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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23호 2021년 10월] 오피니언 동문칼럼

법 있어도 찍지 않는 수술실 CCTV 됐으면

김동규 모교 의대 명예교수·‘마음 놓고 뀌는 방귀’ 저자
 
법 있어도 찍지 않는 수술실 CCTV 됐으면




김동규
의학72-78
모교 의대 명예교수·‘마음 놓고 뀌는 방귀’ 저자


환자의 믿음깬 소수 의사 영향
신뢰 회복 노력이 진정한 해법

기나긴 논란 끝에 수술실에 CCTV 설치를 의무화하는 법이 결국 국회 본회의를 통과했다. 의료계에서는 반대 의사를 누누이 표명했지만 알 권리를 주장하는 환자 단체의 논리가 우세했던 결과다. 적지 않은 국민이 만시지탄이나 숙원이 마침내 이루어졌다고 환호성을 올리고 있다. 반면에 법이 선포되고 2년의 유예기간이 있다지만 벌써 수술을 담당하는 외과계 의사들은 수술자가 잠재적 범법자로 인식되는 상황에 불편한 마음을 감추지 못하는 실정이다. 의사협회 등 의료 단체는 몹시 격앙된 상태로 반대 성명을 발표하고 나아가 헌법소원도 불사할 태도다.

법이 막 통과했기 때문에 지금은 양측 모두 격한 감정을 추스르지 못하고 이처럼 각자 팽팽하게 찬반의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하지만 서로 비난하고만 있을 것이 아니라 주어진 2년 동안 의료 공급자와 소비자 모두에게 득이 되도록 운용의 묘를 기하기 위한 지혜를 모으는 일이 급선무가 아닐까. 세계 최초로 만들어진 법이라고 들었는데 참고할 만한 선례가 없어 실제로 법 적용이 시작되면 예기치 못한 심각한 부작용이 발생할지도 모르기 때문에 이제부터라도 머리를 맞대는 것이 더더욱 중요하다.

과거에도 수술 중 의료사고를 정확히 규명하기 위해서, 혹은 마취 상태에서 성추행 등 환자에 대한 비도덕적 행동 등을 입증하기 위해서 수술실 내에 CCTV를 설치하자는 의견이 간간이 있었다. 그러나 법이 입안된 직접적인 발단은 근래에 일부 의료기관에서 엉뚱한 의사나 무자격 의료인이 시행하는 소위 ‘유령수술’이나 의료기기를 몸에 삽입하는 수술을 할 때 이를 취급하는 상인이 수술에 참여하는 등 불법적인 사례가 심심치 않게 적발됐기 때문이다. 

일부라 해도 의사 스스로 환자의 믿음을 저버린 몰염치한 행동에 환자들이 권리를 찾기 위해서 CCTV를 설치하자는 주장이 설득력이 없지 않다. 수술받기로 한 의사 아닌 다른 의사가 수술하는 것을 용인할 사람은 많지 않다. 더구나 무자격자가 수술하는 상황은 생각하고 싶지도 않을 일이다. 환자는 쉽게 이해되지 않는 이유로 수술 후 사망하거나 불구가 된 걸 쉽게 받아들이기 어렵고 정신이 없는 상태에서 자신의 신체에 부적절한 행위가 이루어지는 건 생각만 해도 소름 끼치는 일이다. 의사는 당연히 이런 환자의 불안한 마음을 헤아려야 마땅하다.

논란의 단초는 의사가 제공한 것이 사실이지만 의사들이 수술실 내 CCTV 설치를 쉽게 동의할 수 없는 이유 역시 그르다 할 수 없다. 매스컴에 몇몇 사례가 크게 보도돼서 그렇지 실제로 문제 의사의 수는 많지 않다. 소명 의식을 갖고 의료에 임하는 대다수의 양심적인 의사들은 자신이 도매금으로 질타를 받는 상황에 몹시 분개하고 있다. 누구나 마찬가지지만 자신의 일거수일투족을 타인이 들여다보는데 감정이 좋을 리 없다. 힘들고 위험 부담이 높아도 사명감 하나로 버텨온 외과 의사의 자존심을 무너트릴 것이 확실하다.

그렇지 않아도 외과 의사 지망률이 감소하는 마당에 수술을 담당할 의사가 점차 줄어들고 합병증 발생 가능성이 많은 수술을 피하게 될 현상이 불 보듯 뻔하다. CCTV를 매개로 의사와 환자 사이에 다툼이 급증할 것이고 잘잘못을 떠나 송사를 한 번 당한 의사는 몸과 마음이 위축될 것이다. 의사가 몸을 사리게 될 상황이 곧 현실이 될 것이 자명한데 결국 피해가 누구에게 돌아갈지는 어렵지 않게 추측할 수 있다. 자칫 잘못하면 빈대 잡으려다 초가삼간 태우는 격이요, 교각살우(矯角殺牛)의 우를 범하는 꼴이다.


첨예한 대립을 쾌도난마식으로 일거에 해소할 뾰족한 방법은 없으나 문제를 원만하게 풀기 위해서는 의사의 손에서 해결책이 비롯해야 한다. 아주 일부에서 벌어진 일이지만 잘못된 의료 때문에 불신을 자초한 당사자는 의사이기 때문이다. 결자해지의 차원에서 하루빨리 의사는 잃어버린 환자의 신뢰를 스스로 회복하는 데 온 힘을 기울여야 한다. 더구나 의료 현장에서 의사는 소위 ‘갑’이 아닌가.

의사가 되면서 이미 히포크라테스 선서를 했으나 다시 한번 의사가 국민을 상대로 윤리 선언을 하면 어떨까. 의료를 행함에 양심에 반하는 행위를 일절 하지 않을 것을 다시 한번 천명하고 의사 단체는 철저한 자기 정화의 노력을 기울이겠다는 약속을 하자. 

의료 소비자 역시 법이 있다고 무턱대고 녹화를 요구하는 것이 능사가 아니다. 의사를 위축시키면 피해가 환자 본인에게 돌아갈 수 있기 때문이다. 

다소 맥빠진 제안이지만 어려울수록 초심으로 돌아가라고 하지 않았나. 의료가 시작했을 때 의사와 환자 간 관계의 기초가 신뢰였으니 이를 회복하는 노력이 문제 해결의 핵심이 아닐까. 예전처럼 서로를 믿는 관계가 된다면 의사는 소신 진료가 가능하고 환자는 법은 있어도 CCTV 촬영을 요구할 까닭이 없을 것이다. 

나아가 의료분야뿐 아니라 사회 전반에 팽배해 있는 불신을 없애기 위하여 분쟁이 생기면 법을 만든다는 발상보다 갈등의 근본 원인을 찾아 해결해 보려는 노력이 절실한 시기라고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