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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05호 2020년 4월] 뉴스 본회소식

제22회 관악대상 수상자 인터뷰: 박희백, 허진규, 박명윤 동문

사립대 봉사정신 벤치마킹해야 / 전재산 30만원 시작 3조원 중견기업 일궈/ 매달 연금 쪼개 저축, 사회 환원
 
지난 2월 20일 관악대상운영위원회(위원장 이인규 모교 명예교수)는 제22회 관악대상 수상자로 박희백(의학51-57) 박희백정형외과 원장, 허진규(금속공학59-63) 일진그룹 회장, 박명윤(보건대학원74-76) 한국보건영양연구소 이사장을 선정했다. 코로나19 사태로 연기된 시상식에 앞서 이들 세 동문을 만나, 소감 등을 들어봤다.
 
 
 

사립대학들의 기부하는 봉사정신 벤치마킹 필요하죠

 

박희백 본회 고문·박희백정형외과의원 원장

 

 

 

올림픽 등 국제대회 팀닥터

베트남서 문화대훈장 받아

 

 

“의사는 어딜 가나 희생과 봉사 정신이 없으면 안 됩니다. ‘노블레스 오블리주’하는 의사상을 심어주기 위해 노력한 삶에 한이 없습니다.”

 

의사인 박희백(의학51-57) 동문의 발자취는 의료계와 체육계, 동창회에 걸쳐 있다. 의협 감사와 고문, 한국의정회장을 지낸 그는 대한체육회 이사와 대한올림픽위원회 의무위원장, 올림픽 및 아시안게임 대표선수단 의무담당 책임위원 등으로도 활동했다. 본회에선 16년간 부회장을 역임하고 고문으로 봉사 중이다. 진료실을 넘어 다양한 현장에서 활약한 박 동문을 지난 3월 30일 압구정동에서 만났다. “훌륭한 선후배들이 계시는데 분에 넘치는 상에 선정돼 감사하고, 미안하다”고 말했다.

 

박 동문은 1974년 묵동에 박희백정형외과의원을 개업했다. 정형외과 전문의 취득 후 군의관으로 육사 병원장을 지내고 나와 차린 곳이다. 태릉선수촌과 가깝다는 이유로 지정병원이 되면서 열악한 선수촌 사정을 알게 됐다. “의사도, 물리치료사도 없이 달랑 간호사 한 명뿐이었어요. 의사회 지원을 받아 물리치료사를 기용하고 사비로 구급차량을 지원했죠. 인근에서 우리 병원 모르면 간첩으로 통했어요 .”

 

이렇게 체육계와 인연을 맺어 1984년 LA올림픽과 88서울올림픽, 릴레함메르 동계올림픽과 아시안게임 등 16차례의 해외 스포츠 대회에 팀 닥터로 참여했다. 종목별로 의사를 보낸 외국과 달리 한국은 선수 300명을 팀 닥터 한두 명이 보살피던 시절이다. 주변에선 “경기도 실컷 보고 좋겠다”며 부러워했지만 관람은커녕 밤중에도 선수를 돌보느라 잠을 설치기 일쑤였다. 어렵게 금메달을 따온 선수들이 장해 주머니를 털어 용돈까지 줬다.

 

“의사에 ‘소의’와 ‘중의’, ‘대의’가 있다고 하죠. 병을 치료하는 게 소의고, 중의는 환자의 마음을 함께 돌봐요. 가장 바람직한 개원의죠. 대의는 병든 사회를 고치는 의사입니다. 대의 못지 않게 일선 개원가에서 땀 흘리는 소의와 중의도 중요해요. 선수들의 심리까지 생각해야 하는 팀 닥터는 중의에 가깝죠. 국제 감각도 필요하고요.”

 

선수단과 출국하면 보름 넘게 병원을 비웠으니 오로지 사명으로 한 일이다. 체육회 일로 분주해 종합병원을 세우겠다는 생각도 접었지만 후회는 없다. “‘아예 체육회 가서 일하라’는 아내와 다투기도 많이 했죠. 아내가 대학 때 테니스 선수여서 내 일을 이해는 해줬어요. 고단한 줄 모르고 열심히 했는데, 지금 생각해도 내가 참 기특합니다.” 그 공로로 기린체육훈장과 의대동창회 함춘대상을 받았다.

