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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08호 2020년 7월] 오피니언 관악춘추

마지막 순간의 존엄을 위하여

박 민 문화일보 편집국장 본지 논설위원
관악춘추
 
마지막 순간의 존엄을 위하여
 


박 민 
정치82-86
문화일보 편집국장
본지 논설위원


지난 7월 6일 영화음악의 거장 엔니오 모리코네가 타계하자 수많은 상찬과 헌사가 이어졌다. 동료 음악인 한스 짐머는 “그의 음악은 언제나 빼어났고, 크고 감정적인 용기와 엄청난 지적 사고로 이뤄졌다”고 평가했다. 주세페 콩테 이탈리아 총리는 “그는 우리를 꿈꾸게 하고, 흥분시키고, 음악과 영화의 역사에서 잊을 수 없는 기억을 만들어줬다”고 말했다. 그러나 이날 뉴스에서 마음을 사로잡은 대목은 “그는 마지막 순간까지 명석함과 존엄을 유지했다”는 유족의 말이었다.

모리코네 타계 하루 전 주요 언론들은 서울대 온라인 커뮤니티 ‘스누라이프’가 진행 중인 2020년 상반기 ‘부끄러운 동문상’ 투표 소식을 전했다. 이날 오후 4시 현재 집계 결과는 조 국 전 법무부 장관이 1,419명 중 1,287명(90.7%)의 선택을 받았고 유시민 노무현재단 이사장과 이해찬 더불어민주당 대표, 오거돈 전 부산시장, 이낙연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차례로 뒤를 이었다. 지난해 8월 실시한 2019년 상반기 투표에서도 조 전 장관은 86.9%의 득표율로 1위를 차지했다. 조 전 장관은 문재인 정부의 황태자였다. 지금은 다양한 범죄 혐의로 재판을 받고 있지만 여전히 강력한 팬덤을 갖고 있다.

이 대표는 거대 여당의 실세 대표고 이 의원은 지난해 6월 이후 13개월째 차기 대선 후보 여론조사에서 1위를 지켜온 정치인이다. 모두 대단한 레거시를 갖고 있지만 동문 사회에서는 명예를 지키지 못하고 있는 셈이다.

내년이면 언론계 입문 30년. 기자 생활을 접어야 할 시기가 턱밑에 도달했지만 돌이켜 기억할 성과는 미미하고 수습기자 때 품었던 결기도 시들해졌다. 그러나 100세 시대에 제2의 인생은 선택이 아니라 필수라고 한다. 새로운 인생에서는 ‘성공하는 삶’보다는 ‘더 나은 삶’을 꿈꾸고 싶다. 아담 스미스의 ‘도덕감정론’을 25년간 연구해온 미국 보스턴대 정치학과 라이언 패트릭 핸리 교수에 따르면 ‘더 나은 삶’을 위해서는 자신에 대해 신중함과 절제의 미덕을, 타인에 대해 정의와 자비심의 미덕을 갖춰야 한다. 이런 미덕을 갖추려면 자신을 새롭게 볼 수 있어야 한다.

자신과의 비판적인 거리를 두면 자신을 새롭고 공정한 시각으로 바라볼 뿐 아니라 다른 사람의 시각에서 자신을 보는 법을 배우게 된다는 것이다. 그리고 이런 성찰을 실천과 통합하는 패기가 필요하다.‘명석하다’는 칭찬에 익숙한 서울대인들이 마지막 순간까지 ‘존엄’을 유지하기 위해 가슴에 새겼으면 하는 교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