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57호 2024년 8월] 인터뷰 화제의 동문
“조리 로봇, 일자리 뺏는 게 아닌 사람을 위한 기술입니다”
“조리 로봇, 일자리 뺏는 게 아닌 사람을 위한 기술입니다”
류건희 (건축14-21)
피플즈리그 대표
튀김 조리 90% 자동화 로봇 개발
외식업 인력난·조리 환경 개선
치킨집도 아닌데 하루 종일 닭을 튀긴다. 대전 대덕구 대화공단에 있는 스타트업 피플즈리그 공장 얘기다. 이곳에선 지금 치킨 조리 로봇 ‘프라이 스테이션(Fry Station)’ 개발이 한창이다. 프라이 스테이션은 사람을 대신해서 튀김옷을 반죽해 입히고, 기름에 투입해 튀김끼리 붙지 않게 흔들고 꺼내는 작업까지 레시피에 맞춰서 수행해 준다.
7월 25일 찾은 피플즈리그 공장. 여기저기 스테인리스 부품이며 모터, 공구들이 널린 모습에 아이디어의 제품화를 위해 치열하게 씨름한 흔적이 읽혔다. ‘튀김 로봇’이라기에 팔 달린 로봇 형상을 떠올렸는데, 류 동문이 보여준 프라이 스테이션은 언뜻 업소용 튀김 설비와 다를 바 없어 보였다. “기존 튀김기 위에 설치하는 제품입니다. 치킨 조리 전 과정의 90% 수준을 자동화했어요. 시간당 치킨 50마리를 조리할 수 있죠.”
사실 프라이 스테이션은 피플즈리그의 두 번째 조리 로봇이다. 2021년 창업 후 고기 단면을 AI로 분석해 최적화된 온도와 시간으로 1시간에 100인분까지 조리하는 ‘미트봇’을 개발했다. 실물 매장에서 로봇이 구운 삼겹살을 배달 판매해 화제가 됐다. 대형 고깃집에서 러브콜도 왔지만 시장의 한계를 느꼈다. “규모가 큰 상위 1% 고깃집만이 미트봇을 들일 수 있고, 90% 이상의 고깃집엔 들어가기 어렵겠더라고요. 제품을 경량화할까, 조리 로봇의 핵심만 갖고 적합한 시장을 찾을까 고민하다 다시 제품 개발을 시작했습니다.”
치킨 시장이 눈에 들어왔다. 고깃집보다 매장은 적지만 프랜차이즈화가 잘 돼 다수의 균일한 주방에 제품을 확산하기 좋다. “치킨 업계는 이미 조리 로봇에 관심이 많았아요. 치킨 튀겨주는 로봇 팔도 일찍 도입됐는데 크게 보급되진 못했죠. 가격과 사이즈가 관건이라고 봤어요.”
중소기업은 물론 대기업도 튀김 로봇을 내놓는 상황. 프라이 스테이션은 네모난 튀김 바스켓 대신 삽 두 개짜리 포크레인처럼 생긴 스쿱형 헤드를 쓰는 게 특이하다. 이 헤드가 위아래로 오르내리며 튀김을 넣고 뒤섞고 건진다. “몇몇 치킨 브랜드에서 바스켓은 아랫부분 조각이 눌려서 튀김옷이 벗겨지고, 양이 많아도 불편하다는 피드백을 주셨어요. 그래서 어렵지만 직접 잡아올리도록 설계했죠.” 쓰던 튀김기 위에 얹기만 하면 되니 타사 대비 3분의 1 가격에 설치도 쉽다. 돈가스, 치즈볼 등 다른 튀김류도 만들 수 있다.
기계가 편한 걸 알아도 고장나면 하루 장사 망칠까 걱정되기 마련. 치킨 프랜차이즈들에 제품을 선보였을 때 “단순해서 좋다”는 호평도 받았다. “관절이 많아질수록 비용과 고장 확률이 드라마틱하게 올라가죠. 치킨을 흔들고, 붙지 않게 퍼뜨려주는 데 3개 축이면 충분해요. 모터가 적게 들어가니 단열 잘 되고 내구성 좋은 소재를 과감하게 쓰면서 합리적 가격을 유지할 수 있고요.”
