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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14호 2021년 1월] 뉴스 기획

소도 서울대가 키운다…수원→평창 84년 이어온 친환경 목장

평창캠퍼스 목장 탐방

눈 덮인 평창캠퍼스 목장 전경. 사진 왼편으로 우사가, 산자락 너머 오른편에 계사가 있다. 2013년 6월 건축물 40개동, 초지 30만평, 소 600두, 가금 6만수 규모로 신축된 평창캠퍼스 목장은 교육연구용뿐 아니라 수익사업용 동물도 사육하고 있다.


소도 서울대가 키운다…수원→평창 84년 이어온 친환경 목장

평창캠퍼스 목장 탐방


해발 600미터 청정 고지대 위치
30만평 초지서 사계절 풀 수확

600두 사육시설에 현재 270두
치즈 가공으로 국면 전환 기대


우리말에 식구(食口)는 가족을 뜻하고, 생구(生口)는 한집에 사는 하인이나 종을 이른다. 옛 조상들은 소를 가리켜 생구라 불렀다. 사람 대접을 할 만큼 귀하게 여겼다는 뜻이리라. 소는 농경에 절대적으로 필요할 뿐 아니라 유사시에는 군에 동원될 만큼 국가적으로도 중요한 가축이었다.

서울대학교의 전신 중 하나인 수원고등농림학교는 1937년 수의축산과를 신설, 부속 목장을 설치해 소를 사육해왔다. 중국이나 만주로부터 유입되는 각종 가축전염병의 방역과 대동물 사육기술 및 질병 치료를 연구했고, 축산 전문인력을 양성하여, 1945년 광복 이후 일본인 학자와 축산기술자가 떠나면서 발생한 학문적 공백을 메우기도 했다.

부속 목장은 1982년 ‘서울대학교 농과대학 부속 실험목장’으로 개칭됐으며 2013년 6월 건축물 40개동, 초지 30만평, 소 600두, 가금 6만수 규모의 평창캠퍼스 목장을 신축, 1년 만에 이전을 완료했다. 2016년엔 ‘실험’을 떼고 ‘목장’으로 이름을 바꿨다. 2021년 신축년(辛丑年) 소의 해를 맞아 지난해 12월 29일 평창캠퍼스 목장에 다녀왔다. 현지에 상주하며 밤낮으로 소를 보살피는 김회웅(수의학83-87) 수의사가 취재를 도왔다.

평창캠퍼스 우사 안의 한우들

교육연구·수익사업용 동물 사육
“수원에 있을 땐 건물부지, 사료포장, 초지 및 방목지를 모두 합쳐 4만8,000평에 불과했습니다. 대신 축종이 다양했죠. 한우와 젖소는 물론 돼지, 면양, 산양, 유산양, 사슴, 닭, 꿩, 메추리 등을 실습용 또는 연구용으로 사육했어요. 평창에선 한우, 젖소 외에 산란계, 토종닭, 메추리 등을 사육하고 있습니다. 축종은 많이 줄었지만 최첨단 사육시설을 갖춰 ‘저밀도 동물복지형 사육환경’을 구축했어요. 교육연구용뿐 아니라 수익사업용 동물도 함께 사육하고 있습니다.”

해발 600미터. 웬만한 산의 꼭대기 높이임에도 불구하고 목장의 터는 넓어 500여 평의 축사 여섯 동이 한우 암·수컷, 젖소 암·수컷 등 품종과 성별에 따라 충분한 거리를 두고 위치해 있었다.

젖소 우사엔 로봇 착유기가, 한우 우사엔 로봇 포유기가 설치돼 있었다. 소의 목에 걸린 두 개의 센서로 활동량, 사료섭취량, 생체 신호 등 개체별 데이터를 수집하고, CCTV로 우사 내의 상황을 실시간 모니터링한다.

한 축사 안에서 울타리를 설치해 소의 성장단계별로 거주공간을 나눈 점도 눈에 띈다. 송아지가 태어나면 곧바로 원적외선 살균·보온장치 등을 갖춘 ‘허치’로 옮기고, 이곳에서 42일간 충분히 젖을 먹인 후 이유시켜 성장단계에 따라 울타리에서 울타리로 이동한다. 송아지는 태어나서 2개월 동안 질병으로 인해 사망하기 쉬운데 이렇게 분리, 관리함으로써 생존율을 높였다. 14개월이 지나 가임기에 들면 임신을 시키고 10개월 후 분만하면 젖소의 경우 원유를 착유한다. 임신 기간엔 물론 별도의 공간에서 사육한다.

한우 수컷은 비육우(肥肉牛), 젖소 수컷은 육우(肉牛)라 불리는데, 이름 그대로 ‘고깃소’인 까닭에 비육우는 30개월, 육우는 20개월이 지나 성체(成體)가 되면 도축한다. 한우 암컷은 번식용으로, 젖소 암컷은 번식과 착유용으로 쓰이지만, 두어 번 새끼를 낳고 다섯 살이 넘으면 생산성이 떨어져 수컷과 마찬가지로 식용 도축된다. 자연 생태에서 기대수명이 20년인 것에 비하면 기구한 운명이다.

초지에서 풀을 수확하는 데 쓰는 대형 트랙터

최신식 배합사료 제조시설도 갖춰

먹이 또한 본래 초식동물이므로 풀을 뜯어 먹는 것으로 충분하다. 그러나 고기와 우유를 획득하기 위해 사육되는 ‘경제동물’인 까닭에 생산성을 높이기 위해 농후사료를 함께 먹인다. 풀과 농후사료의 양을 일정 비율 내에서 먹여야 하는데, 농후사료의 양이 너무 많아지면 반추위의 기능이 떨어져 여러 가지 질병이 발생하기 때문이다. 백명기(축산79-86) 모교 농생대 교수는 소의 스트레스 저감을 위한 맞춤형 사료 개발과 한우의 미세 마블을 높이는 고급육 생산 기술을 연구하고 있다.

