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57호 2024년 8월] 뉴스 기획
꿈도 가능성도 많은 네팔 아이들, 희망 선물한 서울대인
네팔 SNU공헌단 동행기
네팔 SNU공헌단 동행기
꿈도 가능성도 많은 네팔 아이들, 희망 선물한 서울대인
보건·의료 전공인 동문 단원들이 현지 학부모 60여 명을 대상으로 혈압과 혈당 등 건강 지표를 측정하고 의료 상담을 했다.
카트만두 교외 공립학교 찾아
10일간 예체능·위생교육 등 펼쳐
본회 동문단원 6명 파견 등 지원
30분 전 네팔 카트만두 시내에서 출발한 차가 굽이굽이 산비탈을 오르다 낡은 학교 담벼락 옆에 멈춰섰다. 아치형 대문에 적힌 ‘Shree Chhampi Devi Secondary School’. 네팔 중부 참피 지역의 공립학교인 이곳에서 8월 5~14일 ‘동문과 함께하는 네팔 SNU공헌단’이 공헌활동을 펼쳤다.
네팔은 공헌단이 2015년부터 꾸준히 활동해온 나라. 모교 학생 단원 14명과 카트만두의대 재학 중인 현지단원 12명이 합심하고, 신희수(간호16-20)·김성진(의학17-22)·이수진(대학원18-23)·곽윤서(간호19-24)·배수현(간호20-24)·조유진(대학원22-24) 동문 등 6명의 동문 단원이 가세했다. 신희수·김성진 동문은 지난해 라오스 공헌단에 이어 두 번째 동문 단원에 참여했다. 협력 기관인 국제기아봉사단에서 이원일 현지 코디네이터 등 5명, 모교 최수정(농산업교육01-05) 공헌단 부단장, 박동열(불어교육84-88)·서은영(간호90-94) 지도교수, 황규영(간호대 석사과정) 조교가 동행해 총 44명의 팀을 꾸렸다.
기자가 현장을 찾은 것은 활동 6일째 되는 8월 10일. 아침 8시쯤 숙소를 출발한 단원들은 학교에 도착하자마자 일사불란하게 짐을 나르고 일과를 준비했다. 하나둘씩 등교한 아이들이 그새 눈에 익은 단원들에게 ‘나마스테’ 인사하며 탐스러운 꽃송이를 건넸다. 건물과 건물 사이 보도블록 바닥에 천막을 친 마당이 곧 이들의 운동장이자 쉼터. 1학년(6세)부터 9학년까지 170여 명의 학생이 학년별로 도열해 우렁찬 목소리로 교가와 네팔 국가를 부르고 교실로 향했다. 전날에 이어 차임벨 연주, 마라카스 만들기, 버킷리스트 꾸미기, 피구 등 음악과 미술, 체육 수업이 시작됐다.
교육 나눔 중에서도 예체능 수업을 택한 이유는 이들에게 가장 절실했기 때문. 네팔의 공립학교는 사립학교에 비해 학비가 10배 정도 싸지만 교육환경이 열악하다. 특히 예체능 교육에서 큰 격차가 있다. 이 학교에서도 예체능 수업이 거의 이뤄진 적 없다.
재학생 단원들은 한국에서 준비해온 교구들을 펼치고 열정적으로 수업했다. 교실마다 모교 단원과 현지 단원이 짝지어 들어가서 모교 단원이 영어로 설명하면, 현지 단원이 네팔어로 바꿔 아이들에게 전달했다. 페인트가 벗겨진 낡은 교실엔 전등도 선풍기도 없어 햇빛과 자연 바람에만 의지했지만 배우는 이도, 가르치는 이들도 즐거워 보이기만 했다. 아이들은 색색의 펜으로 ‘바다를 보고 싶어요’ , ‘한국에 가고 싶어요’ 등 버킷리스트를 적어 꾸미고, 요구르트 병으로 만든 마라카스를 색칠하고, 공을 던지며 놀이처럼 수업을 들었다.
