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60호 2024년 11월] 뉴스 기획
확 넓어진 기록관, 역사와 비전으로 채운다
10월 10일 기록관 완공 전시공간 내년 10월 개관
기록관에 들어서면 가장 먼저 마주하는 전시 회랑. 우측 끝에 상설전시관이, 좌측 복도 끝에 행정실이 마련됐다. 아래 사진은 25동 서고 내부.
확 넓어진 기록관, 역사와 비전으로 채운다
10월 10일 기록관 완공
전시공간 내년 10월 개관
서울대학교는 우리나라 최고 대학이라는 상징성 때문에 많은 이가 찾는다. 봄·가을철이면 중·고등학교 단체 버스가 캠퍼스 도로 곳곳을 점령한 모습을 심심찮게 볼 수 있다.
이들이 학교 정문을 통과해 가장 먼저 방문하는 곳은 IBK 홍보관이다. 조금은 왜소해 보이는 이곳에서 모교의 현황, 역사, 인물 등의 설명을 듣는다.
타 대학의 경우 역사관(기록관)을 첫 방문지로 하는 경우가 많다. 역사관은 외부인에게 첫 번째로 보여주는 곳이기 때문에 상당한 공을 들여 짓는다. 한양대 역사관이 좋은 예다. 본관 옆 위치한 한양대 역사관은 규모도 본관과 맞먹는다. 이화여대도 고풍스러운 전통 한옥 역사관에서 외부인을 맞는다. 카이스트는 별도 건물을 갖고 있진 않지만, 도서관 내 첨단 전시 기술을 활용한 비전홀을 지었다. 이러한 공간은 외부인에게 각 대학의 과거, 현재, 미래를 보여주는 것뿐 아니라 재학생들이 그 대학에 대한 자부심과 긍지를 고취하는 장소로 활용되고 있다.
총동창회는 모교도 이러한 공간이 필요하다는 인식 아래 2014년 ‘서울대 역사연구기록관(이하 기록관)’ 건립 협약을 맺고 100억원을 지원해, 지난 10월 10일 기록관(75동)을 완공했다. 기록관 단일 건물로 짓지는 못했지만, 모교 역사의 전시·보존·홍보에 충분한 공간을 마련한 것이다.
모교 역사·비전 보여주는 공간
모교 기록관의 출발은 1997년 박물관 내의 ‘대학사료실’로 거슬러 올라간다. 박물관의 부속실로 존재하다가 2001년에 이르러 ‘대학기록관’이란 이름으로 설립됐다. 사무실은 박물관 건물에서 중앙도서관, 교수종합연구동(150동)을 거쳐 종합연구동(220동)을 전전하다, 75동으로 이전함으로써 20여 년 만에 안정적인 공간을 확보하게 된 셈이다.
기록관 서고가 현재 세 곳(150동, 25동, 220동)으로 분산돼 있는 것도 학내에서 존재감이 별로 없던 기관의 위상을 반영하고 있다.
현 75동에서는 기록관이 지상 1층과 지하 1, 2층의 대부분을 사용하고, 서고도 건물 내에 위치함으로써 공공 기록물 및 학교사 기록물 관리라는 기록관 본연의 업무를 효율적으로 수행할 수 있게 됐다.
이 건물에서 중요한 차별점이라면 제대로 된 서고와 네 곳의 전시공간을 갖추게 되었다는 점. 그동안 모교 기록관은 열악한 서고를 갖고 있었다. 이번에 공을 들여 기준에 부합한 시설과 장비를 갖췄고, 일반인이 기록관에서 자료를 대출받아 열람할 수 있는 시스템도 구비했다. 그와 더불어 75동 내에 본격적으로 모교의 역사 및 발전상을 소개하는 전시공간을 네 곳(상설전시실, 기획전시실1, 2와 전시회랑)이나 확보했다.
박흥식(서양사84-90) 기록관장은 “그동안 서울대 구성원은 물론이고 외부에서 온 방문객들에게 서울대가 어떤 역사를 지녔으며, 어떤 비전을 추구하는지 소개할 만한 공간이 없었다”며 “그런 측면에서 이제 누구에게나 자신 있게 서울대가 어떤 곳인지를 설명해 줄 대표적인 공간을 갖게 됐다는 의미가 있다”고 말했다.