평창캠퍼스 목장은 소의 품종, 성별, 연령대별 영양소 요구량에 맞춰 농후사료와 풀을 섞어 만드는 최신식 배합사료 제조시설을 갖추고 있다. 목장 바로 앞에 30만평 규모의 초지가 있고, 이를 거둬 들여올 수 있는 대형 트랙터가 여러 대 있으니, 농후사료를 사다 섞는 건 식은 죽 먹기. 우사 앞 초지엔 한겨울에도 불구하고 푸른 잎이 흡사 잔디처럼 깔려 있었다. 목장엔 1년 열두 달 풀이 마르지 않는다는 증거다.

“서울대 목장은 일반 축산 농가와 경쟁하지 않습니다. 축산의 과학화를 통해 소 사육의 어려움을 줄이고 소의 경제적 가치를 최대한 끌어올리는 사업을 진행하고 있죠. ‘한우 번식전문목장사업’이 좋은 예입니다. 우리 목장에서 생산한 우량 송아지를 6개월간 튼튼하게 길러 개별 농가에 공급하는 사업이죠. 또한 사육 단계별로 영양소를 정밀하게 조절함으로써 사육 기간은 줄이되 육질과 육량은 그대로 유지하는 기술에 대한 실증연구를 우리 목장에서 진행하기도 했습니다. 사육기간을 기존 31개월에서 28개월로 3개월 줄임에 따라 1마리당 23만원 정도의 사육비를 절감할 수 있게 됐어요.”

‘젖소 청정육종핵군목장사업’도 빼놓을 수 없는 핵심 사업이다. 한우는 우리나라에만 있는 독특한 품종이지만, 젖소 특히 홀스타인 품종은 미국·호주·캐나다 등 거대 낙농 국가에서도 대규모로 사육한다. 때문에 이미 축적된 해외 연구 성과를 발판삼아 새로운 연구 과제를 도출하기도 쉽고, 경제적 파급효과도 훨씬 크다.

모교 목장은 더 우수한 젖소를 원하는 개별 농가와 우량 종모우 생산 및 가축 질병 청정화를 원하는 정부의 이해가 맞아떨어지면서 미국·캐나다산 초우량 수정란을 무상으로 지원받고 있다. 대리모를 통해 수송아지를 낳으면 정부 사업단에 반환하고, 암송아지를 낳으면 모교 목장에서 기른다. 목장의 모든 소를 수정란 이식 소로 교체해 자체적으로 최상급 송아지를 생산, 축산 농가에 공급함으로써 지역사회에 공헌하는 ‘큰 그림’을 그리고 있다. 지금까지 18차례에 걸쳐 젖소 수정란을 이식했고, 30여 두의 암송아지를 생산했다. 교체율은 35% 수준. 5년 안에 100% 달성을 목표로 하고 있다. 일반 젖소가 하루 30㎏ 정도의 원유를 생산하는 데 비해 우량 젖소는 40㎏ 이상의 원유를 생산한다.

2050년 탄소 중립 시대의 실현을 위한 연구도 진행 중이다. 김경훈 모교 국제농업기술대학원 교수가 호흡챔버를 이용하여 소의 방귀, 트림 등 배출 가스를 일괄 채취해 온실가스 저감에 따른 보상 체계를 수립하는 데 필요한 빅데이터를 수집하고 있는 것. 평창캠퍼스 목장이 테스트 베드(test bed)의 역할을 톡톡히 하는 것은 물론이다.

로봇 착유기의 젖소 착유 모습

재투자 부족·시장 변동성 난제
그러나 풀어야 할 난제도 없진 않다. 모교 목장은 총 600두 규모의 소를 사육할 수 있는 시설이지만, 한우는 협력업체 ‘카길’의 위탁 소를 포함해 현재 140두, 홀스타인은 130여 두에 불과해 총 300두에 못 미친다. 훌륭한 인프라를 갖추고도 이를 충분히 활용하지 못하는 셈. 김회웅 수의사는 “투자가 부족해 아쉽다”고 말한다.

“평창캠퍼스 목장 설립 당시부터 사육동물 확보를 위한 투자가 미흡했습니다. 소와 닭 모두 합쳐, 목장에서 매년 약 10억원의 수입을 올리는데 이마저도 70% 정도만 재투자되는 실정이죠. 불안정한 원유 시장의 영향도 큽니다. 최고급 원유를 생산하고도 전국단위 원유수급조절제도 속칭 ‘원유 쿼터제’ 때문에 납품에 어려움이 많아요. 서너 해 전엔 원유생산량 조절을 위해 일시적으로 젖소를 줄이기까지 했죠. 지금은 운송비 부담을 감안해 값을 깎아 횡성 소재 유가공업체인 ‘서울F&B’에 납품하고 있어요. 흰 우유보다 요구르트나 딸기·초코 우유 등 가공유를 선호하는 소비 성향도 강해져, 안타깝게도 서울대 목장우유는 생산되지 않는 상황입니다.”

평창캠퍼스는 최근 산학협력동에 치즈 가공시설을 유치했다. 목장에서 생산한 원유를 직접 조달, 가공함으로써 원유 쿼터제와 흰 우유 소비 감소의 이중고를 슬기롭게 타개할 것으로 기대된다. 동문들의 관심과 성원이 큰 힘이 될 것이다.
나경태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