동시에 학교 건물 3층에선 동문 단원들이 학부모 교육과 신체 계측을 진행했다. 예상했던 60여 명보다 더 많은 인원이 모인 가운데 조유진·이수진 동문이 건강을 위한 생활습관을 강의하고, 최보람 자문단원이 ‘자존감 높은 아이로 키우는 방법’을 알려줬다. 이수진 동문은 “네팔은 전 세계에서 호흡기 질환으로 사망하는 사람 비율이 가장 높은 국가”라며 “생활 속 금연 교육과 환기의 필요성을 알리는 게 가장 시급해 강의 주제로 정했다”고 했다. 이곳 벽엔 선풍기가 몇 대 달려 있었지만, PPT 자료를 띄우니 전력이 부족해 켤 수 없었다. 불평 없이 경청하는 아버지, 어머니들의 모습에서 뜨거운 교육열을 느꼈다.
네팔 SNU공헌단이 찾은 ‘Shree Chhampi Devi Secondary School’ 전경.
동문 단원들이 진행한 학부모 신체계측을 받기 위해 줄을 선 현지 주민들.
이수진 동문이 진행한 학부모 교육에서 현지 학부모가 퀴즈를 맞히고 있다.
같은 장소에 동문 단원들이 혈압계와 혈당 측정기, 체중계 등을 설치하자 간이 신체검사장이 뚝딱 마련됐다. 20대부터 60대까지 다양한 나이대 학부모와 입소문을 듣고 온 주민들이 키·체중·혈압·혈당·체온을 재기 위해 줄을 섰다. 동선의 끝에선 성인간호학 전공인 서은영 지도교수가 검사 결과가 적힌 개인 기록지를 보며 협력 단원의 통역을 거쳐 꼼꼼하게 상담을 해줬다.
네팔에선 약사가 간단한 진료와 처치를 도맡아 사람들이 병원에 잘 가지 않고, 오늘 처음 키와 몸무게를 재 보는 주민도 있다는 공헌단 관계자의 설명. 동문 단원들은 즉석에서 BMI 지수까지 계산해 알려줬다. “두 달만 담배를 끊으면 혈압이 정상으로 돌아올 거예요. 그래도 높으면 꼭 의사에게 가세요”, “지금 42세인데 이 체중 그대로 두면 혈압이 점점 더 높아집니다. (통역에게) 정기적으로 운동하는지 한 번 물어주시겠어요?” 서 교수의 조언에 ‘일하느라 신경 못 썼다’며 멋쩍게 변명하고, ‘머리가 많이 빠진다’, ‘허리가 아프다’ 등 이참에 궁금한 것들을 묻는 모습은 어느 나라나 다르지 않았다.
다음날엔 동문 단원들이 주도해 전 단원이 학생들에게 신체 계측과 이닦기, 손씻기 교육 등 위생 교육을 했다. 소변 검사와 키트를 사용한 혈액형 판별도 했다. 저학년 교실의 이닦기 수업에선 세균맨으로 분장한 협력 단원들이 열연을 펼쳐 아이들을 깔깔 웃게 만들었다. 하지만 ‘오늘이 마지막 수업’이란 말에 고학년 학생들이 눈물을 터뜨리면서 학교는 이내 ‘눈물바다’가 됐다. 한 명 한 명 아이들을 안아주던 단원들도 빨개진 코끝으로 눈물을 훔쳤다.
마라카스를 만들어 연주 중인 네팔 학생들.
현지 학생들에게 이닦기, 손씻기 등의 위생교육을 했다.
네팔 학생들의 혈압, 키, 체중 등 신체계측을 진행했다.
모교 단원들이 수업이 끝난 후 헤어짐을 아쉬워하는 아이들을 달래고 있다.
