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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38호 2023년 1월] 오피니언 동문칼럼

독박육아·유리천장…저출산 부추기는 불평등


독박육아·유리천장…저출산 부추기는 불평등


은기수
사회81-85
모교 국제대학원 교수·한국인구학회 회장


전통적 유교윤리, 출산에 악영향
성차별·혼외 자녀에 인식 바꿔야


2023년 새해에도 한국 사회에서는 세계에서 가장 낮은 수준의 출산력과 가장 빠른 속도의 고령화가 지속되고 있다. 인구위기를 넘어 한국 사회의 지속가능성을 위협할 정도다. 현 정부가 서두르고 있는 교육개혁, 연금개혁, 노동개혁은 모두 저출산·고령화라는 인구위기와 깊이 연관돼 있다.

저출산으로 초래된 심각한 사회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노력인 동시에 저출산 문제 해결을 위한 노력이다. 인구위기가 사회 곳곳에 심각한 문제를 초래하는 수준을 넘어 안보 위기로까지 번지는 상황을 고려한 조치다.

정부는 천문학적인 예산을 들여 저출산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올해부터는 만 0세 자녀를 낳아 양육하는 가정의 부모에게 월 70만원의 ‘부모급여’를 지급하는 정책도 도입된다. 현금지원뿐 아니라, 초등학교 학생에게 전일제 돌봄을 제공하며, 외국에서 실행 중인 거의 모든 선진적인 자녀양육 및 돌봄 정책을 도입, 실행하는 등 저출산 문제 해결을 위해 전력을 다하고 있다.

그러나 여전히 성공을 장담하기 어려운 상황이다. 천문학적인 예산을 들이고 수많은 선진정책을 모두 도입, 실행해도 왜 정부의 저출산 정책은 효과가 없고, 출산력은 계속 낮아만지는 것일까. 왜 세계적으로 유례없는 저출산이 계속되는 것일까.

여러 요인이 있겠지만, 조선시대 이래 이어지는 전근대적 유교 인식이 ‘문화적 전통’이 되어 출생, 교육, 돌봄, 주거, 노동시장 등 사회 전체에 영향을 끼치는 한국 사회의 특수성에서 그 해답을 찾을 수 있다.

첫째, 한국 사회는 결혼을 통해 꾸려진 ‘정상 가정’에서 출생한 아이만 ‘정상인’으로 취급받는다. 신유교주의에서 배태된 문화적 전통의 하나인 ‘정통성’ 때문이다. 결혼과 출산은 사회적으로 인정된 ‘정통적’인 방식을 따라야 한다는 강력한 사회적 규범이 작동하는 것이다. 누구나 결혼해야 가족을 이룰 수 있고, 결혼한 사람만 자녀를 출산할 수 있다는, 성, 가족, 출산의 ‘정통성’의 신유교주의 유산이 강력한 문화적 전통으로 작동하면서 출산력에 악영향을 끼치고 있다.

둘째, 과거 급제를 통해 양반 신분을 유지했던 사회적 관습이 학력 경쟁의 형태로 오늘날까지 계속돼 막대한 자녀교육 비용을 부담하게 된다. 오늘날 근대 한국 사회에서도 부모의 사회적 지위를 자녀에게 물려주거나, 부모보다 더 높은 계층으로 상향이동 시키기 위해 천문학적인 교육비용을 지불한다. 여전히 모든 개인은 가능한 최고 수준의 교육을 추구하여, 대학은 이미 대중교육이 되었고, 대학원 혹은 외국 유학이 선택사항으로 남아 있다.

이런 높은 교육수준을 배경으로 대기업에 취직하거나 안정적인 전문직에 종사하기를 희망하는 것이 현대 한국 사회의 부모와 자녀의 공통된 바람이다. 실상 전통시대의 양반의 삶과 다르지 않다. 2022년에 OECD가 지적한, 소위 한국사회의 ‘골든 티켓(Golden Ticket)’은 ‘현대판 양반되기’에 다름 아니다.

최고 수준의 교육을 마쳐도 노동시장에 진입해 안정적인 일자리를 찾기란 하늘의 별따기다. 20∼30대 청년들의 55%가 몰려있는 서울 및 수도권 지역에서 좋은 일자리를 찾고, 거주할 공간을 확보하기 위해서는 거의 전쟁 수준으로 치열하게 살아도 부족하다. 현실이 이러함에도 불구하고 맹목적 학력 경쟁을 통한 신분 상승과 이에 대한 인식 및 욕구는 변하지 않았다.

셋째, 여전히 후진적인 성평등 의식이다. 한국 사회의 구조적 성차별은 눈부신 경제성장과 민주화의 성공에도 불구하고 잔존해 있다. 이러한 인식은 한국뿐 아니라 일본, 중국, 대만 등 신유교적 문화 전통의 뿌리가 깊은 나라들에서 공통적으로 나타난다.

노동시장에선 성별에 따른 임금 격차와 출산·양육으로 인한 여성 경력단절이 당연시되고 있다. 가정에선 ‘독박육아’라는 신조어에서 알 수 있듯 자녀 양육 및 돌봄의 부담이 여성에게 전가돼 있으며, 정치 등 공적인 영역에서도 단단한 ‘유리천장’은 여전하다. 성불평등 및 성차별이 구조화된 사회에서 여성은, 자신이 결혼을 하고 자녀를 출산·양육하고 돌보면서, 원하는 일을 병행할 수 있다고 믿지 않는다. 아니, 믿을 수가 없는 게 현실이다.

이처럼 조선시대 이래 신유교적 문화적 전통은 현대 한국인의 삶에 여전히 깊이 뿌리내려, ‘정상 가정’에서의 출산, 무조건 최고 수준의 고등교육 추구, 수도권 집중, 성차별적 노동시장, 불평등한 가사노동분업 등 불합리한 사회구조 및 인식을 온존시키고, 한국 사회가 진정한 의미의 근대 사회로 나아가는 것을 가로막고 있다. 이러니 초근대적인 저출산 대응 정책도 맥을 못 출 수밖에 없다.

새 술은 새 부대에 부어야 한다. 근대적인 출산, 성평등, 가족 정책이 전근대적인 문화적 전통이 강력하게 작동하는 ‘전통적 근대 한국 사회’에서 성공할 가능성은 별로 없다. ‘한국적인’ 것이 세계적인 경우도 많지만, 글로벌 가치를 기반으로 한 진정한 근대 사회로 이행하여야 저출산 문제 해결의 가능성도 열리고, 한국 사회의 지속가능성도 확보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