 

인터뷰를 하며 그는 “참 용감했다”는 말을 거듭했다. 고교 졸업 후 한국전쟁이 나자 학도병에 지원했다. 군의관 시절엔 파월 장병가족을 개인적으로 치료해준 것이 알려져 청와대에서 포상을 받았다. 포상금을 다시 환자에게 주어 화제가 되기도 했다. 이후 월남전에 퀴논 맹호사단 의무참모로 자원해 험지를 오가면서 의술을 펼쳤다.

 

“부상자를 긴급 후송하는 헬기 운용권을 미군이 갖고 있었어요. 악천후에 환자가 나오면 ‘내가 탄다’고 간청해 겨우 띄웠죠. 한국의 아내한테서 실크니 하는 귀한 걸 공수해 선물도 하고요. 지금도 야전병원에서 친해진 미군들과 연락을 해요.” 현지 민간인 진료에도 힘써 베트남 정부가 문화대훈장을 수여했다. 한국에선 화랑무공훈장과 국가유공자증을 받았다.

 

동문 사회에 20년 가까이 봉사한 만큼 그는 동창회를 위해 고언을 건넸다. 의대동창회가 함춘회관을 건립할 때 추진위원장을 맡아 40여 억원의 건립기금을 모았다. ‘국립대 동창회에서 돈 모으기 쉽지 않구나’ 느끼고 본회에 9,000만원을 기부해 특지장학금을 운영 중이다. “장학사업이 잘 된다 해서 그것에만 안주하면 동창회가 발전할 수 없어요. 다른 목표를 세워야 합니다. 학교와 협력해서 벤처사업을 육성해보면 어떨까 해요. 다른 사립대의 기부 활동, 동문들의 희생 정신을 보고 벤치마킹도 해야 합니다.” 관악대상 수상자 모임을 열어 모교와 동창회를 위해 뭘 할 수 있을지 의견을 나눴으면 좋겠다고도 제안했다.

 

바둑과 골프를 즐기는 박 동문은 동문 바둑대회 운영위원장을 맡고 있다. 슬하에 1남 3녀를 뒀고 사위 두 명이 모교 병원과 세브란스 병원 의사다.

 

박수진 기자

 
 

 

전 재산 30만원 털어 시작, 지금은 3조원대 중견기업

 

허진규 일진그룹 회장

 

 

 

 

 

소재부품부터 신약까지 개발

ROTC 1기생으로 군복무

 

 

허진규(금속공학59-63) 동문은 우리나라 원조 벤처기업가로 꼽힌다. ROTC 1기로 군 복무를 마친 그는 1967년 전 재산 30만원으로 일진금속공업사를 창업해 연매출 3조원대 국내 최고의 소재·부품회사로 일구었다. 2차전지 핵심 소재인 일렉포일, 공업용 다이아몬드 등 일진이 개발하는 소재 부품이 400개가 넘는다. 2010년에는 캐나다 신약 개발회사인 ‘오리니아’에 투자해 바이오산업에도 직간접적으로 참여하고 있다. 오리니아는 미국 나스닥과 토론토 증시에 상장돼 있고, 일진이 1대 주주다. 현재 난치병 루프스신염 치료제를 개발하고 있다.

 

허진규 동문은 본지와 서면 인터뷰에서 “지난 51년간 남들이 알아주지 않는 소재 부품 분야에서 묵묵히 엔지니어로서 사명감을 가지고 성공과 실패를 거듭해 왔다”며 “많은 동문들과 재학 중인 후배들도 실패를 두려워 않고 도전한다면 모교 출신의 노벨상 수상자도 머지않은 미래에 나올 것으로 굳게 믿는다”고 말했다.

 

일진은 날 일(日)자에 나아갈 진(進) 자를 쓴다. 하루하루 조금씩 전진한다는 의미다. 코로나 19 사태, 국제 유가 하락 등 세계 경제가 좋지 않지만 ‘매일 조금씩 나아간다’는 정신으로 위기에 대처하고 있다. 허 동문은 “일진그룹은 오히려 위기 때 성장하는 기업이다. 더욱이 기업에게 위기가 아닌 때는 없다”며 “우리 회사의 사훈인 능동 정신을 바탕으로 불투명하고 어려운 시기를 이겨내고 있다”고 밝혔다.

