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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08호 2020년 7월] 오피니언 동문칼럼

코로나19 극복과 협력적 거버넌스

남궁근 서울대 법인이사·전 서울과기대 총장

 
코로나19 극복과 협력적 거버넌스




남궁근

정치72-76
서울대 법인이사·전 서울과기대 총장


방역 성공, 증거 기반 정책 덕
경제 해법도 현장에서 찾아야


지난 해 12월 말 중국에서 최초로 발생한 코로나19 감염병이 6개월이 지난 현재에도 세계적 확산을 지속하고 있다. 코로나19 이후 정치·경제·사회를 포함한 인류 사회 각 분야의 흐름이 어떻게 바뀔지 불확실한 가운데 확실한 것은 위기가 잦아든다고 해도 그 이전 시기로 완전히 돌아가기는 어렵다는 것이다. 이른바 ‘코로나 뉴 노멀’ 시대의 개막이다. 코로나19가 발생하기 이전에도 4차 산업혁명의 충격으로 세계 각국에서는 산업구조 개편, 생산수단과 소비재 공유, 자동화에 따른 대량 실업 발생, 재택근무 중심의 노동환경 변화, 전자화폐 사용 등 대대적인 경제적 변화가 예상되었고, 소득 양극화에 따른 사회계층 간 갈등의 심화와 복지 수요의 급증이 예견된 바 있다.

코로나19는 4차 산업혁명의 영향으로 산업의 ‘디지털 트랜스포메이션’ 흐름이 본격화되고 있는 시점에서 발생했다. 코로나19 이후 각국 정부는 강력한 ‘사회적 거리두기’와 ‘집에 머무르기’(stay home)를 강제 집행하거나 강력하게 권고하고 있다. 이제 사람들 사이의 잦은 만남과 물리적 접촉은 더 이상 미덕이 아닌 시대가 됐다. 공공과 민간 영역을 불문하고 정보통신기반 신기술을 활용한 비대면 업무처리와 재택근무가 증가하는 추세이다.

코로나19는 탈세계화(deglobalization)에 따른 세계질서 재편을 가속화시키고 있다.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아메리카 퍼스트’, 영국의 EU 탈퇴 등으로 대변되는 정치 분야의 탈세계화 경향이 경제 분야로 확대되었다. 1989년 독일 베를린 장벽 붕괴와 1991년 구소련 붕괴에 따른 동서냉전 종식 이후 30년 가깝게 진행되어온 세계화 추세가 뿌리부터 흔들리고 있다. 코로나19로 상품과 서비스, 자본과 기술, 노동력의 자유로운 이동에 바탕을 둔 글로벌화된 생산방식과 공급망의 취약성이 드러나 글로벌 기업들의 생산기지가 국내로 복귀되고, 국제사회는 공조보다는 자국 중심의 경쟁체제로 전환될 가능성이 크다.

가장 심각한 문제는 세계적인 경기침체와 대규모 실업 발생에 따른 양극화 현상의 심화이다. 사회적 약자층이 코로나19 감염병에 노출될 위험이 더욱 큰 것은 물론 자영업자, 소상공인, 일용직 근로자, 청년층을 포함한 취약계층에 경제적 피해가 훨씬 큰 것으로 나타났다. 국제노동기구(ILO)에 따르면 코로나19 유행 이후 청년층 노동자 6명 가운데 1명 이상이 실직했고, 남성보다 여성이 더 많이 실직한 것으로 밝혀졌다. 우리나라 통계에서도 청년층과 여성, 임시·일용직 근로자가 코로나19의 영향을 더 크게 받고 있으며, 특히 제조업 분야에서 취업자가 감소했다.

이같이 4차 산업혁명에 따른 대전환이 진행되는 과정에서 코로나19의 충격이 가세하면서 인류의 생활양식이 송두리째 바뀌고 있다. 우리는 비대면 업무처리, 탈세계화 추세와 글로벌 공급망 붕괴, 인공지능(AI) 등 4차 산업혁명에 따른 노동수요 감소, 경제위기 심화와 취약계층 실업자 양산과 같은 우울한 상황에서 벗어날 수 있을까?

코로나19 팬데믹 발생 이후, 지난 6개월의 경험을 돌이켜 보면, 우리의 미래는 우리가 어떻게 대처하는지에 달려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국가별 코로나19 감염자와 사망자 수는 국가지도자의 상황인식에 따른 정책 대응방식과 시민사회의 협력 정도에 따라 크게 달라진 것이다. 독일을 예외적으로 볼 때 유럽과 북미 선진 민주주의 국가들의 코로나19 대응방식과 그 성과는 대체로 실망스러운 편이다.

한국은 발빠른 검진키트 승인, 드라이브 스루 검진을 포함한 대규모 검체 검사, 확진자 동선 공개와 접촉자 자가격리 조치 등으로 감염병 확산을 효과적으로 억제한 성공적인 방역 모델로 세계의 주목을 받았다. 한국의 모델은 중국과 같은 권위주의 국가의 감시와 통제 모델이 아니라, 국가와 시민사회 간의 신뢰와 협력에 기초를 두고 있다. 질병관리본부와 의료계를 중심으로 전문가 집단이 적절한 대안을 제시했고, 정부 지도자는 그 조언을 비교적 충실하게 받아들여 방역정책을 펼쳤다. 이는 의료분야 전문가들이 제시한 ‘증거에 기반을 둔 정책’(evidence-based policy)의 좋은 사례로 볼 수 있으며, 정책결정자인 대통령의 편견이나 검증되지 않은 탁상공론에 의존하는 소위 ‘의견기반 정책’(opinion-based policy)를 펼치다가 감염병 확진자와 사망자가 속출한 일부 국가와는 크게 대조된다.

또한 헌신적인 의료진과 정부 정책에 협조하는 시민들의 성숙한 공동체 의식이 방역 성공의 비결이었다. 한국은 선진적인 방역시스템을 갖추었고, 정보통신 인프라와 시민사회의 역량이 뒷받침되었기에 국민의 자유와 인권 침해를 최소화하면서 코로나19 감염병에 적절하게 대처한 것이다.

방역뿐 아니라 민생경제를 회복하는 데에도 정부와 시민사회의 협력적 거버넌스가 작동되어야 한다. 민생경제 회복의 원동력은 코로나19 감염병 때문에 가장 피해가 큰 자영업자, 소상공인, 일용직 근로자, 청년층을 포함한 취약계층에 대한 ‘사회적 배려’와 ‘연대 활동’이다. 학계를 포함한 정책전문가 집단의 연구에서 민생경제 회복에 효과적인 정책대안들을 찾아야 한다. 집행현장 실무자들의 경험과 전문성으로부터 도출된 증거 역시 중요하다.

정책수혜자인 주민의 특성과 요구, 가치와 선호 등에 관한 지식 역시 증거로서 통합되어 판단되어야 진정한 증거기반의 정책이 수립될 수 있다. 이같이 증거에 기반을 두고 수립된 민생경제 회복정책을 집행하는 데 정부는 물론 시민사회가 적극적으로 협력해야 코로나19 위기를 효과적으로 극복할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