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사보기

Magazine

[526호 2022년 1월] 오피니언 동문칼럼

평균주의로부터의 해방

이우일 한국과총 회장·모교 명예교수
 
평균주의로부터의 해방




이우일
기계공학72-76
한국과총 회장·모교 명예교수


규격화된 지식전수 시대 지고
개인맞춤형 학습 시대가 뜬다

 
지금까지 인류 역사상 가장 큰 변화는 산업혁명에서 비롯되었다고 생각한다. 산업혁명 이후의 인구, 기대수명, 소득의 증가세는 가히 폭발적이다. 그에 따라 사회도 급격히 변화했는데, 변화의 방향은 대부분의 분야에서 ‘평균’을 지향해 왔다. 

산업에서 분업이 보편화되면서 생산성이 급격히 늘어났고, 교육에서는 평균적 시민을 만들기 위한 공통 교과 내용이 제공되었다. 국가 시스템을 평균에 맞춘 국가들은 일찍이 선진국이 되었고, 그렇지 못한 나라들은 식민지가 되었다. 이유는 간단하다. 어차피 개개인의 특성을 파악하고 관리할 수 없다면 하나의 기준에 맞추어 일사불란하게 움직이는 것이 훨씬 효율적이기 때문이다. 

평균주의의 대표적 산물 중 하나가 지능 테스트, 즉 IQ 테스트이다. 이 테스트는 사람들에게 똑같은 문항으로 시험을 치르게 해 지적 능력의 우열을 평가한다. 30~40년 전, 감성지수인 EQ가 IQ만큼 중요하다는 뉴스가 소개되었을 때 많은 사람들이 고개를 갸우뚱했고, 오히려 농담의 소재가 될 만큼 EQ의 개념은 제대로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이제는 하워드 가드너(Howard Gardener)가 1980년 주장한 다중지능이론, 즉 지능은 한 가지 측면만 있는 것이 아니라는 주장이 정설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하지만 다수에게는 아직도 IQ 테스트가 익숙하다. 우리 시스템은 IQ로 대표되는 평균주의에 매몰되어 있는 것이다. 그러나 지금 세계를 호령하는 한류나 스포츠 스타들이 과연 IQ가 월등히 높을까? IQ만으로 사람의 능력을 평가하면 안 된다는 예들이 수없이 많지만 우리는 여전히 과거의 고정관념에 사로잡혀 있다. 왜 그럴까?

과거에는 사회가 다양하게 분화되지 못했고, 먹고 사는 일이 시급했다. 예술이나 스포츠를 잘하는 능력도 IQ만큼이나 중요한 뇌의 능력이지만 가치를 제대로 인정받지 못했다. 생산에 직접적으로 기여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더 결정적 이유는 인간의 다양성을 수용할 수 있는 수단이 없었다는 데 있다. 당시 개인에 대한 모든 데이터는 종이에 기록됐다. 기록만도 쉽지 않은 상황에서 개별적이고 체계적인 분석은 어불성설이며, 관리하는 입장에서는 한 가지 명료한 잣대로 인간의 능력을 평가할 수밖에 없었다. 그런데 컴퓨터가 보급되고 인터넷이 보편화되면서 상황이 달라지기 시작했다. ‘전산화’가 시작된 것이다. 

전산화 초기에는 컴퓨터의 역할이 그리 크지 않아서 종이 데이터를 관리하는 것이 더 효율적일 정도였다. 허나 반도체의 성능과 정보통신기술이 기하급수적으로 향상되면서 변화의 속도는 가팔라졌다. 지금 대부분의 사람들이 소지하고 있는 스마트폰 하나의 정보처리 성능은 1980년대의 슈퍼컴퓨터보다 뛰어나다. 또, 개인이 생산하는 엄청난 양의 데이터가 인터넷을 통해 유통됨과 동시에 클라우드에 축적되고 있다. 이 방대한 데이터는 오늘날 인공지능 부흥을 이끈 딥러닝의 연료가 되었다. 

이제는 상상을 초월할 정도로 복잡하고 세밀하게 개개인의 다양성을 평가할 수 있는 수단이 생겼다. 예컨대 유튜브 알고리즘은 개인의 취향을 인공지능 기술로 파악해 사용자마다 각기 다른 콘텐츠들을 맞춤형으로 추천한다. 개인의 다양성이 이미 상업적으로 이용되고 있는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람들은 특별한 계기가 없는 한 익숙한 것으로부터 벗어나려 하지 않는다. 

교육이 대표적이다. 우리나라 초·중등 교육은 오로지 대학 입시에 맞추어져 있고, 오랜 세월 수능이라는 하나의 잣대로 대학 입학을 결정해 왔다. 수능이라는 일종의 IQ 테스트로 문학을 전공할 학생과 물리학을 전공할 학생들을 가려낸 것이다. 최근에는 수시 선발의 비율이 더 높아지기는 했지만, 여전히 입시제도가 개인의 다양성을 합리적으로 평가할 수 있는지에 대해서는 논란이 많다.

문제는 대학으로도 이어진다. 학생들이 접하는 대학 체제는 이미 한 세기 전에 만들어진 것이다. 4년에 걸쳐 8학기 동안 정해진 학점을 이수하면 졸업장을 받는다. 한 과목당 3학점, 1주일에 3시간씩 15주에 걸쳐 지식을 전달 받는다. 이 시스템이 정착되고 100여 년이 지나는 사이 지식의 양은 엄청나게 늘어났다. 이를 적절히 취사선택해 ‘가르친다’ 하더라도 8학기를 고집할 이유가 없다. 이제 대학교육은 교육의 ‘끝’이 아닌 평생교육의 ‘시작’이어야 한다. 이에 공감하는 미네르바스쿨 같은 다양한 교육 방식이 전 세계적으로 시도되고 있다. 

그러나 여전히 우리 대학은 4년 동안 ‘가르침’을 받는 곳에 머물러 있다. 그 동안의 교육이 ‘가르침’, 즉, 규격화된 지식을 평균적으로 전수하는 것이었다면, 이제는 개인의 다양성에 초점을 맞추어 학생 스스로 ‘학습’ 하는 환경이 제공돼야 한다. 우리가 맞고 있는 디지털화로 연결된 세상에는 교육과 마찬가지로 더 이상 평균주의가 자리 잡을 여지가 없다. 평균주의로부터 스스로를 해방시키는 것이야말로 미래 세상에 적응하기 위한 변화의 시작이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