 

허 동문은 소재 부품 외에도 오래전부터 바이오산업에 관심을 가져왔다. 1990년 경 120억원을 투자해 미국 보스턴의 바이오벤처 ETEX를 인수한 바 있다. 2018년 회사 창립 50주년 기념식에서 바이오를 미래 성장 산업으로 선언했다. 캐나다 회사인 오리니아에 투자한 배경에 대해 희귀병 치료제 개발에 관심이 많았다고 했다.

 

“10년 전 희귀병 치료제 개발에 관한 공부를 하던 중 면역억제제에 관심이 생겼습니다. 반드시 해야겠다는 사명감이 들더군요. 오리니아가 최근 개발한 치료제는 난치병인 루푸스신염 약입니다. 지난해 12월 3차 임상에 성공했고, 올 하반기 미국 FDA(식품의약국) 신약 허가 신청 절차에 들어갑니다.”

 

학군단 1기인 허 동문은 모교에 대한 지원에도 남다른 면모를 보였다. 1990년 모교 신소재 공동연구소 건립기금 23억원을 비롯해 공대 ‘한우물 파기로 홈런치기’ 프로젝트에 9억원을 쾌척하는 등 모교에 총 50억원을 기부하며 이공계 인재 육성에 애정을 보여줬다. 금속공학을 전공하게 된 동기에 대해 그는 “당시 주변에서는 성공이 보장된 의대를 가라는 조언이 많았지만 애국하는 길에 대해 고민을 많이 했다. 해방은 됐지만 식민지는 끝나지 않았다는 것이 당시 나의 판단이었다”며 “개인적으로 갑론을박하는 것이 체질적으로 맞지 않고, 과학 수학을 좋아하며 한 가지에 몰두해 완성해 내는 적성도 전공 선택에 일조했다”고 말했다.

 

ROTC 복무도 애국의 길의 연장선이었다. 허 동문은 우수 인력의 공대 기피 현상에 대한 조언도 잊지 않았다. 그는 “일제강점기나 6·25 전쟁 때는 몸을 바쳐 나라를 지키는 것이 애국이었다면 21세기에는 외국과의 기술전쟁에서 이기기 위해 끊임없이 연구개발에 몰두하는 엔지니어들이 바로 애국자”라며 “부모님과 선생님들이 공대생의 사명감과 자부심을 심어주도록 노력해야 한다”고 말했다.

 

허 동문은 공대동창회장, 총동창회 부회장으로 동창회 활성화에 기여했다. 한국발명진흥회 회장, 한국 코스타리카 친선협회장, 세계서예전북비엔날레 조직위원장 등을 역임했다. 2016년 서울대 공대 ‘우리가 닮고 싶은 공대인’에 선정됐다. 김황식(법학67-71) 전 국무총리가 처남이다.

 

김남주 기자

 

 

 

 

매달 연금 쪼개 저축, 큰돈 아니지만 사회에 환원

 

박명윤 한국보건영양연구소 이사장

 

 

 

 

 

“결혼 50주년에 큰 상 감사

기부는 마음으로 하는 것”

 

 

“결혼 50주년을 맞는 해, 우리 부부의 금혼식(金婚式)을 총동창회 차원에서 축복해주시는 것 같아 무척 기쁘고 영광스럽습니다. 서울대 보건대학원 동문인 우리 부부는 앞으로도 모교와 총동창회의 발전을 위해 노력하겠습니다.”

 

박명윤(보대원74-76) 한국보건영양연구소 이사장은 기부할 돈을 미리 떼어놓고 생활하는 ‘기부천사’다. 부유한 가정에 태어난 것도, 자기 사업을 크게 하는 것도 아니지만, 매달 연금을 쪼개 저축하여 기부금을 마련한다. 1999년 환갑 때 1억원을, 2009년 고희 때 다시 1억원을 기부한 그는 2019년 팔순에 또 다시 1억원을 더해 총 3억원을 사회에 환원했다. 지난 3월 23일 서울 마포구 중동에 있는 자택에서 박명윤 동문을 만났다.

