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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04호 2020년 3월] 오피니언 동문칼럼

교육 문제, 평등과 불평등 논쟁 넘어서야

조영달 모교 사회교육과 교수, 부설학교진흥원장


교육 문제, 평등과 불평등 논쟁 넘어서야


조영달

사회교육79-83
모교 사회교육과 교수, 부설학교진흥원장


더불어 사는 인성 교육
진영 초월한 정책 필요


우리는 지금 새로운 시대로 옮아가고 있다. 4차 산업혁명의 지능정보 사회가 그러하고, 세계가 활짝 열려 있음이 그러하며, 우리를 둘러싼 생태의 변화나 급격한 인구변화 역시 그러하다. 또한 최근 한반도는 비핵화와 평화의 논의가 진전과 우려를 반복하고 있다. 한국의 민주정치도 대통령에 대한 탄핵 사건을 겪으면서 소용돌이치고 있다. 어쩌면 과거 산업혁명 시대가 이와 비슷할지 모른다.

전환의 시대, 우리의 삶은 어떠한가? 한 가지 분명해 보이는 것은 앞으로의 일을 알기 어려우며, 사회적으로 중요한 일일수록 기존의 방식으로 문제를 바라보면 해결이 어렵다는 점이다. 사실 이러한 전환시대의 불확실성은 우리 사회로서는 고통의 발단이기도 하다. 미중 갈등, 한일 관계 악화, 중국 우한발 코로나19 등 우리가 자연스럽게 예상할 수 있는 일들이 아니다. 심각한 실업률, 불평등과 빈곤의 증가, 빈번한 폭력, 가족의 해체, 위기의 교육, 안전의 위협, 자유의 윤리가 붕괴하는 조짐, 민주주의에 대한 우려는 우리가 느끼는 고통의 현주소이다.
정말로 우리의 삶이 불확실하고, 살아가는 데에 많은 고려가 필요해 보인다. 때로는 창의적인 해법이 필요하다. 한마디로 우리는 지금 답이 없는 시대를 살아가는 것이다. 그러면 앞으로 시대를 살아가야 하는 자녀를 위한 교육은 어떠해야 하나?

한두 가지가 분명해 보인다. 즉 누구도 답을 줄 수 없는 상황에서 해결책은 스스로 찾을 수밖에 없다는 점이며 그러면서도 동시에 이 때문에 인간의 모습이 일그러지지는 말아야 한다는 점이다. 전자는 스스로 깊이 성찰하고 다른 사람들과 치열하게 논의하면서 창의적인 해법을 찾아갈 수 있는 역량을 기르는 일이다. 이는 우리가 지닌 이성의 잠재력을 확대하는 일이기도 하다. 이와 더불어 가족이나 다른 사람들에게도 인간의 도리를 다하도록 해야 하며, 남과 공존하고 협력하면서 살아야 한다. 때로는 배려하고 포용해야 한다. 이 일은 인격성의 문제이며 후자에 관련될 것이다. 사실 세상에 그 누구도 혼자 살 수는 없다. 아무리 훌륭한 설계사도, 나무를 자르고 벽돌을 나르는 사람이 있어야 집을 지을 수 있다. 이렇게 스스로 성찰할 수 있고 인격성을 지닌 자녀는 공존의 대한민국을 건설하고 오늘의 시대를 넘어 자신의 시대를 이끌 수 있을 것이다.

이 점은 우리의 교육정책이 지향해야 할 하나의 중심 논리라 할 것이다. 사실 이러한 지향은 교육에 내재한 가치와도 맞물린다. 교육에 대한 생각에는 여러 흐름이 있을 수 있지만, 스스로 성찰하면서 이성의 잠재력을 넓히고 새로운 생성이 이루어지는 과정이란 점은 대부분 동의하는 바이다. 이는 그 자체로 가치로운 것이며 미래지향적이다. 공자와 소크라테스, 피터스와 듀이, 남명(南冥)과 퇴계(退溪)가 생각한 교육이기도 하다. 교육의 본질을 말하는 사람들이 염두에 둔 관점이기도 하다.

물론 교육의 과정에서 시민들은 자신의 삶에 필요한 기술이나 기능을 익혀 생활의 도구로 삼고 이를 토대로 보상(報償)을 추구할 수도 있다. 당연히 이 역시 중요하지만 교육의 본질은 아니다. 이러한 도구적인 지향은 그 보상성 때문에 불평등 논의의 중요한 대상이 되기도 하며 정치가들에게는 사회정책이나 복지 정책의 중요한 관심 대상임은 물론이다.

교육정책이 지녀야 할 또 하나의 논리는 교육의 지향을 현실화할 수 있는 제도를 갖추도록 우리 사회에 호소하고 노력하는 일이다. 이는 교육이 지향하는 특성상 과거를 넘어서 우리의 미래를 어떻게 담보할 것인가의 논의와 연결될 수밖에 없다.

“6-3-3-(대입)-4”로 이어지는 경직된 우리의 교육제도는 1946년 교육기본법 제(개)정 이후 70여 년 이상 그대로이다. 이미 세상은 근대화로 민주화로, 최근에는 지능정보사회의 4차 산업혁명이 회자되는 시대로 변했다. 이로 인한 지식의 생산과 흐름 및 교육의 환경이 변혁적으로 바뀌었음은 물론이다. 이제 초중등교육과 대학의 개념이 각기 새로워져야 한다. 이제 대학은 더 이상 상아탑이 아니다. 대학 입시도 필수가 되어서는 곤란하다. 제도의 틀을 유연화하고 학생들이 자신의 길을 가도록 하지 않으면 우리가 지향하는 교육은 이룰 수 없다. 우리의 미래를 담보할 수 없다. 결국 우리와 미래 세대 모두는 시대의 낙오자가 될 것이다. 이 점에서 보면, 지능정보 시대, 인구 급변의 시대에 학교제도의 유연화는 전환기 교육정책의 중요한 실천 방안이자 제도구성의 논리이다.

이러한 논리와 더불어 교육정책에는 지켜야 할 윤리가 있다. 교육정책의 중심축은 교육이지 정치진영의 논리가 아니다. 진영의 논리로 어제는 만들고 오늘은 없애는 정책이 지속되는 한 우리 교육은 수렁의 나락으로 더욱 내려갈 뿐이다. 교육이 완벽하게 정치와 분리될 수는 없지만 최대한 교육의 가치를 존중하는 정책이 되어야 한다. 이는 교육계가 짊어져야 할 수호의 책임이자 용기가 필요한 부분이다.

진영의 논리는 자칫 교육을 도구적 측면에서만 조명하게 한다. “불평등 교육”과 복지의 담론은 정치사회적으로 중요한 문제이지만 교육정책의 핵심이거나 모두는 아니다. 오히려 부가적인 것일지 모른다. 이제 우리는 평등과 불평등 교육의 논쟁을 넘어 새로운 시대의 교육을 열어야 한다. 학생 자신의 역량에 따른 다양한 성장의 교육 시대를 열어야 한다. 이러한 교육의 바탕에는 당연히 스스로에 대한 깊은 성찰과 인격의 성숙이 자리잡아야 한다.
이러한 교육정책의 논리와 윤리를 바탕으로 할 때 우리 사회는 불확실성을 줄이고 고통을 넘어서는 미래를 담보할 수 있다. 이렇게 제대로 된 교육을 통해 우리는 전환기 고통의 시대를 넘어 새로운 문명을 건설할 수 있을 것이며, 지구촌의 보편성과 인류애의 성장에도 기여하게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