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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53호 2024년 4월] 뉴스 본회소식

고광석, 금난새, 류진 동문 관악대상 수상자 소감

“의병의 후손, 4·19혁명에 앞장섰습니다”

26회 관악대상 수상자 소감

의병의 후손, 4·19혁명에 앞장섰습니다

고광석(회화59-63·법학63-66) 아람기획 회장


큰 상을 받게 되어 감사의 말씀을 드립니다. 본인은 1942년에 전남 화순군 에서 태어났습니다. 임진왜란 때 광주 지역에서 7000여 의병을 이끌고 금산에서 왜군과 싸워 삼 형제가 전란에 순국했던 제봉 고경명 할아버지의 14대 손입니다. 시골에서 자연경관도 풍성하고, 인심이 돈독하여 항상 봄과 가을철, 설과 보름날에는 대민속잔치를 벌여서, 우리의 전통을 이어가면서 사랑을 나누는 좋은 일을 개최했습니다. 봄과 가을은 물론 사이사이 이웃을 이끌어가면서, 마을 한 집 한 집을 이끌어가면서 즐거운 시간을 보냈습니다.

그 이후에 시골 생활을 청산하고 광주에 이사하여 광주 학생 독립운동을 거행했던 광주서중에 들어가고, 광주고등학교에 이어 서울대 미대에 입학하게 됐고, 법대에 학사편입을 했습니다. 4·19로 인해 나라가 흉흉한 어려운 처지에 있어서, 4·19 혁명을 주도하기도 했습니다.

그 이후 한일은행에 입행해서 법률세무 상담 사례집을 만들어 고객들에게 전달했습니다. 아울러, 그동안 일제시대의 횡포와 대출 커미션 등의 잘못된 관행을 청산하기 위해서 전력을 기울였습니다. 그 대가로 뉴욕과 싱가포르에 3개월 동안 연수 특전을 받게 되어 좋은 기회를 갖게 된 것은 즐거움으로 남아 있습니다. 한일은행을 마치고 대치동에 마련했던 땅이 빈 땅으로 있었기에 아람빌딩을 건설하게 되었습니다. 당초에는 어려움을 겪었지만 무리 없이 잘 이끌어 오고 있어 보람을 느낍니다. 감사합니다.”

고 동문은 모교 회화과에서 학사학위를 받고, 학사편입으로 법학과를 졸업했다. 올곧은 성품으로, 대학 시절부터 사회 운동에 적극적으로 참여해 4·19혁명 당시 학우들과 송우회(솔벗 모임)를 조직해 경무대 입구로 행진하다 체포되기도 했다. 미대 학생회 임원으로 활동했고, 법대에선 낙산문학회를 결성해 낙산문원을 발간했다. 졸업 후엔 한일은행에 입행해 근면 성실히 업무를 수행했다. 법률·세무 분야에서 능력을 발휘해 고객에게 정확하고 전문적인 금융 상담을 제공하고, 상담집도 발간했다.

꾸준한 기부로 봉사 정신을 몸소 실천했다. 한평생 근검절약을 생활화하면서 매달 받는 국민연금을 고아원에 기부했고, 40년간 살던 자택을 처분해 마련한 기금으로 본회에 20억원을 기부해 고암(孤岩) 늘푸른지도자양성재단이름으로 지급하고 있다. ‘이태석 신부의 수단 어린이 장학회10억원, ‘대전 가르멜 봉쇄 수녀원에도 5억원을 기부했다. 고 동문은 본지 인터뷰(529)에서 모교 후배 중에 훌륭한 인재들이 많이 나오고, 서울대가 하버드, 옥스퍼드와 견줄 수 있는 대학으로 성장하는 데 조금이라도 보탬이 되기를 바란다는 뜻을 전했다.

 

내 기부는 음악, 앞으로 더 베풀겠습니다

금난새(작곡66-70) 성남시립교향악단 총감독·상임지휘자


영광스러운 상을 받게 돼서 기쁩니다. 학교를 위해 많은 기금을 도네이션하신 고광석 선배님과 류 진 회장님, 훌륭하신 분들과 함께 상을 받아 더욱 기쁩니다.

마침 류 진 회장님과는 20년 전쯤 만나뵀습니다. 제주도에 실내악을 보급하려 챔버 뮤직 페스티벌을 열 때, 류 회장님께서 12년간 지원을 해주셨죠. 또 제가 서울예고 교장일 땐 학교 학생들이 LA 콜번 뮤직 스쿨에 가서 연주하려는데, 항공 비용 후원을 유치하기 위해 항공사에 찾아가보려 한다는 얘기를 들으시고 그곳까지 갈 것 없다20명 학생들의 티켓을 지원해 주셨습니다. 대학에도 많은 도네이션을 하셨지요.

