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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09호 2020년 8월] 인터뷰 화제의 동문

인류학과서 쓴 주식 논문에 ‘존버’, ‘문송’ 등장하니 이상한가 봐요

화제의 논문 ‘개인 투자자는 왜 실패에도 불구하고 계속 투자를 하는가’ 쓴 김수현 동문


인류학과서 쓴 주식 논문에 '존버', '문송' 등장하니 이상한가 봐요 
화제의 논문 ‘개인 투자자는 왜 실패에도 불구하고 계속 투자를 하는가’

김수현 (대학원17-19·간호 3학년) 동문 
 



매매방 전업투자자 현장연구로
지난해 발표한 인류학 석사논문
‘동학개미’열풍 타고 SNS 화제


10년간 200명 입실, 단 2명 성공
개인 탓보다 사회문화 요인 살펴
투자 권하는 사회에 성찰 주기를 



‘독수리는 참새를 잡아먹는다’는 주식 격언이 있다. 정보가 느리고 근시안적인 개인투자자의 불리함을 빗댄 말이다. 더 작은 ‘개미’로도 불리는 이들이 아닌가. 혹자는 매번 당하면서도 고단한 투자를 계속하는 건 오로지 ‘참새’가 어리석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인류학을 연구하던 김수현(대학원17-19·간호 3학년) 동문의 생각은 달랐다. ‘참새’를 ‘참새’이게 만드는 사회문화적 배경에 집중하고, 현장에 뛰어들어 그들의 목소리를 들었다. 개인 전업투자자들이 자릿세를 내고 직장처럼 출퇴근하며 투자에 몰두하는 공간, ‘매매방’에서다.

석 달동안 서울의 한 매매방에서 현장 연구하며 본 ‘개인투자자들의 민낯’은 190페이지짜리 논문에 담겼다. 지난해 8월 발표한 김 동문의 석사논문 ‘개인투자자는 왜 실패에도 불구하고 계속 투자를 하는가’. 최근 주식투자 열풍을 타고 학술논문으로는 이례적인 화제를 모았다. SNS와 주식 토론방에 그의 논문을 볼 수 있는 모교 도서관 홈페이지 링크가 공유될 정도다. 김 동문을 7월 28일 강남의 한 카페에서 만났다.



-석사논문이 화제되는 일이 드문데.
“쑥스럽고 얼떨떨하다. 원래 석사논문이 대학원생 사이에 끝나면 다신 보고 싶지 않고, 아무도 읽지 않았으면 하는 글로 통하는데(웃음)… 요즘 개인투자에 관심들이 많아서 덩달아 화제가 된 것 같다.”

-왜 개인투자자를 연구하게 됐나.
“어느 날 수업에서 교수님과 언쟁이 있었다. ‘투자로 얼마를 벌어서 여유 있게 살겠다’는 말을 했더니 교수님께서 ‘개인투자자들이 돈 번다는 것에 동의할 수 없다’고 단언을 하셨다. 교수님 말씀에 반박하다가 ‘그럼 그 사람들을 한번 연구해 봐야겠다’ 하는 생각이 들었다.”

-개인투자자의 실패를 전제한 논문인데, 처음엔 생각이 달랐나.
“개인투자를 하셨던 아버지 덕에 투자와 금융을 중요하게 여기는 분위기에서 자랐다. 오빠도 펀드매니저로 일하고 있다. 평소 투자는 반드시 해야 하고, 한국인들이 특히 투자에 부정적인 관념을 갖고 있는데 빨리 극복해야 한다는 식의 교육을 많이 받았기 때문에 반박을 했다.”

-생각이 바뀐 계기는.
“연구를 하다 보니 생각했던 것보다 개인투자자들의 현실이 훨씬 어두웠다. 매매방 운영하시는 분과 가장 먼저 면담을 했다. 10년 동안 200명 가까이 들어와서 2명 빼고 다 잃고 나갔다고 하셨다. 본인도 투자를 하면서 주식시장을 간파하고 있고, 개인 전업투자자들을 가장 밀착해서 보신 분이 ‘이건 분명히 망하는 게임이고, 개인들 다 등쳐먹는 구조’라고 단언하시는 거다. 자연스럽게 ‘왜 실패에도 불구하고’라는 전제를 붙일 수밖에 없었다.”

-커뮤니티 중에서도 매매방을 택한 이유는.
“개인투자자들이 너무 다양해서 어떤 사람들에 집중해야 할지 고심했다. 첫 연구라서 형식상의 필드가 없으면 헤맬 수 있다는 선배의 조언에 매매방을 택했다.”

