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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06호 2020년 5월] 오피니언 동문칼럼

신각수 전 주일대사 칼럼

코로나19는 ‘3차 대전’
명사칼럼

코로나19는 ‘3차 대전’


신각수
법학73-77
법무법인 세종 고문
전 주일대사


코로나19가 지구촌을 휩쓸면서 블랙스완이 되었다. 5월초 감염자 400만명, 사망자 28만명을 넘고, 세계 경제의 수요·공급·금융 모두를 직격하였다. 세계공급망이 기능부전에 빠졌고, 방역에 따른 이동중단으로 수요가 격감하였으며, 자금수요 급증으로 금융혼란이 이어지면서, 대공황 이후 최대의 경제혼란을 우려하고 있다. 한편 사람 이동의 정지, 인종차별, 권위주의 확산, 민족주의 고조, 포퓰리즘 강화 등 정치사회적 파장도 커지고 있다.

이렇듯 광범위한 대규모의 혼란은 ‘3차 세계대전’이라 칭할 정도다. 코로나바이러스는 인류를 상대로 확산 속도가 독감보다 4배 빠른 전격전, 무증상자도 전파하는 스텔스전, 전선이 특정되지 않는 비정규전, 모든 인간을 숙주로 하는 무차별전을 벌이고 있다. 이런 특성에 대응하여 기동성, 투명성, 차단격리 등 과감한 방역으로 밀집·밀폐·밀접을 막아야 하며, 조기 진압에 실패하면 의료체제 마비로 큰 희생을 치르게 된다. 코로나19는 방역과 경제, 환자 추적과 사생활 보호, 물리적 거리두기와 집단면역, 민주적 방식과 권위적 방식, 국내우선주의와 국제협조주의, 의료능력 붕괴 시 치료대상 선택 등 어려운 선택과 판단을 필요로 하며, 효과적 대응을 위한 최적 모델도 찾기 쉽지 않다.

포스트코로나 시대의 국제질서에 관해 백화제방(百花齊放)식 논의가 있지만, 모든 것이 불확실한 상황에서 예측은 간단치 않다. 1990년대 초 냉전 종식처럼 국제사회의 구조적 변화를 가져올지 여부는 코로나19의 진정 시기, 주요국들의 수습능력, 세계경제의 회복력, 국제협조 가동상황, 코로나19 대응에의 적응 정도 등 여러 변수로 결정될 것이다. 가장 확실한 방안인 백신·치료제 개발은 일러야 내년 초로 예상되어 완전 진압까지 최소 2년이 걸릴 전망이다. 시간이 늘어질수록 코로나19로 인한 변화가 굳어져 새로운 패러다임으로 고착될 가능성이 높아진다.

주요국들은 코로나19 대응과정에서 통치(governance)문제의 민낯을 그대로 보여주었다. 중국은 정보통제로 발생사실을 숨겨 세계로 퍼지게 하고 우한봉쇄라는 강압적 통제로 진압하였다. 유럽은 중국여행자 유입을 방치하거나 집단면역에 의존하였다가 큰 희생을 치렀다. EU차원의 상호지원 또는 조직적 대응이 없는 가운데 내부의 벽만 높여 결속력을 약화시켰다. 일찌감치 중국 방문자에 문을 닫았던 미국도 11월 대선을 의식한 트럼프 대통령이 코로나19의 위험을 과소평가하고 대비를 게을리하여 가장 큰 인명·경제 피해를 입고 있다. 이런 상황이 대선까지 지속되면 민주당 바이든 후보의 승산이 높고 당선 시 미국의 대외정책에 변화가 예상된다. 도쿄올림픽 개최에 집착한 일본도 감염경로 파악이 어려운 가운데 사태가 악화하고 있다. 서구 전체가 과학보다 정치, 국제협조보다 자국 이익에만 집착하면서 기반이 약화되고 있는 자유주의 국제질서에 충격을 더하고 있다.

대혼란 속 방역 성공한 한국
외교 무대 위상 재정비 해야

코로나19사태는 이미 불붙은 미중 경쟁도 격화시키고 있다. 미국은 코로나19가 중국의 초기대응 실패로 세계로 확산된 데 대한 책임을 추궁하고, 중국의 역정보공작에 대해서도 반발하고 있다. 중국은 미국의 지도력 부재로 인한 공백을 의료지원의 매력외교를 통해 메우려는 외교공세를 펴고 있으나, 중국이 제공한 의료장비의 부실과 중국 책임론 부상으로 의도대로 되지 않고 있다. 미중 상호마찰의 증대는 미중 분리(decoupling)를 촉진할 것이다. 국제질서가 미국과 중국이 모두 국제공공재 제공 책임을 회피하는 ‘킨들버거 함정’에 빠져 초불확실성의 G-Zero 상태로 감으로써 국제사회의 혼돈이 심화될 우려가 커지고 있다.

지난 수십 년간 국제사회의 큰 흐름인 세계화에도 제동이 걸리고 있다. 이미 양극화, 미중 기술전쟁, 생산기지 본국 회귀(reshoring) 등으로 시작된 반세계화 움직임이 가속화될 것이다. 코로나19로 세계공급망이 지장을 받고 중국에 의료장비·의약품 공급이 집중된 문제가 부각되었다. 향후 기업들은 안정성을 기회비용으로 인식하여 팬데믹 대응능력을 갖춘 투자지 선호와 공급처 분산을 꾀하면서 지역·국내로 선회할 것이다. 다만 세계화를 통한 비용절감의 이익을 쉽게 포기하지 않을 것이므로 보완 수준에 머물 가능성도 있다. 코로나19로 인한 세계경제 침체는 유가폭락으로 에너지시장을 흔들고 있다. 미국경제에 중요한 쉐일산업이 도산위기에 몰려 미국의 에너지안보에 영향을 미칠 것이다. 또한 석유수출에 의존하는 러시아·중동·중남미 산유국들과 자원에 의존하는 개도국도 타격이 클 것이다.

팬데믹 대처를 위한 방역·경제지원으로 정부 역할이 증대되면서 권위주의가 확산될 위험도 높아지고 있다. 코로나19 수습과정에서 정부 역할증대로 민주주의가 위협받을 개연성과 함께 정부의 대규모 자금지원이 과두체제의 형성을 촉진할 위험도 있다.

팬데믹은 전 세계가 수습되지 않으면 어느 국가도 끝나지 않으므로, 실효적 대응에는 국제협력이 필수인데 현실은 정반대다. 세계보건기구(WHO)는 초기 비상사태·팬데믹 선언 지연과 방역 관련 중국 편향으로 신뢰를 잃었으며, 유엔이나 G20도 제대로 기능하지 못했다. 에볼라 사태 때 지도적 역할을 수행했던 미국은 국내 확산방지에만 신경 썼고 중국도 세계 확산을 막는 데 협조하지 않았다. 향후 팬데믹의 증가와 발생주기 단축 상황에서 국제체제 구축은 코로나19 종식 후 가장 시급한 과제다.

한국은 사스·메르스 경험, 발전된 IT·BT기술, 의료인력의 헌신, 뛰어난 의료보험제도와 의료시설 등에 힘입은 3T(진단·추적·치료) 전략 구사로 민주적 방역에 성공하여 국제사회의 평가를 받고 있다. 앞으로 2차 확산 가능성에 대비하면서 방역과 경제 살리기의 접점을 잘 찾고, 백신·치료제 개발을 위한 국제협력에도 적극 참여하여야 한다. 중견국가로서 가교역할을 통해 외교이익을 극대화하면서, 포스트코로나 시대의 국제정치 흐름에 맞춘 외교 정비를 꾀해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