흠뻑 정이 든 이들은 다음날 하루를 온전히 추억 만들기에 썼다. 땀이 뻘뻘 나도록 제기차기와 딱지치기 등 한국 전통문화를 즐긴 데 이어 학교에 설치된 가설 무대에서 흥겨운 폐회식을 열었다. 한국 단원들이 준비한 블랙핑크·BTS 등 케이팝 댄스와 태권도 공연에, 현지 단원들은 네팔 전통 춤과 노래로 화답했다. 네팔 학생들이 며칠 동안 배운 차임벨을 연주하고 팝송을 부를 때는 마음이 찡해졌다. 한 네팔 학생은 “새로운 것들을 가르쳐 주어 고맙고, 죽을 때까지 못 잊을 것”이라고 감사 인사를 했다.
활동 중 인상적이었던 것은 열악한 환경에서도 빛나는 네팔 학생들의 가능성이었다. 단원들이 준비한 수업에 높은 집중력을 보여줬고 낯선 사람에게 스스럼없이 다가가는 친화력은 모두를 무장해제시켰다. 고학년 학생은 영어로 간단한 대화도 가능했다. 이원일 코디네이터는 “네팔인들이 언어적으로 뛰어나다. 영어가 능통하고 힌디어도 방송이 많아 잘 알아듣는다. 한국어 또한 어순이 비슷해 금방 배운다”고 했다.
단원들은 ‘살인적인 스케줄’을 소화하며 하나라도 더 알려주려 노력했다. 이른 아침부터 엉덩이 한 번 못 붙이고 파김치가 된 몸으로 밤늦게까지 회의실에 모여 다음날 활동을 준비했다. 동문 단원도 선배라고 예외가 아니었다. 의무도 아닌데 이틀간의 신체 계측 결과를 데이터로 정리해 놓기까지 했다. 서은영 교수는 소변 검사에서 혈뇨가 나온 아이들의 이름을 전달하며 “추후 교장 선생님을 통해 학부모들에게 건강 검진을 권해야 한다”고 일러두기도 했다.
공헌활동 마지막 날 태권도 공연을 선보이는 모교 단원들.
현지 단원과 협력기관 단원들도 환상의 호흡을 보여줬다. 현지 단원들은 수개월 전부터 모교 단원들과 화상회의를 하며 수업 내용을 함께 짰다. 아이들의 시력 검사를 할 땐 아라비아 숫자 대신 네팔식 숫자만 배워 시력검사표 읽기를 어려워 하는 저학년들과 소통을 도맡았다. 현지 코디네이터들은 한국어-네팔어 통역을 맡아 동분서주하고 식사 등에 불편함이 없도록 단원들을 살뜰히 보살폈다. 10여 년간 한국과 공헌활동 현지를 오가며 쌓아온 공헌단의 노하우 덕에 모든 일이 톱니바퀴처럼 착착 맞물려 돌아가는 인상을 줬다.
소중한 여름 휴가를 공헌단 활동에 쏟은 동문 단원들은 자신의 자리로 돌아갔다. 두 차례 동문 단원으로 참가했던 신희수 동문은 8월 말 미국 하버드대 국제보건 석사과정에 입학한다. 곽윤서·배수현 동문은 9월부터 삼성서울병원에서 간호사 생활을 시작한다. 김성진 동문은 모교에서 중개의학 전공으로 박사과정을 이어간다.
동문 단원 팀장을 맡았던 배수현 동문은 "이번 파견에서 학생 단원들에게 열정을, 동문 단원들에게는 여유를, 네팔 현지 단원들에게는 따뜻함을, 네팔 현지 학교 아이들에게는 사랑을, 직원 및 통역사 선생님들과 자문 선생님들께는 감사함을 느꼈다. 그 중에서도 네팔 현지 아이들은 저희에게 대가 없는 사랑을 주었다"고 말했다. "말이 통하지 않더라도 항상 반겨주고, 우리를 기다리며 준비한 꽃을 건네주던 그 작은 손을 평생 잊지 못 할 것 같다, 저희가 가진 것을 나누고 사랑을 주려고 시작한 활동이었는데 되려 아이들에게 더욱 많은 사랑을 받았다"고 말했다.