실제 주방에 들어간다고 생각하면 테스트도 허투루 할 수 없다. “잘 되는 집이 하루 100마리 정도를 파는데 하루 종일 우리 제품을 돌리면 매장의 8일치를 튀겨보는 셈이에요. 컴퓨터 튜링 테스트처럼 사람과 로봇이 튀긴 걸 섞어서 먹고 구분해 보게 했는데, 53 대 47 정도로 거의 구분 못 하더라고요.”
엔지니어가 대부분인 팀원들은 치킨집을 수없이 드나들었다. 회사 돈으로 치킨을 사면서 슬그머니 주방에 몇 명이 일하고 어떤 작업에 얼마나 시간이 드는지 살폈다. 사장님을 붙잡고 묻기도 많이 물었다. “다른 동네에 치킨집을 내려고 한다면 대부분 친절하게 말씀해 주셨어요. 자영업자 분들이 인건비에 민감하면서도 정작 본인의 시간에 대한 가치는 깎아서 생각하시는 경향이 있었어요. 기술을 써서 시간을 아낄 수 있는데 ‘그냥 내가 더 일하지’ 생각하시더라고요. 우리 기술이 주방에 들어가기가 쉽진 않겠다 느꼈죠.”
프라이 스테이션엔 브랜드 레시피에 맞게 정량으로 치킨 반죽을 토출해 닭에 입히는 기능도 추가될 예정이다. 매 주문마다 감에 의지해 가루를 넣고 반죽하는 수고까지 덜어주겠다는 것이다. 프라이 스테이션을 쓰면 3명이 할 일을 2명이 할 수 있다. 그렇지만 류 동문은 “우리 기술이 사람의 일자리를 뺏는 기술로만 비춰지지 않았으면 한다”고 힘주어 말했다. “저도 튀김을 많이 해보니 인력난이 이해되더라고요. 뜨겁고 몸에 나쁜 ‘조리 흄’과 유증기도 나오고요. 미래엔 이렇게 위험한 일은 로봇이 대신하고, 사람들은 더 가치 있고 위험하지 않은 일을 해야죠. 일례로 최근 초중고 급식실 조리 노동자들의 건강이 중시되면서 교육청에서 먼저 조리 로봇에 관심을 보여 왔어요. 저희 제품은 차폐 구조라서 유증기도 잘 막아주죠. 앞으로 튀김 외에도 사람이 하기 힘든 다양한 조리 작업을 대체해 나가려 해요.”
류 동문은 모교 빅데이터 핀테크 과정과 현재 다니는 푸드테크 최고책임자과정에서 많은 아이디어를 얻었다고 했다. 믿을 만한 조리 로봇을 보급한 뒤엔 이를 관제하면서 주문부터 재고 관리까지 총체적인 주방 운영을 대신해 주는 솔루션도 개발할 예정이다. 올 하반기 한 치킨 브랜드와 협업해 본격적인 조리 로봇 테스트를 시작한다.
“그동안 외식업과 로봇 업체의 거리가 너무 멀었어요. 외식업에서 ‘이런 기계 만들어 달라’ 고 하면, 로봇 업체는 ‘최소 수량 100대는 보장해 달라’고 답하는 식이었죠. 잘 만들어놓고 치킨 조각 하나 빠뜨리면 주방에선 쓸모 없는 기계잖아요. 양쪽이 한 팀처럼 호흡하며 만들어 가야 하는데 서로 신뢰하지 않으니 지지부진할 수밖에요. 그런 점에서 저희가 먼저 설계안을 만들어 제시하고 피드백도 적극 받는 점을 업계에서 좋게 봐주고 계세요. 확실하게 뭔가를 만들어 보이겠습니다.”
박수진 기자
박수진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