김종섭 회장님은 저와 학번이 같으신데, 심사할 때 그게 작용하지 않았을까 좀 의심스러워요(웃음). 김 회장님도 학교에 많은 기부를 하신 걸 여러분 다 아시죠. 주위에서 그렇게 기부를 많이 하니 배운 것도 있습니다. 저는 음악이 내 기부다했는데, 나도 좀 하면 어떨까 해서 지난번 서울예고 교장을 그만두며 4년 동안 연봉을 한 푼도 안 쓰고 그대로 학교에 기증했습니다. 큰 액수는 아니지만, 한 푼도 안 쓰고 4년 동안의 연봉을 다 기부했다는 게 중요합니다(웃음). 오늘 받은 상이 은근히 앞으로 더 많이 도네이션하라는 언질이 아닌가 싶습니다. 서울대가 자랑스러운 대학, 우리나라의 미래를 이끄는 리더가 될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금 동문은 모교 작곡과 졸업 후 독일 베를린국립예술대 지휘과를 수료했다. 1977년 카라얀 국제 지휘콩쿠르에 입상하며 지휘자 생활을 시작했다.

KBS교향악단 전임지휘자, 수원시향·경기필하모닉·인천시향 상임지휘자를 역임한 금 동문은 현직인 성남 시립교향악단 상임지휘자 및 예술총감독으로서 국내 교향악단을 세계적인 수준으로 끌어올렸다. 국내 최초 벤처 오케스트라 유라시안 필하모닉 오케스트라(현 뉴월드 필하모닉 오케스트라)’를 창단해 국내 굴지 기업들과 파트너십을 바탕으로 20여 년간 왕성한 활동을 펼쳐오고 있다.

특히 해설이 있는클래식 공연 시리즈의 원조로, ‘해설이 있는 청소년 음악회’, 국내 최초 제야 음악회 등 참신한 기획을 실현하며 대중과 클래식 음악 사이 거리를 좁히고 청소년 교육에도 앞장섰다. 최근엔 고향 부산에 금난새 뮤직 센터를 개관해 젊고 유능한 연주자들에게 기회를 제공하고, 실내악 부흥을 위해 노력하고 있다.

본회에선 재능기부 차원에서 서울대 나눔 가족음악회 등 다양한 행사를 기획하고 참여해 동문들의 화합과 나눔의 장을 마련하는 데 기여했다. 서울예술고등학교 교장을 지냈으며, 한국 CEO 그랑프리 문화예술부문, 세종문화상 예술부문을 수상했다.

 

어려울 때 도와준 동문들께 영광 돌립니다

류 진(영문78-83) 풍산그룹 회장·한국경제인협회 회장


부족한 제가 귀한 상을 받아 큰 영광입니다. 또한 고광석 회장님, 금난새 지휘자님과 함께 관악대상을 받게 돼 더욱 기쁩니다. 고광석 회장님께서 모교에 입학하시기 한 해 전에 제가 태어났더군요. 금난새 지휘자님은 이전부터 뵐 때마다 기부를 강조하셔서 영어로 도네이션, 도네이션 하셨는데, 워낙 자주 말씀하시다 보니 그게 한국어로 들립니다. ‘돈 내쇼, 돈 내쇼라고(좌중 웃음). 재일교포 신분으로 일본에서 미국 학교를 다녔던 저는 1977년 한국에 입국했습니다. 다른 대학은 그냥 입학할 수 있었지만, 서울대 입학을 위해 태릉캠퍼스에서 1년 공부하고 1978년 운 좋게 모교 영어영문학과에 합격했습니다. 대학 1학년 땐 동화 같은 캠퍼스의 낭만을 즐겼습니다. 학사 경고를 받을 만큼 열심히 놀았죠. 다행히 영어에 능숙해 전공 공부가 무척 쉬웠습니다. 동기들이 시험 때 노트도 빌려주고 대리 출석도 해줘서 무사히 졸업할 수 있었고요. 그때도 지금도 제 주위에 서울대 동문들이 다방면에서 저를 도와주고 계십니다. 그분들에게 수상의 영광을 돌립니다. 감사합니다.”

비철금속 소재 산업 및 방위 산업을 주력으로 하는 풍산그룹을 세계적인 기업으로 육성, 국내뿐 아니라 세계 경제 발전에 큰 역할을 하고 있다. 한국펄벅재단 이사장, 한국메세나협회 부회장 등을 맡아 다문화가정 아동 지원과 경제·문화예술의 균형발전에 기여했으며 독립기념관 건립, 징비록 영역본 출간, 대한의원 복원, 서애 류성룡 선생 기념사업 등 다양한 사회공헌 사업을 펼쳤다. 모교 관악캠퍼스에 풍산마당을 조성했고 영문과 학술기금, 야구부 발전기금을 지원했다. 본회 산하 사회공헌위원회 초대 공동위원장을 맡아 동창회 발전에도 일조했다. 지난해 한국경제인협회 회장에 취임, 전세계에 걸친 폭넓은 인적 네트워크를 토대로 한국 경제와 무역 발전에 기여하고 있다.

1997년부터 한미 경제협의회 부의장을 겸임하고 있으며 2015년 서울대 발전공로상, 2012년 국민훈장 모란장, 2005년 상공의 날 금탑산업훈장 등을 받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