또 "동문 단원들의 특성상 학생 단원일 때보다 상대적으로 제한된 시간 내에 해당 활동을 구성해나가야 한다는 부담감이 있었다. (준비하는) 3개월 동안 리더가 팀원들에 대한 신뢰를 바탕으로 큰 그림을 그려나가며, 빈 부분을 채워주는 역할을 하는 자리임을 알게 됐다"며 "대학생을 벗어나 사회인으로서 첫 발을 내딛기 전 마지막으로 하게 된 이번 글로벌 사회공한단 동문단원으로서의, 그리고 동문단원 팀장으로서의 경험이 인생으 전환점이 됐다"고 말했다.
졸업 전 글로벌사회공헌단에 학생 단원으로 참여했기에 동문 단원으로 재참여의 의미가 더 남다르다. 배수현 동문은 "동문 단원들과 이야기를 나누며 이런 봉사 활동은 해본 사람이 계속 한다는 걸 느꼈다. 학생이 아닌 신분으로 봉사횔동을 참여한 건 처음이었지만, 다른 단원들은 저보다 경험도 많고 과거 다양한 봉사활동을 계기로 나눔을 할 수 있는 기회가 생긴다면 그런 나눔을 실천하고 있었다. 이번 파견을 계기로 동문 단원, 그리고 학생 단원들은 계속해서 사회 공헌을 위해 힘쓸 것"이라며 "이런 좋은 기회를 마련해준 서울대학교총동창회에 감사의 말씀을 드린다"고 말했다.
교사로 재직하며 모교 국어교육과에서 박사과정 중인 조유진 동문은 “환경이 좋지 않은 공립 학교라고 들어 기대를 낮췄는데, 교사들의 수준도 높고 학부모님들이 강의를 열심히 들어주셔서 놀랐다”며 “아이들도 오픈 마인드로 뭐든 도전하고 열심히 하는 모습에 교사로서 배울 점이 많았다”고 말했다.
경동대 간호학과 교수로 재직 중인 이수진 동문은 “학생 단원과 달리 동문 단원은 전문성이 높은 게 차별점”이라며 “동문 단원을 선발할 때, 졸업한 지 얼마 안 된 젊은 단원과 임상 경험이 풍부한 의료진이나 연구자 동문을 이원화해 선발하면 좋겠다”고 제안했다. “의료 전문가 동문들이 지역 보건소나 교육 현장 등을 방문하고 지역사회 전체를 조망하는 활동을 펼친다면 공헌활동이 좀더 파급력을 가질 것”이라고 말했다.
박동열 지도교수는 “그동안 공헌단은 네팔에서 교육 봉사를 주로 해왔는데, 좀더 전문성을 살려 수의대, 농생대 등과 함께 지역 개발 사업으로 성장시켜도 좋을 것 같다”고 말했다. 또 “이곳 공헌단에서 학생들은 리더십과 문제 해결력을 배우게 된다. 한정된 파이를 향해 달려가는 게 아닌, 가치와 비전을 따라 도전적인 삶을 선택하는 이들이 공헌단 학생들이고 진짜 서울대의 인재들”이라며 관심을 부탁했다.
박수진 기자
네팔 SNU공헌단 동문단원. 윗줄 왼쪽부터 시계방향으로 조유진·곽윤서·이수진·신희수·배수현·김성진 동문, 네팔 어린이.
카트만두 현지에서 공헌활동을 마치고 기념사진을 찍은 네팔 SNU공헌단. 재학생 14명, 현지 단원 12명, 동문 단원 6명 등 총 44명으로 구성됐다. '네온샤인'이라는 팀명과 함께 정한 단체 포즈를 취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