자료 디지털화 남은 과제
모교 기록관은 1946년 개교 이후 현재까지 약 6만여 건의 역사기록물을 보유하고 있다. 본부, 단과대학의 회의록 등 행정서류 외 교수, 학생, 동문, 직원 등으로부터 수집한 학교사 자료, 교내외 행사기록물 등을 보존·관리하고 있다. 총동창회와 2013~2016년 3년간 대학 역사 기증자료 수집 운동을 벌여 280여 명의 동문이 박물류, 사진·앨범류, 학술·간행물류, 문서류 등 모교 역사자료 5000여 점을 보내오기도 했다.
이중 70% 정도가 문서류 및 학술·간행물류 자료들이다. 문서류 자료로는 입학 혹은 졸업 관련 문서, 학교 운영 관련 문서, 기타 비간행물 자료 등이 있다. 학술·간행물류 자료에는 각 단과대학·학과·학생단체 들의 회보, 교수의 강의자료 및 학생들의 수강자료, 대학교재류, 기타 개인기록 및 간행물, 신문 스크랩 등이 포함된다. 박물류 자료 중에는 교모, 교복, 교표 및 배지, 학습비품(공학용 슬라이드 룰 등) 등도 있다. 그밖에 대학 창설 및 국대안 기록, 6·25 전쟁 부산 가교사 재부 사진첩, 서울대-미네소타 프로젝트 기록, 학장회의록(1953~2009년), 학생운동 관련 기증 기록 등이 기록관의 주요 목록이다.
기록관은 앞으로 기록물 관리 외 여러 업무를 맡게 됐다. 정보공개법에 따른 정보공개 창구를 운영하고, 학교사의 연구·전시·편찬 등의 업무도 추가됐다.
가장 역점을 두는 일은 자료의 디지털화다. 현재는 전체적으로 진행하지 못하고 예산이 확보될 때마다 부분적으로 진행하고 있는 상황. 요청하는 자료가 있거나 확인할 일이 있으면 직원이 멀리 떨어진 서고에 가서 자료를 일일이 확인하는 일이 아직도 일상이다. 부족한 예산과 법인직원 4명 등 7명으로 꾸려진 작은 조직으로는 어려움이 있다.
박흥식 관장은 “기록관 전체의 디지털화가 기록관의 역할을 제대로 수행하기 위해 당장 해결해야 할 숙원사업이고, 대략 36억원이 소요되는 것으로 추산되고 있다”고 했다.
“동문들께서 관심 갖고 건물을 마련해 주셨는데, 콘텐츠도 그에 걸맞게 보존·관리·서비스 될 수 있도록 노력해야지요. 노벨상 후보에 오르는 교수님들의 연구 노트도 보관하고, 총장·학장님들의 기념 선물류에 대한 보관 매뉴얼도 만들고, 학교와 관련 깊은 분들의 구술사 프로젝트도 진행하고 싶은데, 마음만 바쁘네요. 기록관이 제 기능을 다 할 수 있도록 끝까지 관심 부탁드립니다.”
한편, 기록관 전시공간은 예산 문제 등으로 건물 완공과 동시에 개관하지 못했다. 기록관 행정실은 12월 5일 입주할 것으로 보이며, 전시공간은 내년 10월 개교기념일 즈음 완성될 것으로 예상된다.
김남주 기자
정명수, 조용훈 동문이 기증한 모교 기록물들. 기증 동문별로 분류돼 있다. 사진=기록관
87년 항쟁 때 부러진 코뼈, 사진관악사 기숙생들 회지도
기증자별로 분류된 컬렉션
모교 기록관은 기록물을 기증한 동문 별로 컬렉션을 꾸리고 있다. 시간·장소·자료유형에 이어 기증자가 기록물을 분류하는 어엿한 기준이 되는 셈. 2024년 10월 현재까지 20여 동문들의 컬렉션이 구축돼 있다. 기증자의 학번 순으로 기증기록을 살펴보면 재학시절 시대 상황이 머릿속에 그려진다.