-중장년 남성이 주 이용자던데 낯설었겠다.
“지도교수(채수홍 인류학과 교수)님이 걱정하셨다. 막상 가니까 거기 계신 분들이 나를 더 경계하셔서 라포(친밀감)를 쌓는 데 애로사항이 있었다.”

-어떻게 친밀감을 쌓았나.
“문 앞에 자리를 잡고 오가는 사람마다 눈도장을 찍었다. 그분들에겐 생업이고, 투자에 집중해야 하니까 장중에는 말을 걸 수가 없다. 점심 때 ‘같이 가서 먹어도 될까요?’ 묻고 밥 먹으면서 얘기하고, 장 끝나고 나서 면담 부탁드리고 했다.”

김 동문의 논문은 크게 세 파트로 나뉜다. 첫째로 행태재무학의 관점에서 투자자 개인의 비합리성을 다뤘다. ‘초심자의 행운’으로 처음 돈맛을 보고, 단타에 의존하면서 보고 싶은 정보만 보다, 주가가 떨어져도 적기에 손절하지 못하고 ‘물타기’를 시도하며 버티는 모습이다. 매매방 투자자들이 한 번씩은 이 단계를 거쳤다.
그러나 개인의 잘못으로만 일축하지는 않는다. 뒤따르는 장에선 호황을 경험한 과거, 생계를 짊어진 퇴직 가장의 의무와 같은 사회문화적 요인이 이들을 투자의 굴레로 떠민다고 짚었다. 마지막으로 실패를 거듭하며 이들이 공유하게 된 매매 원칙과 심리 전략을 소개한다. 투자에 ‘해피엔딩’은 없음을 간파하고 절제와 겸손으로 마음을 다스리는 식이다. 투자경력 3년부터 최장 17년까지 입실자 11명의 리얼한 인터뷰 속에 등장하는 ‘존버’(끝까지 버틴다), ‘문송’(문과라서 죄송합니다), 은퇴 후 치킨집 창업밖에 할 일이 없다는 뜻의 ‘기승전 치킨집’ 등 유행어엔 씁쓸한 페이소스마저 느껴진다.

-행태재무학은 투자자의 비합리성을 설명한다. 논문에서도 일부분 다뤘다.
“내 논문은 개인투자자의 실패가 개인의 탓이라는 기존 설명과 달리 사회 구조와 문화도 같이 봐야 한다는 입장이다. 그 내용을 3, 4, 5장에 적었는데 개인의 인지나 심리로 실패 요인을 설명한 앞장만 읽고 ‘이것 봐라, 이 논문도 개인 탓하는 것 아니냐’는 부정적인 반응이 많았다. 개인투자자들이 자신의 탓으로 돌리는 데 많이 익숙하구나 생각했다.”

-실패한 사례의 반대로 하는 것도 소용 없나.
“‘그렇게 안 하면 되지 않느냐’고 정말 쉽게 말한다. 그런데 이분들이 손절매에 대해 그렇게 강조하고, 여러 가지 매매 법칙들을 세우고 실천하려 노력한다는 것 자체가 그게 지키기 어렵다는 걸 보여준다.”

-증시에 따라 매매방 분위기도 다르겠다.
“2018년부터 2019년 초까지 본조사를 했는데 그때 장이 굉장히 안 좋았다. ‘검은 목요일’이 있었고, 코스피가 2,000포인트까지 깨졌다. 그 과정에서 면담해 주시겠다고 하셨던 분들이 많이 마음을 돌리셨다. 면담을 하면서 자신의 실패 경험을 복기하는 게 심리적으로 상처가 되기 때문이다. 질적 연구는 참여자 한 명 한 명의 경험과 면담이 정말 귀중한 자료인데 매매방에 있는 분들을 다 면담하지 못한 게 아쉽다. 그만큼 폭락이 단순히 경제적인 손실의 의미를 넘어서 심리적으로도 많은 아픔을 준다는 걸 간접적으로 느낄 수 있었다.”

-성공한 개인투자자는 만나본 적 없나.
“‘슈퍼개미’ 같은 분들이 100명 중에 한 두 명 정도 존재한다. 그런 분들을 만나보고 논문을 쓰는 것과 만나지 않고 논문을 쓰는 건 다르다고 생각했는데, 인맥의 한계로 만나지 못했다. 아쉬운 부분이다.”

