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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16호 2021년 3월] 오피니언 관악춘추

전영기 시사저널 편집인 칼럼

호랑이 발톱과 개

호랑이 발톱과 개




전영기

정치80-84
시사저널 편집인
본지 논설위원


한비자는 군주가 신하를 다스리는 원리를 호랑이와 개에 비유해 설파했다. 현대 민주주의 국가에 비추어 보면 국민이 피선출자를 통제하는 방법으로 이해해도 무방할 것이다. 그는 이병편에서 다음과 같이 얘기했다. “호랑이가 개를 복종시킬 수 있는 까닭은 발톱과 이빨을 지녔기 때문이다. 만일 호랑이가 이빨과 발톱을 개로 하여금 사용하게 한다면 호랑이가 오히려 개에게 복종하게 된다.”

군주가 신하의 눈치를 보고, 국민이 피선출자에게 복종하는 일이 비일비재한 세상이다. 이 기막힌 역전의 원인을 가만히 따져보면 호랑이가 의당 자기 몸의 일부인 발톱과 이빨을 시나브로 상대방한테 내주었기 때문이다.

한비자에 따르면 군주는 한편으로 형벌로, 다른 한편으로 은덕으로 신하를 관리해야 한다. 예를 들어 송나라의 한 교활하고 잔인한 신하는 임금에게 “사람에게 은덕을 베푸는 일은 모두가 좋아하므로 임금께서 행사하시고, 사람을 죽이는 형벌은 백성이 미워하는 바이므로 신이 행하겠나이다”라는 요설로 형벌권을 얻어냈다. 교활하며 잔인한 신하는 자기 멋대로 아랫사람의 형벌을 처리했으니 국내의 모든 사람이 그를 두려워 하여 감히 명을 거역하지 못했다고 한다. 이런 상태가 몇 년 지속되니 정권은 저절로 임금에게서 신하의 손으로 넘어갔다. 한비자의 결론은 이러하다. “임금이 형벌과 은덕의 권한을 잃어 신하에게 대신 행사하게 하고도 국가가 멸망하지 않은 예는 아직까지 없다.”

민심은 배를 띄우기도 하지만 뒤집기도 한다는 말은 동서고금의 진실이다. 백성이 유순한 것 같아도 잘못된 통치가 꼭대기까지 차오르면 어떤 수단을 동원해서든 권력을 바꿔 버리고 만다는 얘기다. 현대 민주주의 사회에서 피선출자에 대한 유권자의 발톱은 제도화되어 있다. 가장 대표적인 것이 선거 행위다. 선거에서 교체 가능성의 힘을 행사하지 못하는 국민은 이빨 빠진 호랑이와 같다. 국민은 피선출자한테 형벌권을 넘겨 버리고, 그저 유순하고 자애로운 은덕만 베풀려고 한다. 그런 국민은 개한테 복종하는 호랑이 신세와 별반 다르지 않다.

디지털 정보가 권력 집단한테 집중되고 코로나 재앙으로 정부 의존도가 높아지면서 국민들이 지닌 발톱과 이빨이 퇴화하고 있는 건 아닌가 걱정하는 사람들이 늘고 있다. 민간과 시장이 위축되고 공공이 구원자인 것처럼 받들어지는 풍조 때문이다. 국민은 야성이 사라지고 우리 안에 갇힌 호랑이가 되어가는 건 아닐까. 인정하고 싶지 않지만 기우로만 치부하기도 어렵다. 우리는 그런 사례를 세계의 여러 나라에서 수없이 보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