정명수(미학64-71) 동문은 미학연습, 동양미술사 등 재학 당시 학업 자료와 문리대 학생회에서 주최한 행사의 팸플릿, 문리대 학보, 논문집 등 15점의 기록물을 기증했다. 그중엔 1970년 가을 상연된 ‘허주찬, 궐기하다’의 공연 안내 리플릿도 있다. 문리대 연극회 제13회 대공연 때 무대에 올린 희곡으로 군사독재 시절 무력한 지식의 좌절을 그려 사회참여적 성격을 띠었다. 조동일(불문58-62·국문66졸) 모교 국문과 명예교수가 쓴 작품이다. 정 동문은 참다운 민족 문학을 정립하기 위해 민요를 비롯한 전통의 가치와 중요성을 역설한 고 김지하(미학59-66) 시인의 ‘민족의 노래 민중의 노래’ 강의 초록도 기증했다.
남용민(금속공학71-79) 동문은 자신의 졸업증명서, 전공 자료와 함께 1976년 서울대 학도호국단이 발행한 ‘서울대’ 창간호를 기증했다. 1949년 최초 결성된 학도호국단은 미 군정의 폐지로 인해 주한미군이 철수하면서 생긴 전력 공백을 메우기 위해 출범했으며, 이를 계기로 기존에 학생조직은 해체됐다. 정부가 대학 내 단원을 통해 학생사회를 통제하는 조직이었다. 1960년 4·19혁명 때 이승만 정권의 몰락과 함께 폐지됐다가 1975년 ‘긴급조치9호’가 발동되면서 부활했다. 1984년에 와서야 완전히 사라졌다.
오수창(국사78-82) 동문은 1977~1989년 생산된 학생운동, 노동운동, 민주화운동에 관한 신문과 유인물을 주로 기증했다. 오 동문은 모교 강사 재직 시절인 1987년, 6·10 항쟁 날 한국은행 앞에서 사과탄을 맞고 코뼈가 부러졌는데, 그때 찍은 엑스레이 사진과 진단서도 기록관에 기증했다. 모교 국사학과에서 1984년 발행한 ‘사필(史筆)’ 창간호와 모교 노래 동아리 ‘메아리’의 1987년 노래집도 기증했다. 사필은 “세계를 바꾸려는 거대한 힘으로 움직이는 역사에 동참하고자 붓을 든다”는 뜻으로, 200여 국사학과 학우들이 토론하는 장이 되고자 했다.
조용훈(건축78-82) 동문은 관악사 자동에서 1982년 펴낸 회지 ‘studentenheim 자’ 창간호와 마동에서 지은 1983학년도 마동(魔棟) 앨범을 기증했다. 자동 회지 창간호는 관악사 설립 8주년을 맞아 제1회 관악사 자동 좌담회, 타 기숙사 탐방, 앙케이트 조사 등을 특집으로 실었다. 마동 앨범은 사감 선생님의 말씀을 서두로 층별 사생들의 단체 사진과 인적정보 및 대학 생활의 소회를 담았다. 1975년 종합캠퍼스 설치 당시 가~라동이 설립됐고, 1977년 마동, 1982년 바~자동, 1983년 차~카동이 문을 열었다.
이정선(국사01-05) 동문은 1998년도부터 2008년도까지 학생정치조직, 학생회, 자치단위, 실천단, 여성운동단위에서 생산한 기록물 160건을 기증했다. 2001년부터 시행된 신입생 모집단위 광역화에 대한 기록과 광역화로 인하여 과 단위의 자치적인 흐름을 이어가고자 결성한 ‘과반’의 활동이 담긴 기록도 있다. 2001년 국사 농민학생연대활동 자료집, 2002년 국사학과 새날 농민학생 연대활동 자료집 등 농활 관련 자료집엔 농촌과 농민의 현실 및 노동문제를 다룬 내용이 수록돼 있으며, 모교뿐 아니라 연세대·고려대·숭실대·부산대 등 타 대학 여성모임에서 발행한 자료도 있다.
이주현(국문03-08) 동문은 2003~2014년에 모교 학생회와 여성단체 중심의 자료집, 잡지, 길라잡이, 리플릿 등 44건의 기록을 기증했다. 장애여성, 여성노동, 여성주의 등 여성을 주제로 한 자료집이 상당 부분을 차지하며 반성폭력, 신자유주의, 민주주의에 관한 교육자료도 포함됐다. 학생자치단체인 관악여성모임연대, 인문대 여성모임연대, 인문대 학생회, 국사 새날반, 모교 여성주의 자치언론 ‘쥬이쌍스(jouissance 프랑스어로 열락을 뜻함)’ 등이 생산한 인쇄물 등이다.
나경태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