-슈퍼개미는 매매방에 없을 것 같다.
“그렇다. 매매방이 꼭 매매를 하기 위한 공간이 아니라, 일찍 은퇴한 4050 은퇴남성들의 ‘자기만의 방’으로 기능하는 면이 크다. 개인 전업투자자로서 받는 사회의 따가운 눈총을 피할 수 있는 공간이다.”

-매매방 사람들의 목표는 무엇인가. 오래 버티는 것? 빨리 대박 나서 나가는 것?
“아이러니하게도, 매일매일 투자를 하지 않아도 되는 삶을 꿈꾸는 분들이 많았다. 자본금이 커져서 매일 단타 트레이딩을 하지 않고 분기에 한 번씩만 투자하는 게 목적이라고 했다. 자금이 적으면 거래를 많이 해서 회전율을 높여야만 수익을 볼 수 있는데, 자금이 커지면 그렇게 하지 않아도 수익을 낼 수 있기 때문이다.”

-연구자라고 밝혔을 때의 반응은.
“처음 들어갈 때 매매방 운영자에겐 먼저 말씀을 드렸다. 그다음 입실자들에게 커피 돌리면서 ‘저는 사실 이런 연구하러 왔다’고 말씀드렸다. ‘어쩐지, 전업투자자가 아니라니 다행’이라고 하신 게 기억에 남는다. ‘젊은 나이에 공부 안 하고 주식 하는 건 반대’라고 하셨다.”

-모순된 점이 많다.
“그런 모순되는 지점을 잡아내는 게 인류학의 역할이자 매력이다. 인류학은 어떤 커뮤니티의 좋은 점만 보는 연구도, 비판을 하려는 연구도 아니다. 말과 행동이 다르게 엇갈리는 지점을 그 현장에 들어가 잡아내는 데에 연구하는 재미가 있다.”

동국대에서 불교학을 전공한 김 동문은 외국 교환학생 시절 종교인류학 수업을 들으면서 인류학에 매료됐다. “사람들을 만나서 이야기하고, 글로 쓰는 게 잘 맞을 것 같아” 서울대 대학원 인류학과에 진학했다. 김 동문처럼 특정 인간 집단의 삶을 생생하게 살펴보는 연구는 인류학의 질적 연구인 ‘민족지학적 연구’에 속한다. 모교 인류학과에 축구동호회, 애견인 등 다양한 인간 군상에 대한 재밌는 연구가 많다.

-인류학이라면 ‘오지 연구’를 떠올리게 된다.
“옛날 서구 선교사들이나 인류학자들이 비서구세계 원주민들을 연구한 데서 인류학이 출발했다. 오늘날 문화인류학에선 현대사회에 대한 연구를 광범위하게 한다. ‘우리 안의 타자들’에 대한 연구다. 서울대는 생물인류학, 문화인류학 둘 다 한다.”

-논문에 유행어가 나오는 것도 놀랍다.
“‘무슨 논문이 저렇게 캐주얼한 언어를 쓰냐’는 인터넷 댓글을 봤다. 그 사람들의 문화를 생생하게 드러내기 위해 그들의 언어를 직접 차용하는 게 문화인류학의 관습이다. 개인투자자들이 일상적으로 사용하는 언어를 사용할 땐 논문에서 항상 따옴표를 쳤다.”

-투자에 긍정적이셨던 아버지의 반응은.
“아버지와 논문 얘길 깊게 나눈 적은 없다. 다소 부정적인 뉘앙스가 있으니 ‘신자유주의’란 말 대신 ‘자유시장경제’를 쓰라는 말씀은 하셨다(웃음). 아버지는 여전히 투자와 금융은 중요하고, 구조를 당장 바꿀 수 없다면 지혜롭게 잘 이용하는 법을 배워야 한다는 입장이시다.”

-이후에 매매방을 찾아갔었나.
“인터넷에서 화제가 되고 전화를 드렸다. 그분들 입장에서 안 좋아하실 수도 있고, 부족한 글이라서 재밌게 봐주셨으면 좋겠다고 양해를 구했는데…(귀엽게 울상을 지으며) 피드백이 아직 없으시다. 그동안 매매방 사람이 더 적어졌다고 들었다. 한 번 인사드리러 갈 예정이다.”

