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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59호 2024년 10월] 인터뷰 화제의 동문

“탄소나노튜브로 뭐든 만드는 기술, 작은 소재 스타트업의 무기”

김세훈 어썸레이 대표

“탄소나노튜브로 뭐든 만드는 기술, 작은 소재 스타트업의 무기”

김세훈 (섬유고분자공학95-00)
어썸레이 대표



탄소나노튜브 섬유 원천기술 보유
차세대 전선·반도체 소재 주목


“소재 사업은 스타트업이 할 게 아니라고 생각했죠. 그런데 첨단 소재는 해볼 만하겠더라고요.”

짧은 파장의 빛으로 초미세 회로를 찍어내는 극자외선(EUV) 노광 장비는 반도체업계 ‘꿈의 장비’다. 수년 내 글로벌 반도체 기업들에 도입이 확실시됐지만 아직 걸림돌이 있다. 핵심 부품인 ‘펠리클’이다. 펠리클은 EUV 광원이 웨이퍼에 회로를 그려넣을 때, 반도체 회로가 그려진 포토마스크를 열과 먼지에서 보호하는 덮개. 기존의 실리콘 펠리클은 800도 이상 고온의 하이 NA EUV 공정을 견디지 못한다. 대신 탄소나노튜브가 튼튼하고 투과율 높은 차세대 펠리클 소재로 급부상했다. 김세훈 대표의 어썸레이는 탄소나노튜브 소재 기업으로서 반도체업계의 절박한 요구를 등에 업고 국내 부품업체와 함께 차세대 펠리클 개발을 진행 중이다.

10월 7일 마포구 본회 장학빌딩에서 만난 김세훈 동문의 얼굴이 밝았다. “며칠 전 어썸레이가 만든 펠리클용 탄소나노튜브 멤브레인(막) 샘플을 들고 포토마스크 분야 국제 콘퍼런스에 참석했다. 그곳에서 세계적인 반도체 기업들이 ‘차세대 펠리클 소재는 탄소나노튜브’라고 말하는 걸 들었다”고 했다.

가볍고 유연한데 강도는 높고, 전기 전도율이 탁월한 탄소나노튜브는 일찌감치 꿈의 신소재로 기대를 모았다. 하지만 제대로 ‘요리’하기가 힘들었다. 대부분 가루 형태라서 활용도가 낮고, 다른 물질을 섞고 ‘반죽’해서 쓰려면 순도가 낮아 소재의 강점이 떨어졌다. 모교 박사과정에서 탄소나노소재를 전공한 그에게도 사업화가 요원해 보였다.

“처음엔 어썸레이도 소재는 전면에 내세우지 않았습니다. 차세대 엑스레이와 공기정화장치 등 탄소나노튜브를 써서 만든 부품과 장비에 초점을 맞췄죠. 기존 소재 사업은 외국계 소재회사가 했던 사업을 따라가는 패스트 팔로어이자 저가 소재부터 따라잡는 바텀-업 방식이었어요. 자금이 확보되지 않으면 뛰어들기 힘들다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첨단 소재는 기술력 위주고, 소량도 높은 단가를 받을 수 있어 스타트업도 가능할 것 같더라고요. 탄소나노튜브를 섬유나 멤브레인(막) 등 수요처가 원하는 대로 만들 수 있는 기술이 가능해지면서 빠르게 사업화가 됐죠.”

100% 탄소나노튜브의 성질을 간직하되 무엇이든 만들기 좋은 형태, ‘실’이다. 어썸레이는 메탄과 에탄올, 아세톤 등의 값싼 원료에서 가루 형태의 탄소나노튜브를 직접 합성하고, 온도와 압력을 절묘하게 맞춰 실 또는 막 형태를 얻어낸다. 실을 뽑아내면 전선이나 열선, 전극을 만들거나 직조해서 천처럼 가공할 수도 있다. 막을 뽑아내면 그대로 반도체 펠리클 소재가 된다. “전 세계에 탄소나노튜브로 실을 만드는 회사가 2곳, 막을 만드는 회사가 2곳인데 그 중 실과 막을 모두 만들 수 있는 회사가 어썸레이다. 특히 펠리클은 10cm 넘는 폭의 막을 연속 생산할 수 있느냐가 중요한데, 이 사이즈로 연속 생산할 수 있는 곳은 우리뿐”이라는 설명이다.

양산이 가능하니 다양한 수요처에서 ‘러브콜’이 들어온다. 반도체 부품 기업 외에도 자동차·방산·의료 기업 여러 곳과 손잡고 연구개발 중이다. “전기차 무게의 30%를 차지하는 구리선을 탄소나노튜브 전선으로 바꾸면 무게가 5분의 1이 되니 안 쓸 수가 없다” 하고, 발열 핫팩부터 우주선까지 다양한 쓰임이 기대된다. 지금까지 기업가치 900억원에 해당하는 270억원의 투자를 유치했다.

“소재 자체가 일종의 플랫폼이 된 거죠. 전세계 30여 회사와 연구실에서 탄소나노튜브 실을 만들었지만 ‘이 실로 무엇을 할 수 있다’는 가능성을 제시한 정도예요. 어썸레이는 처음부터 사업화와 양산 능력에 초점을 맞췄습니다. 탄소나노튜브를 전선이나 열선으로 활용한다면 테스트야 몇 cm로도 되지만, 기업은 ‘5m를 뽑아 오라’고 하거든요. 그런 요구에 ‘원하는 두께와 저항으로 얼마든 만들어 주겠다’고 대응하니 계속 시장이 생기는 겁니다.”

‘기술사업화’는 그가 스스로를 설명하는 단어다. 사업 초기 어썸레이는 탄소나노튜브 시장의 특허맵부터 그렸다. 특허맵의 빈자리 중에서도 부가가치가 높고 사업화가 용이한 특허 기술을 전략적으로 개발했다. “기술의 완성도는 자신이 판단하는 것이 아니다. 당장 기업이 가져가 쓸 수 있어야 성숙한 기술”이라고 했다. 김 동문은 모교 공대에서 8년째 ‘연구자를 위한 기술사업’이란 창업 수업을 하고 있는데, 후배들에게도 이 점을 가장 강조한다. “사업 단계가 10이라면 논문 쓰고 특허 낸 단계는 2, 3 정도거든요. 그런데 학생이나 교수님들은 7~8 정도라고 착각하는 경우가 많아요. 저희도 연구실 멤버 4명이 공동 창업했지만 정작 박사과정 때 낸 특허는 사업에 쓸모가 없었죠. 다행히 학교와 현장의 갭은 차츰 줄어들고 있어요. 창업을 꿈꾸는 대학원생, 교수님들이 끊임없이 실제 기업이 필요한 기술이 뭔지 현장감을 익히면서 함께 개발해야 합니다. 산학협력단은 기업이 학생과 교수님들과 편하게 뛰어놀 수 있도록 제도와 환경을 세팅해 줘야 하고요.” 그동안 그의 수업에서 세 팀의 창업 사례가 나왔다.

재료공학부의 전신 섬유고분자공학과의 마지막 학번인 그는 섬유공학과 동문회에도 꼬박꼬박 나간다. 언젠가 탄소나노튜브 소재 우주복이나 방탄복을 만들지도 모르는 일. 섬유 업계의 쟁쟁한 선배들과 함께 산을 타며 자문도 구한다. “사업의 바탕이 되는 지식을 서울대에서 배웠기에 받은 만큼 돌려주고 싶다”며 공대에 2000만원 가량 발전기금을 냈다. 모교 동문창업네트워크 사무국장으로도 봉사 중이다.

박수진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