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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56호 2024년 7월] 오피니언 느티나무광장

필요할 때 가르치면 늦다

오정환 (공법83-87) MBC 국장, 본지 논설위원

느티나무 광장

필요할 때 가르치면 늦다


오정환 (공법83-87)

MBC 국장

본지 논설위원


국영수
, 이해·사고·논리 힘 키워

고급인재 키워 산업변화에 적응

교육이 앞서가야 미래산업 성공

 

중국의 근로자들 가운데 고등학교에 가본 사람이 30%에 불과했다. OECD 평균인 77%의 절반에도 못 미치는 수치다. 2015년 통계였다. 마침 그때가 중국 정부조차 중진국 함정에 빠져들고 있음을 시인한 시점이었다.

중국이 고도성장을 멈춘 이유는 산업구조 개편과 인구감소, 미중 갈등 등 복합적이다. 여기에 국민의 낮은 교육 수준도 중요하게 거론된다. 건국 이래 중국 정부는 정규교육에 별 관심을 두지 않았다. 등소평의 개혁개방 시기에도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 경제성장이 급해 학교보다 공장을 짓는 일에 몰두했다.

당장은 별문제 없어 보였다. 대부분의 근로자들은 단순조립만 할 수 있으면 충분했다. 그런데 국민소득이 늘고 임금이 오르면서 중국도 산업구조를 고도화할 때가 왔다. 그제서야 중국 정부는 전국에 고등학교를 세우고 보조금을 뿌렸다. 그러나 10년이 지난 지금도 중국의 학교에는 제대로 가르칠 교사가 없고 학생들이 장부에만 존재하는 경우가 많다고 한다. 교육 시스템이 단기간의 투자로 만들어질 수는 없다.

유사한 사례를 선진국 문턱에서 좌절한 중남미 국가들에서도 볼 수 있다. 중남미 국가들은 고부가가치 산업으로 개편이 필요해진 뒤에야 고등교육 투자를 늘렸다. 그러나 수요와 인력 배출의 시간 간극이 너무 컸고, 저숙련 근로자들의 실업과 범죄 증가라는 악순환을 결국 극복하지 못했다.

다행히 대한민국 건국의 아버지들은 교육에 진심이었다. 해방 당시 초등학교 입학률이 14%, 국민 80%가 문맹이었다. 이를 해결하기 위해 1950년대 정부 예산 중 교육비로 20%를 할애했다. 입에 풀칠도 어려웠던 시대에 어떻게 가능했는지 이상할 정도다.

정부는 19506월 초등학교 의무교육을 시작했지만 전쟁으로 무산되었다. 그래도 수업은 계속됐다. 학교 건물이 부서지면 운동장에 천막을 치고 학생들을 가르쳤다. 부모들은 당장의 끼니를 걱정하면서도 아이들을 일터 대신 학교에 보냈다. 못 배운 한을 풀고 자녀들은 자신보다 나은 삶을 살기 바라는 간절함 때문이었다.

목표는 고등교육이었지만 정부에 더이상 여력이 없었다. 그래서 지역 유지들을 설득했다. 각종 특혜와 후원 아래 대학 설립이 붐을 이루었다. 해방 전 19개였던 대학이 196068개로 늘었다. 대학생 비율이 영국보다 높아졌다.

6·25 전쟁 때는 부산에 전시연합대학을 만들었다. 이승만 대통령은 대학생 징집을 금지했다. 엄청난 반대 여론이 일었다. 전선의 병사들은 가난하고 못 배운 사람만 싸우다 죽으라는 거냐며 분개했다. 정치적으로 자살행위나 다름없었다.

그러나 이승만 대통령은 버텼다. “전쟁이 끝나면 우리는 나라를 새로 건설해야 한다. 전후 복구와 나라 발전에 고급교육을 받은 인재가 필요하다.” 그렇게 배출한 인재들이 1970년대 한강의 기적을 이끌었다.

다만 학력 수준이 높아도 우리나라 교육은 국영수 암기 위주라 실용성이 떨어진다는 주장도 많다. 맞는 이야기 같으나, 그러면 어떻게 경제발전에 기여할 수 있었는지 의문이 든다.

반대의견도 만만치 않다. 국영수는 이해 사고 논리의 힘을 키우는 기초학문이다. 이를 통한 인적 자원의 유연성 덕분에 우리나라는 급격한 산업구조 개편 때마다 짧은 훈련만으로 필요한 인력을 대규모로 공급할 수 있었다는 것이다.

다만 지금의 성공이 앞으로도 계속될지 장담할 수 없다. 미래산업은 점점 더 고도의 창의성을 요구할 것이다. 1948년 이 나라를 세웠던 사람들이라면 어떻게 판단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