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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04호 2020년 3월] 오피니언 관악춘추

‘세습 중산층 사회’와 서울대

이선민 조선일보 선임기자, 본지 논설위원

관악춘추


‘세습 중산층 사회’와 서울대




이선민

국사80-84

조선일보 선임기자

본지 논설위원


근래에 읽은 책 가운데 인상적이었던 것은 ‘세습 중산층 사회’(조귀동 지음, 생각의힘)였다. 모교 경제학부 출신으로 언론인으로 일하면서 박사 과정을 밟고 있는 저자는 저널리즘적인 날카로움과 학문적인 깊이를 아우르며 우리 사회에서 관심사로 떠오르는 1990년대생(生)들의 불평등 문제를 파헤친다. 그가 그리는 모습은 요즘 젊은이들과 그들의 부모에 대해 우리가 막연하게 느끼고 있던 것을 생생하게 보여준다. 그리고 그것은 바로 필자와 주변 친구들의 이야기여서 가슴이 뜨끔하다.


이 책에 따르면 오늘날 20대가 경험하는 불평등은 1퍼센트와 99퍼센트가 아니라 10퍼센트와 90퍼센트의 격차에 기인한다. 중산층 가정에서 태어나 명문대를 졸업하고 대기업과 공기업에서 번듯한 일자리를 얻은 소수의 ‘현대판 부르주아지’와 중소기업이나 비정규직을 전전하는 대다수의 격차는 좁혀지지 않는다. 누구나 겪는 결혼과 주택 문제를 거치면서 오히려 더욱 벌어진다.


‘능력의 차이’로 포장되는 이런 격차의 이면에는 1960년대생인 그들의 부모가 있다. 586세대로 불리는 이들은 1980년대 초중반 이후 대졸 사무직 수요가 폭발적으로 늘어난 데 힘입어 한국 사회에서 처음으로 학력·직업·소득·사회적 네트워크 등에서 다중(多重) 격차를 만들어냈다. 그리고 이들이 가진 자산을 총동원해 자녀에게 지위를 물려주려고 하면서 중산층의 세습이라는 결과가 빚어졌다.


이 책은 언급하지 않지만 따지고 보면 중산층의 세습이 특별한 현상은 아니다. 한국보다 먼저 근대화를 이룩한 선진국들은 어느 나라나 비슷한 경험을 했다. 그렇지만 우리의 경우는 이를 압축적으로 겪고 있고, 또 유난히 평등의식이 강한 사회적 특성 때문에 그 충격과 부작용은 결코 작다고 할 수 없다.


저자가 제시하는 해법은 ‘기회의 평등’과 ‘최소 생활수준 보장’이다. 이 중 전자는 하위 90퍼센트도 상위 10퍼센트와 동등한 교육과 능력 배양 기회를 가져야 한다는 주장이다. 지금처럼 교육이 ‘불평등 제조기’로 작동하지 못하게 해야 한다는 것이다.


서울대는 입시제도에서 ‘지역균형선발’과 ‘기회균형선발’을 다른 대학들보다 먼저 도입하면서 ‘기회의 평등’을 위해 노력해 왔다. 하지만 그 결과로 1~2명 합격하는 고교의 수는 늘어났지만 합격자가 소수 고교에 몰리는 현상은 더욱 심화됐다고 한다. 서울대가 ‘불평등 악화의 주범’이라는 비난을 듣지 않으려면 다시 한 번 심각한 고민이 필요한 시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