 

“지금도 매달 100만원을 떼어서 1년에 1,200만원을 기부하고 있습니다. 환갑 때 기부한 1억원 중 5,000만원을 총동창회에 기탁해 ‘박명윤·이행자 특지장학회’를 설립했지요. 이후 5,000만원을 보태 총 1억원의 장학기금을 조성했고요. 지난 20년 동안 우리 부부의 장학금을 받은 보건대학원 석·박사학위 과정 학생이 120명이 넘습니다. 그중 한 명은 모교 교수가 됐고요. 졸업한 후배들이 논문과 함께 감사 편지를 보내올 때 큰 보람을 느낍니다.”

 

기부는 쓰고 남은 돈으로 하는 것이 아니라는 게 박 동문의 지론. 사회로부터 별 혜택을 받지 못한 시장 할머니들도 평생 어렵게 모은 재산을 사회에 환원하는데, 사회로부터 특별한 혜택을 받은 서울대 동문들이 기부를 등한시하면 안 될 것이라고 말한다.

 

“지도층 인사들이 마음먹고 절약하면 10년에 1억원 정도는 어렵지 않게 모을 수 있을 겁니다. 제가 이를 증명한 셈이죠. 매년 회갑과 고희를 맞는 50만명 중 1,000명만 1억원씩 기부해도 우리 사회가 훨씬 밝고 따뜻해질 겁니다.”

 

박 동문의 공동체에 대한 사랑은 그의 사회활동과도 밀접히 연관돼 있다. 1965년부터 25년 동안 유니세프(UNICEF)에서 근무할 땐 우리나라에 대한 보건 및 영양 사업 지원을 담당했으며, 1994년 유니세프 한국위원회가 설립되고 원조를 받는 나라에서 원조를 하는 나라가 됐을 땐 아프리카 등 저개발국가에 대한 구호 모금 사업에 앞장섰다. 재직 당시 보건의료·식품영양·아동청소년 문제를 주제로 한 TV 프로그램에 100회 이상 출연했으며, 신문·잡지에 칼럼을 기고하고, 대학에 출강하기도 했다. 소소한 부수입 역시 기부한 것은 물론이다. 본회 장학기금뿐 아니라, 아동복지기금·청소년육성기금·평화와 통일을 위한 복지기금·의료선교기금 등 여러 단체의 활동에 힘을 보탰다.

 

“1994년 10월 한국청소년연구소 소장으로 근무할 때 EBS 라디오 프로그램 ‘명사와의 대담’에 출연했었어요. 1시간 동안 진행된 인터뷰 말미에 앞으로의 계획을 몇 가지 얘기하면서 돈을 모아 장학금을 내고 싶다고 말했죠. 그땐 가볍게 꺼낸 말이었고 어긴다고 누가 따지러 올 것도 아니었는데, 꺼내 놓고 보니 간절히 지키고 싶어지는 거예요. 그래서 1995년 1월부터 하루 5,000원 용돈으로 버스와 지하철을 타고 구내식당에서 점심을 해결해가며 5년간 1억원을 모아 장학금 등에 기부했습니다.”

 

박 동문의 기부 업적엔 아내 이행자(보대원69-71) 동문의 격려와 응원이 빠질 수 없다. 기부금 떼고 남은 수입으로 살림하기가 여간 빠듯하지 않을 터. 이 동문이 약국을 운영하며 생활비를 보태지 않았다면 박 동문의 기부 의지는 꺾였을지도 모른다.

 

동창회에 대한 애정 또한 남달랐던 박 동문은 2000년부터 15년 동안 재단법인 관악회 이사로 봉사했으며, 80세 고령임에도 불구하고 한국보건영양연구소 이사장, 한국파인트리클럽(PTC) 총재, 한국아동학대예방협회 상임고문, 아시아엔 논설위원 등 왕성한 사회활동을 이어오고 있다. 사후엔 연세대 의과대학에 의학 연구용으로 시신을 기증하기로 부부가 함께 서약했다.

 

 

나경태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