-‘동학개미’의 기세가 심상찮다. 논문 속 4050 투자자가 2030 동학개미의 미래일까.
“본질적으로 다르지 않다고 생각한다. 10년 주기로 IMF, 리먼브라더스 사태 같은 경제적인 이벤트를 통해 많은 개인들이 투자의 세계로 들어왔고 앞으로도 계속될 것이다. ‘동학개미운동 이후 개인투자자는 질적으로 다를 것’이라고 하는 사람도 있다. 그렇지만 역사적인 흐름의 측면에서 봤을 때 동학개미라고 해서 그렇게 새롭지는 않을 것 같다.”

-경제상황이나 투자 인식은 다른 것 같은데.
“중년 전업투자자들과 달리 젊은 세대는 투자를 부끄럽거나 부정적으로 생각하지 않는 것 같다. 4050 전업투자자는 기본적으로 집 한 채는 두고, 은퇴 후 생활비를 계속 벌기 위해 하는 분들이 많은데 2030은 경제상황이 다르다. 주식이 큰 자본금 없이도 큰 이익을 볼 수 있는, 어떻게 보면 유일한 수단이 됐지만 그만큼 위험이 커서 안타깝기도 하다.”

-개인투자자 연구가 더 필요할 것 같다.
“월스트리트 같은 증권가 직원을 다룬 연구는 있었지만 개인투자자에 대한 질적연구는 드물다. 보통 투자자를 개인·기관·외국인의 세 주체로만 나누는데 개인투자자도 2030, 4050, 여성 투자자 등 나이와 성별, 국가에 따라 투자 목표와 방식이 모두 다를 수 있다. 똑같은 개인으로 상정하지 말고 이 사람들이 정말 누구인지 규명하는 질적인 측면의 연구가 많이 나와야 할 것 같다. 중국과 한국, 미국 등 개인 투자의 문화 차이에 대한 연구도 필요하다.”

-올해 26세인데 주식 투자를 해볼 마음은.
“그전에도 주식과 파생상품 투자를 간간이 했지만, 본격적으로 주식을 해본 건 매매방에서였다. 조금 벌다가 한 번 많이 잃고, 또 조금 벌고 많이 잃는 걸 반복했다. 정말 신기하게, 그렇게 많이 잃어도 다시 조금 벌면 잘할 수 있을 것 같다는 자신감이 생기더라. 손절매 해야 하는데 마음이 너무 쓰리고…(웃음). 주식을 하기엔 내 마음이 너무 약한 것 같다. 장기투자 정도가 좋을 것 같다.”

-독자들이 무엇을 얻어가길 원하나.
“사실 최근에 논문 내용을 단행본으로 만들자는 제의를 받았다. 궁금했다. 내 논문은 실패에 대한 이야기고, 사람들이 듣고 싶어 하는 얘기가 아닌데 책이 팔릴까. 기존의 주식 서적, 경제·경영서는 계속 투자를 하라는 목소리로만 이뤄졌는데, 투자자를 양산하는 목소리만 존재하는 서적의 세계에서 밸런스를 맞춰주는 역할을 할 수 있을 것 같다는 출판사의 말에 답을 얻었다.
내 글을 읽는 사람들에게 차마 주식 투자를 하지 말라고는 할 수 없다. 집을 사기 위해서 월급만 받아서는 답이 안 나오는 현실 아닌가. 이런 식의 관점도 있으니 한 번 더 생각해서 신중하게 해라, 그런 정도의 도움을 줄 수 있지 않을까 한다. 책에는 내 또래이기도 한 2030 투자자들의 이야기를 보충할 것 같다.”

-간호학과에 편입했다고 들었다.
“석사졸업 후 3학년으로 학사편입했고 개인사정상 휴학 중이다. 논문 쓸 때 금융 전공이 아니다 보니 깊이 들어가면 한계를 느꼈다. 인류학에서 전문 분야를 만들고 싶던 차에 의료인류학에 관심이 생겼다. 실용적이기도 해서 간호학을 선택했다.”

-의료인류학에선 무엇을 연구하나.
“인간의 질병과 고통을 그들이 속한 문화 내에서 이해하고 분석하는 학문이다. 국내 의료인류학자 중에서 의학적 전문성을 가진 선생님은 더러 봤지만, 아직 간호학적 전문성을 갖춘 분은 보지 못했다. 간호와 돌봄은 의료 이슈 중에서도 그 중요성이 날로 더해져 갈 것이다. 내가 가진 인류학적 배경과 간호사의 의료전문성을 결합해서 실천적인 간호인류학자가 되고 싶다.”


박수진 기자


▽김 동문의 논문을 읽을 수 있는 모교 중앙도서관 링크 
http://s-space.snu.ac.kr/handle/10371/16144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