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04호 2020년 3월] 인터뷰 화제의 동문
“핵심을 볼 줄 알면 수학포기자도 만점 받죠”
화제의 창업인 조봉한 이쿠얼키(깨봉수학) 대표
화제의 창업인
“핵심을 볼 줄 알면 수학포기자도 만점 받죠”
조봉한(계산통계83-87) 이쿠얼키(깨봉수학) 대표
삼성화재 부사장 자리 박차고
온라인 수학콘텐츠 업체 창업
50대에 창업은 쉽지 않다. 실패에 대한 리스크가 너무 크다. 하고 싶은 일도 많지 않다. 게다가 적지 않은 월급을 받을 수 있는 직장이 있다면 박차고 나올 생각을 할까. 삼성화재 부사장이었던 조봉한(계산통계83-87) 동문은 52세에 회사를 그만두고 온라인 수학 콘텐츠업체 이쿠얼키(Equalkey)를 창업했다. 당시 계약 기간이 남아있던 상황이라 페널티까지 물고 나왔다.
지난 2월 24일 서울 선정릉 공원 인근 사무실에서 만난 조봉한 동문은 “삼성화재에 들어가기 전부터 수학 교육 사업을 하려고 했다. 회사를 세계적인 교육 업체로 키우려면 삼성이란 조직이 어떻게 돌아가는지 알아야 할 것 같아 배우러 들어갔다”고 했다.
조 동문은 삼성화재에 스카우트 되기 전 국민은행 최고정보책임자, 하나은행 CIO, 부행장 등을 맡아 국내 금융 온라인 시스템을 발전시킨 인물이다. 당시 30대 최연소 임원으로 화제를 모으기도 했다. 그의 주도로 하나은행은 국내 처음 모바일 뱅킹을 선보여 주목받았다. ‘가트너’는 미래의 은행으로 하나은행을 소개했다.
남들보다 한발 앞서 미국 USC에서 AI를 전공해 무선전투기의 시스템을 연구하고, 필립스, 오라클 등에서 연구원으로 활동하며 온라인 시스템의 ABC를 익혔다. 제1회 세계로봇경진대회 우승자이기도 하다. 그런 그가 수학 콘텐츠 사업에 뛰어든 까닭은 뭘까.
“무언가를 가르치는 게 재미있었어요. 오래전부터 교육 일을 하고 싶었죠. 전공인 AI를 접목하면 최소의 비용으로 양질의 수학 교육이 가능할 것 같았어요. 직접적인 계기는 수학을 싫어하는 딸 때문이었죠. 수학의 원리를 어떻게 하면 쉽고 재미있게 전달할 수 있을까를 고민하다 애니메이션 등을 활용한 콘텐츠를 개발하게 됐죠.”
가르치는 일에 대한 열망이 창업의 동력이었지만 현 수학 교육에 대한 불만도 컸다. 공식 암기와 많은 문제 풀기를 통한 요령습득에 치우쳐 있다는 것이다. 조 동문은 “올림피아드에 나가 우수한 성적을 거두는 학생이 많음에도 대학에 가면 수학을 다 잊어먹고 훌륭한 수학자가 나오지 않는 원인이 여기에 있다”며 “앞으로 인공지능 시대에 걸맞은 창의적인 수학 교육이 이뤄져야 한다”고 말했다.
이러한 문제의식을 기반으로 2015년 6월 콘텐츠 개발에 들어가 2018년 11월부터 ‘깨봉수학’이란 브랜드로 서비스를 시작했다. 깨우치다의 ‘깨’와 조 동문의 이름 자 ‘봉’을 합쳤다. 1,000여 개의 애니메이션 콘텐츠와 인터랙티브 문제를 통해 학습이 이뤄진다. 또한 수학의 기본 개념이 담긴 게임을 통해 재미있게 수학을 배울 수 있고, 인공지능이 학습자의 수준을 파악해 맞춤형 커리큘럼을 제공한다. 학생이 곱하기 문제를 잘 푼다 싶으면 바로 인수분해로 넘어가고, 등비수열을 지나 대학에서 배우는 테일러 공식까지 알려준다. 깨봉은 좋은 대학에 가기 위한 교육이 아닌 본질을 꿰뚫는 눈을 갖기 위한 교육에 초점을 맞춘다. 구구단을 암기하기보다 곱하기의 본질을 깨닫게 하는 식이다.
“수학은 문제를 단순화해 핵심을 보는 힘을 키우는 학문입니다. 곁가지를 무시하는 판단력이 중요하죠. 그리고 변화를 읽어 정확하게 예측하는 능력을 키워주죠. 마지막으로 시공간의 관계를 파악하는 힘을 길러내는 공부예요. 변화를 누가, 무엇이 일으키고 있는지 찾게 해주죠. 무시, 변화, 관계가 수학을 배우는 이유입니다. 그런 힘을 키울 수 있도록 프로그램 한 게 깨봉수학이고요.”
시작단계지만 입소문을 타고 온 회원이 2만명 정도 된다. 초중고 수학 내용을 모두 다루지만 주력 대상은 초등학생. 월 교육비는 6만원 수준으로 한 학기 패키지 형식으로 제공하고 있다.
미 USC에서 AI로 박사학위 받아
30대에 하나은행 정보최고책임자
제1회 세계로봇경진대회 우승도
깨봉수학에는 조봉한 대표의 학창시절 수학 깨우침 방법이 그대로 녹아 있다. 조 동문을 기억하는 친구들은 매일 당구나 치고 노는 것 같은데, 순식간에 과제를 제출하고 좋은 점수를 받는 그가 신기했다. 천재 과가 아니냐는 말에 “핵심을 보고 곁가지를 쳐내는 무시의 힘이 길러지면 수학포기자도 만점을 받을 수 있다”고 했다.
현재 조 동문은 가족과 떨어져 기러기 아빠로 사업에 몰두하고 있다. 좋아하던 골프도 내려놓고 간간이 당구만 즐긴다. 사업 초창기라 25명 직원의 월급을 챙겨주는 일도 쉽지 않지만 올해 기대가 크다. 모든 교육 콘텐츠가 완비됐고 싱가포르 교육청에서 이쿠얼키의 콘텐츠 도입을 검토하고 있어서다. 영어 버전도 준비돼 해외 진출도 시작된다.
“올해 오프라인 진출도 확대할 계획입니다. 현재 압구정동에 학원을 운영하고 있어요. 온라인에서 미진한 부분을 보완하는 장소로 활용합니다. 자기가 설명하지 못하면 모르는 거잖아요? 그런 것을 체크하는 장소가 될 거예요. 도와주는 동문이 많아서 힘이 됩니다.”
조 동문은 대학시절 이념서클이었던 기생(기독학생회) 출신이다. 고향은 김제, 전주 신흥고를 졸업했다. 당구가 취미로 300 실력이다. 모교 겸임교수를 지냈고 한국인 최초 싱가포르 DBS은행 사외이사다. 2005년 벤처기업대상 특별상 수상, 2011년 제11회 소프트웨어 산업인의 날 대통령 표창을 받았다.
김남주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