들’을 완역하기도 했다.
공저 ‘판자촌 일기’는 대학 4학년 때의 독특한 경험이 담긴 책. 한국의 이촌향도 현상을 연구하던 당시 하버드대 브란트 박사를 도와 석 달간 마장동 판자촌에서 월세살이를 하면서 주민들의 삶을 기록했다. 지금은 흔적도 없는 판자촌의 생활사를 남긴 귀한 자료다.
“인류학은 자신의 집단을 벗어나 다른 민족과 나라를 연구해요. 문화적 상대주의 개념이 가장 먼저 나온 학문이고요. 우리만 보고 있으면 독선에 빠지고, 늘 나를 비춰주는 거울이 있어야 합니다. 그래서 인류학이 아무것도 아닌 것 같아 보여도 중요한 학문이에요. 악습도 문화로 용인할 수 있을까, 본질적인 질문을 계속 던지다 보면 나 또한 섣부른 행동을 자제하게 되죠.”
최 동문의 저서와 번역서들. 왼쪽부터 일반인과 청소년들도 읽기 좋은 인류학 입문서 '부시맨과 레비스트로스', 인류학 명저로 꼽히는 '서태평양의 항해자들(번역)', 대학 4학년 때 현장조사 경험을 담은 '판자촌 일기(공저)'.
학자의 면모를 드러내다 은근슬쩍 “문리대 다닌 덕에 술고래가 됐다”고 너스레를 떤다. “일탈 없이 살아온 건 할아버지의 영향”이었다며 웃었다. 그의 조부는 광주 최초의 목사이자 광주YMCA 창설자인 오방 최흥종 선생. 오방은 일제강점기 독립운동에 이어 빈민의 친구이자 나환자의 아버지, 결핵 환자의 이웃으로 일생을 헌신해 ‘무등산의 성자’로 불린다. 소록도의 나병환자 수용시설 확충을 이끌고, 호혜원과 여수 애양원을 세웠다.
2018년 광주 사직공원 초입에 건립된 ‘최흥종기념관’에 최 동문은 조부의 이 말을 걸어뒀다. ‘나는 매우 충만한 삶을 살았다. 모든 것을 감사하게 생각한다’.
“대학 2학년 방학 때 고향에 내려가 모시고 몇 달 뒤 돌아가셨어요. 그때 뵌 모습은 제게 ‘죽음도 두렵지 않은 삶이 무엇일까’라는 큰 화두를 줬죠. 할아버지의 호 ‘오방’이 다섯 가지를 버린다는 의미인데 그 중 ‘가족에게 게으름을 버린다’는 부분을 처음엔 이해하지 못했습니다. 집안을 돌보신 분은 아니었으니까요. 나중에야 어려운 사람과 함께 한 그의 삶 자체로써 가족들에게 베푸는 사랑을 가르쳐 주셨다는 깨달음이 오더군요.”
비영리단체가 살아남기 힘든 상황이지만 기꺼이 할아버지가 일군 광주YMCA 이사장을 맡은 이유다. 어려운 재단 살림에도 몇 해 전부터 ‘오방상’을 제정해 사회적 약자를 위해 헌신한 이들에게 수여하고 있다.
최협 동문의 조부는 독립운동가이자 '무등산의 성자'로 불리는 오방 최흥종 선생이다. 광주 사직공원 초입의 '최흥종기념관' 내부 모습.
평생 사람을 들여다보고, 사람을 사랑한 조부의 기질까지 물려받아서일까. 그와의 대화에는 유학시절 아르바이트하던 식당 주인, 판자촌 연구로 만나 20년 만에 해후한 브란트 박사, 단 10명뿐인 과 동기와 그 동기들이 만든 단톡방 등 유쾌한 사람 얘기가 끊임없이 등장했다. 과연, ‘자네는 벗을 산처럼 쌓아간다’며 절친한 노시인이 지어준 호가 ‘우산(友山)’이다.
연구실에 걸린 공자의 글귀도 술친구 최재원(정치65-69 국영지앤엠 사장) 동문이 선물한 것. ‘부지노지장지(不知老之將至)’, ‘늙어감도 모를 정도로 공부하라’는 뜻이다. 그는 무등산 자락에 도연명의 '귀거래사'에서 따온 '이안재(易安齋)'라는 이름의 서재를 두고 있다.
“‘인마, 늙으면 즐겨야지 악담하냐’면서 받아왔죠(웃음). 내년이면 석좌교수도 은퇴인데 책 하나를 더 쓸 참입니다. 동아시아 자본주의의 제도적 기반을 한중일의 관점에서 비교하는 연군데 내 글을 써보고자 참고문헌도 없이 끄적여보고 있죠. 잘 될진 모르겠어요.”
박물관 탐방이 취미인 그는 “거부들의 사회 환원 덕에 번듯하게 운영 중인 해외 박물관을 보면 부럽다”고 했다. 서울대인도 끼리끼리 모이는 일에 치중하기보다 조용히 사회에 공헌할 일을 찾아야 한다는 말.
‘문리대 정신’을 앞세웠지만 배타성은 느껴지지 않았다. 애초 학문의 경계를 무시로 넘나들며 하나의 종합대학처럼 기능하던 문리대가 아닌가. 소속을 불문해 모이던 마로니에 나무의 그늘처럼 벗들을 불러모을 최 동문의 동창회가 기대된다.
박수진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