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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14호 2021년 1월] 오피니언 관악춘추

시선의 높이가 생각의 높이다

오형규 한국경제신문 논설실장 본지 논설위원
관악춘추

시선의 높이가 생각의 높이다




오형규

국문82-89
한국경제신문 논설실장
본지 논설위원


새해 첫날을 산에서 맞은 분들이 많을 것입니다. 태양은 변함없이 떠올랐습니다. 코로나 팬데믹 1년 내내 눌리고 쪼그라든 느낌 탓일까요? 더 눈부시게 찬란해 서글퍼집니다. 그래도 탁 트인 정상에서 가슴을 활짝 펴봅니다.

산이라면 서울대 동문은 관악산부터 떠올립니다. 경기도에 ‘5악(岳)’이 있죠. 관악, 운악, 감악, 화악 그리고 개성 송악산이죠. 설악, 치악처럼 ‘악(嶽 또는 岳)’자 들어가는 산은 오를 때 정말 ‘악’ 소리가 납니다. 관악산도 만만한 산은 아니죠. 대학 때는 안 오르던 관악산을 종종 등산합니다. 그때마다 최루가스 자욱하던 젊은 날의 기억과는 판이한 관악캠퍼스의 풍광이 놀랍고 낯설게 다가옵니다. 세칭 ‘샤대문’과 본관 도서관 등 몇몇 건물을 빼고는 옛 모습을 찾기도 힘들죠. 부지는 410만㎡로 두 배는 넓어졌고, 60여 개이던 건물이 223개 동(棟)으로 불어났습니다.

1970~80년대 엄혹하던 시절, 검붉은 벽돌의 붕어빵 건물은 1동, 2동 숫자로 불렸죠. 국립대학도 군대처럼 번호를 붙이고 ‘각’을 잡아야 했나 봅니다. 그래서 생각까지 규격화, 획일화했던 시절도 있었죠. 공간이 생각을 만든다고 했나요? 다양성과 개성이 한껏 고양된 이런 캠퍼스에서 다시 공부하면 얼마나 좋을까 상상해 봅니다.

등산 도중 바위 턱에 앉아 캠퍼스를 바라보면 이런저런 상념이 듭니다. 서울대는 우리에게 무엇이고, 우리는 서울대에 무엇인가? ‘진리는 나의 빛(Veritas Lux Mea)’이란 가르침에 부끄러웠던 적은 없었을까?’ 자꾸 지난 세월을 돌아보게 됩니다. 하지만 단군 이래 최고 스펙을 가진 후배들이 캠퍼스를 떠나지 못한다고 하네요. 서울대 졸업장이 더 이상 ‘취업 보증수표’가 아닌 세상이니까요.

정상에 서니 자연스레 ‘시선의 높이가 생각의 높이다’라는 철학자 최진석의 경구가 떠오릅니다. 생각의 높이가 삶의 높이요, 삶의 높이가 사회와 국가의 높이가 된다는 것이죠. 산에 올라보면 더 공감이 가는 말이죠.

드넓은 캠퍼스도 관악산 꼭대기에선 작은 마을처럼 보입니다. 그 안에 미래 노벨상도 있고, 캠퍼스 정치도 있겠죠. 그러나 고개를 돌리면 사방으로 끝없는 산들과 건물 숲이 눈에 들어옵니다. 이 땅에서 삶을 영위하는 이들에게 서울대는 어떻게 비칠까요? 저 멀리 더 높은 산들에서는 무엇으로 보일까요?

연초 다짐은 대개 부질없죠. 그래도 새해엔 더 높이 올라 더 멀리 보겠다고 다짐해 봅니다. ‘생각대로 살지 않으면, 사는 대로 생각하게 된다’(폴 부르제)고 했으니까요. 코로나가 빨리 사라지고, 모든 분이 건강하시면 좋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