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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10호 2020년 9월] 오피니언 관악춘추

공부 잘했던 1%의 有終

이용식 문화일보 주필, 본지 논설위원 칼럼
관악춘추

공부 잘했던 1%의 有終



이용식

토목공학79-83
문화일보 주필
본지 논설위원


서울대에 입학하는 사람은 매년 출생자의 1%가 되지 않는다. 올해 모집 정원이 3,400명 수준이니, 2001년 출생 51만명과 비교하면 0.7% 정도다. 최근 매년 30만명 전후로 급감한 것과 비교하면 1% 수준이다. 1971년까지는 매년 100만명 이상 태어났다. 이들 세대의 서울대 입학은 더욱 좁은 문이었다.

이 때문에 어려서는 가족과 사회의 사랑을 받았고, 대학 재학 중에는 국가의 지원을 받았고, 졸업 뒤에도 유형무형의 혜택을 누릴 수 있었다. 이에 부응해 ‘공부 잘했던 1%’는 각 분야의 최고 전문가이자 지식인으로서 역할을 다했다. 자신이 속한 분야를 불모 상태에서 70여 년 만에 세계 최고 수준으로 끌어올리는 데 중심 역할을 했다. 그런데 안타깝게도 역사상 처음으로 국가의 후진을 걱정해야 할 상황에 직면했다. 정치 경제 사회 안보 등 모든 분야에서 한꺼번에 경보가 울린다.

이런 상황을 극복하는 것도 동문들 어깨에 달려 있다. ‘누가 조국의 미래를 묻거든 눈을 들어 관악을 보게 하라.’ 이 말을 비아냥대는 사람이 더 많을 정도로 동네북 신세가 됐지만, 그래도 책임을 저버릴 순 없다. 아무리 힘들어도 가장이 가정을 버려선 안 되듯이, 세상이 알아주지 않는다고 포기해선 안 된다. 그런 세태를 바꾸는 것도 책임의 일부분이다.

최근 과학과 전문지식의 죽음이라고 할 정도로 몰상식이 판친다. 인터넷은 모든 사람에게 전문가인 양 착각하게 만드는 토대가 됐다. 여기에 갈수록 극단화하는 정치적 이념적 진영 대결이 겹쳤다. 포퓰리즘 경쟁, 삼권분립 약화, 법치 신뢰 추락, 탈원전과 4대강 혼란, 경제정책 난맥, 코로나19 대응 혼선 등은 나라를 어디로 끌고 갈지 모른다.

국가와 사회가 비전문적 선동가들에 휘둘리지 않도록 동문들이 전문가로서의 전문성, 지식인으로서의 책임감을 더욱 발휘해야 할 때다. 다양한 견해 차이를 딛고 함께 사이비 지식을 극복하는데 서울대 동문이라는 점이 도움이 될 것이다.

이 순간에도 많은 동문들이 묵묵히 그런 역할을 수행하고 있다. 현업에서 물러난 선배 동문들도 무언의 지식(tacit knowledge)을 전하고 나름의 사회공헌에 열심이다. 인생 초입이 공부 잘하는 학생이었다면, 이젠 한 구석을 지킴으로써 천리를 밝히는 수일우 조천리(守一隅 照千里)의 자세로 인생의 유종(有終)에 임해야 한다.

그런 점에서 동문들이 대학 시절 즐겨 읽던 장 폴 사르트르의 ‘지식인을 위한 변명’의 표현을 소개한다. 지식인에게 무엇보다 중요한 일은 권력의 궤변을 행동을 통해 끊임없이 고발하는 일이다. 지식인의 가장 직접적인 적은 ‘집 지키는 개’로도 불리는 사이비 지식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