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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05호 2020년 4월] 오피니언 동문칼럼

한일 과거사 분쟁, 어떻게 넘을 것인가

김도형 동북아역사재단 이사장 칼럼

명사칼럼

 

한일 과거사 분쟁, 어떻게 넘을 것인가

 

 

김도형

국사72-76

동북아역사재단 이사장

 

가까운 나라 사이에 친밀한 관계는 거의 없다. 오랜 역사의 과정에서 형성된 결과이기도 하다. 한국과 일본의 관계도 그러하다. 현재 한일 관계의 어려운 국면은 모두 과거사 문제가 그 원인이다.

 

한일 간의 역사 문제는 식민지배를 바라보는 생각의 차이다. 일본은 한국 침략과 식민지배의 불가피, 합법적인 면을 내세워 그 침탈성을 부정하고 싶어 한다. 한국은 일제 침략의 불법성과 약탈성을 강조하고 있다. 해방 후 새로운 한일관계를 정립하고자 하면, 반드시 이 문제를 봉합하는 선에서 출발해야 했다. 그런데 이른바 ‘국교 정상화’를 이룬 1965년 한일협정에서 그러하지 못했다.

 

한일협정에서 과거 역사의 청산과 관련된 조항은 ‘한일기본조약’ 2조에 담았다. “1910년 8월 22일 및 그 이전에 대한제국과 대일본제국 간에 체결된 모든 조약 및 협정이 이미 무효임을 확인한다”고 하였다. 1910년 강제병합조약과 이에 이르는 한일 간의 조약을 무효화하고, 새로운 한일 관계를 시작하는 선언이었다.

 

그런데 이 조항에 대해 한일 간에 그 해석이 서로 달랐다. 다르다는 것을 인정하고, 각자 해석하도록 하는 선에서 이 조항을 넣었다. 해석이 다른 부분은 ‘이미’의 시점이었다. 식민지배에 이른 조약을 ‘무효’로 해야 새로운 조약이 발효될 수 있었지만, 강제병합조약과 이에 이르는 조약, 가령 을사늑약, 정미7조약 등이 ‘언제 이미 무효’였던가라는 점이었다. 한국은 당연하게 체결 당시부터 불의, 부당하고 불법적이므로 ‘이미’ 무효라고 보았다. 이에 비해 일본은 1948년 8월 15일 대한민국이 성립되었기에(패전국 일본의 의사와는 관계없이 성립되었지만), 이때 ‘이미’ 무효가 되었다고 하였다. 이 해석의 차이는 식민지배가 불법, 무효인가(한국), 아니면 합법, 유효인가(일본)라는 큰 골이 있었다. 이런 큰 골을 메우지 않고 한일협약을 맺은 것을, 학계에서는 냉전체제의 산물이라고 평가하고 있다.

 

1965년 한일협정에는 식민지배에 대한 일본의 ‘사죄’를 하나도 넣지 못했다. 1980년대 중반 이후, 한일관계의 많은 부분은 이 사죄 문제로부터 시작하였다. 한일협정 당시에 거론하지 않았던 일본군 ‘위안부’ 문제가 터지면서 더 복잡해졌다.

 

일본의 사죄는 도덕적 차원

식민지배 합법성 주장 여전

 

이웃 나라의 피해 인정해야

후손들에 씌운 멍에 벗게돼

 

 

양국의 지도자는 미래지향적인 자세로 이 문제를 풀고자 하였다. “금세기의 한 시기에 있어서 양국 간에 불행한 역사가 있었던 것은 진심으로 유감이며, 다시 되풀이되어서는 안 된다고 생각한다”(1984. 히로히토)라고 한 것에서 시작하여, 1990년대에 들어서는 역대 일본 총리들이 식민지배가 준 ‘손해와 고통’에 대해 ‘사죄’한다는 단어를 사용하였다. 1995년 무라야마 총리의 담화나 1998년 김대중 대통령과 오부치 총리의 ‘21세기 새로운 한일 파트너십 공동 선언’ 등으로 발전하였고, 강제병합 100주년이 될 때는 칸 나오토 총리 담화(2010)도 나왔다.

 

물론 “반성과 사죄”의 수준은 우리가 근본적으로 요구하는 바와 차이가 있었다. 일본은 주로 식민지배는 ‘합법적’이므로 그 자체를 부정하지는 않지만, 그로 인해 손해와 고통을 주었다는 ‘도덕적’인 차원이다. 근본적인 해결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이런 의사 표명도 값진 것이었다.

 

아베 총리 이후, 한일 관계가 더 경색되었다. 아베 총리가 역대 총리의 담화조차 계승하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총리까지 인정했던 일본군 ‘위안부’의 관 동원이나, 징용, 징병 등의 피해 등을 부인하고, 또한 전쟁의 침략성을 감추는 언사를 쏟아내기 때문이다. 특히 일본군 ‘위안부’ 할머니에 대한 사과도 아베 총리는 거부하였다.

 

올해 들어서도 한일 간의 역사 분쟁은 계속되고 있다. 1월에 동경 한복판에 ‘영토주권전시관’을 재개관하였다. 얼마 전에는 일본중학교 역사교과서 검정을 발표하였다. 식민지배, 강제동원에 대한 축소는 물론이거니와 독도 영유권 주장은 더 심화되었다. 러일전쟁 중에 일본이 침탈한 최초의 우리 영토가 독도인데, 일본은 한국이 불법적으로 점거하고 있다고 주장하고 있다.

 

일본은 가혹한 식민지배와 전쟁을 일으켜 이웃의 여러 민족들에게 많은 피해를 준 역사를 가졌다. 이런 역사를 미래를 위해서 올바르게 바라보지 않으면 안 된다. 미래를 바라보면서, 앞으로의 후손들에게 이런 역사의 멍에를 씌워서 안 된다. 역사를 정면에서 다루어야 미래로 나아가는 동력이 될 수 있다.

 

이를 위해서는 무엇보다도 역사 인식의 차이를 줄여야 한다. 그동안 행한 일본 정부 차원의 ‘사죄’가 비록 차원이 다른 것이라고 하더라도 그 자세는 이어가야 할 것이다. 일본 정부는 국제사회를 향해 그동안 행한 스스로의 발언을 지켜야 한다. 한일 간의 신뢰는 여기에서 다시 시작할 수 있다. 이를 바탕으로 비로소 미래를 위해, 동북아지역의 평화체제를 구축하는 여건이 마련되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