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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31호 2022년 6월] 오피니언 동문칼럼

거꾸로 가는 세계화 시대, 스산한 풍경

김용범 전 기획재정부 1차관

거꾸로 가는 세계화 시대, 스산한 풍경



김용범
경제81-85
전 기획재정부 1차관



글로벌 위기 연속에 협력 균열
자원자급도 낮은 한국 큰 고민


올 3월에 ‘격변과 균형’이라는 책을 펴냈다. 이 책은 팬데믹이라는 미증유의 사태가 불러온 구조적인 변화를 정리하고 그 충격에 맞서 우리 사회가 시급히 해결해야 할 정책과제에 대한 필자의 생각을 담았다.

책은 크게 1부와 2부로 구성된다. 1부에선 팬데믹 이전에 가장 중요한 사건이었던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전과 후의 변화를 점검하고, 그보다 더 큰 충격을 불러온 코로나19 팬데믹 위기의 전개 과정과 특징, 그로 인한 구조적인 변화를 점검했다. 2부에서는 팬데믹 이후 지속 가능한 체제를 만들기 위해 우리 사회가 관심을 가지고 들여다봐야 할 핵심주제와 제언을 담았다.

2부 제언 부분은 여섯 가지 키워드로 압축할 수 있다. 복합위기, 재정정책, 양극화, 디지털 플랫폼, 가상자산, 탄소중립. 세계 경제가 복합위기의 징후를 보이는데, 실제로 그런 위기가 전개된다면 한국경제에 혹한의 시기가 올 수도 있다. 전대미문의 위기를 극복하기 위해선 재정정책의 방향을 재정립해야 한다. 책에서 복합위기의 양상과 재정정책을 둘러싼 논쟁을 심층적으로 다룬 이유이다. 위기 극복을 위한 확장재정을 주장하기 위해선 중장기 재정건전성을 위협하는 요소에 대한 구조개혁이 병행되어야 할 것이다.

2부 3~6장은 구체적인 정책 주제를 다뤘다. 3장에선 양극화 문제의 해법 중 하나로 우리 사회의 가장 큰 문제인 노인 빈곤을 해결하기 위해 75세 이상을 대상으로 노령연금을 한시적으로 월 20만원 추가 지급하는 아이디어를 제안했다. 4장과 5장은 디지털 전환이 가속화되면서 제도와 현실 간의 괴리가 가장 심각한 분야인 플랫폼과 가상자산에 대한 규제의 틀을 정비하자는 내용이다. 플랫폼과 가상자산 영역에서는 국가의 통화주권의 미래와 관련하여 무시할 수 없는 혁신과 도전이 일어나고 있다. 

변화의 속도와 충격에 비해 정부와 국회의 제도적 대응은 단편적이고 한가롭다. 특별히 5장 후단에 2017년 12월의 가상자산대책 경과를 실었다. 가상자산거래소를 전면 폐쇄하기로 한 결정이 어떻게 급선회하여 지금과 같은 실명확인시스템으로 결론지어졌는지 그 생생한 전말을 에피소드 형태로 최초 공개했다. 6장은 새 정부가 해결해야 할 핵심 국정과제인 탄소중립 액션플랜을 다뤘다. 지금 국제사회와 투자자는 기후위기에 극도로 민감해져 있다. 제조업 강국인 한국이 약속한 대로 탄소 저감을 할지 의구심 어린 눈으로 바라본다. 이들을 설득시킬 실효성 있는 녹색전환 프로그램을 짜고 제조업 경쟁력도 보전하는 방법을 찾는 것이 절체절명의 과제다.

책의 초고를 마감한 후에 우크라이나 전쟁 발발이라는 새로운 격변이 일어났다. 2022년은 2년여 간의 팬데믹 위기를 벗어나 정상화로 가는 첫해가 될 것이란 기대가 컸는데 2월 24일 터진 우크라이나 전쟁으로 긍정 전망에 어두운 그림자가 드리워졌다. 2008년 글로벌 위기와 2020년 팬데믹 위기에 버금가는 제3 충격파라고 할만한 사건이 일어난 것이다. 이 돌발사태는 에너지 위기, 식량 위기, 공급 교란, 인플레이션 현상 등 팬데믹 이후 발생한 문제를 훨씬 더 악화시키고 관련 사태가 조기에 해결될 가능성을 희박하게 만들었다. 미국 연준의 빅 스텝 금리 인상과 자산 축소 예고 조치로 장기채권금리가 예사롭지 않은 상승 움직임을 보이며 40년 채권금리 하락 추세에서 이탈할 조짐을 보인다. 미국 달러의 나홀로 강세가 불러온 충격은 신흥국 경제의 외환 사정과 금융안정에 크나큰 부담을 주는 데 그치지 않고 유럽과 일본, 중국 등 주요국 통화에도 심상치 않은 하방압력으로 작용하고 있다.

지금은 어느 시기인가? 최근에 세계 최대 자산운용사인 블랙록(Black Rock)의 래리 핑크(Larry Fink) 회장은 “우크라이나 전쟁으로 우리가 지난 30년간 알고 있던 세계화는 종언을 고했다”라고 말했다. 

‘격변과 균형’ 초고에 경제위기, 금융위기, 지정학적 위기 등이 한꺼번에 몰려오는 복합위기의 징후가 보인다고 썼는데 지금은 복합위기 ‘징후’가 아니라 ‘진정한’ 복합위기의 시대가 도래한 느낌이다. 특히 에너지와 원자재, 식량이 주요국 간 갈등의 주요한 수단으로 활용되는 새로운 현상은 우리처럼 자원에 대한 자급도가 낮은 개방된 나라에 경제와 안보, 양 측면에서 실존적인 고민을 안겨 준다.

세계는 21세기 초입에 벌써 두 번이나 글로벌 차원의 초대형 위기를 경험했다, 다행히 글로벌 체제가 그 충격에 무너지지는 않았으나 양극화, 에너지 위기, 금융시스템 불안정 등 풀어야 할 문제의 크기는 나날이 커지고 있다. 위기가 불러온 충격으로 기존 질서의 상당 부문에 새로운 단층(fault lines)이 생겨나 예전의 이론으로 설명이 안 되거나 효과성이 떨어지는 영역이 다수다. 복합위기에 따른 구조적 변화는 기존 대응 방식을 무력화시키고 있다. 

개인, 기업, 국가 차원에서 승자와 패자의 지위가 급변하기 쉬운 시대가 도래했다. 사업과 투자의 위험이 커진 동시에 누군가에겐 새로운 기회의 장이 활짝 열렸다. 다양한 세대, 다양한 분야의 전문가들이 함께 머리를 맞대고 달라진 현실을 이해하고 해법을 찾아야 하는 시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