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03호 2020년 2월] 뉴스 기획
학위수여식 변천사
대통령 대신 연예인 선배 연사…교수합창단이 2AM 노래도
2019년 후기 학위수여식 전경. 이날 수여식에선 축사와 졸업생 대표연설 모두 여성 동문이 맡아 화제가 됐다.사진=모교 홍보팀
학위수여식 변천사
대통령 대신 연예인 선배 연사…교수합창단이 2AM 노래도
과거엔 식사낭독, 수여식 중심
이제는 특별강연, 공연까지
졸업의 계절 2월이다. 올해 학위수여식은 ‘코로나19’ 여파로 축소돼 열리지만, 학사모 아래 졸업생들의 얼굴은 예년과 다름없이 새로운 설렘으로 움튼다. 1946년 통합개교 이후 74회를 맞는 모교 학위수여식. 짧지 않은 시간이 흐른 만큼 그 풍경도 시대의 흐름에 따라 변화했다. 변천과정을 정리했다.
국가적 행사서 학내 행사로
개교 초기 모교 학위수여식은 대통령·국회의장·대법원장 등 ‘3부 요인’이 참석하는 국가적 행사였다. 1949년 명예법학박사 학위를 받은 이승만 대통령은 재임 기간 내내 서울대 졸업식에 참석했으며, 박정희 대통령 또한 1974년까지 매년 서울대 졸업식장을 찾았다. 부산 피난 중엔 임시 캠퍼스 근처 초중등학교의 강당을 빌려 조촐한 졸업식을 치르기도 했다.
광복 직후 엎친 데 덮친 격으로 한국전쟁이 터져 모교 출신들에겐 더욱 엄중한 사명의식이 요구됐다. 이승만·박정희 두 대통령의 축사엔 이러한 시대적 주문이 주로 담겼다. 그러나 산업화와 함께 민주화가 시대 정신으로 부상하면서 학생들의 반정부시위가 격화됐다. 그로 인해 1975년 학위수여식부터 대통령 대신 국무총리가 참석했고, 1982년부터는 문교부장관이 국무총리 대신 참석했다.
1986년과 1987년 학위수여식은 박봉식(정치51-55) 당시 총장의 국가보위입법회의 위원을 지낸 전력의 영향으로 심각한 파행에 치달았다. 박 총장이 연단에 오르자 졸업생들은 야유를 보내고 돌아앉아 ‘아침이슬’을 불렀으며, 이어 손제석(정치50-56) 당시 문교부장관이 연단에 오를 땐 ‘물러가라’는 구호와 함께 6,200여 명이 집단 퇴장했다. 1988년 학위수여식 땐 대운동장에서 열리는 공식 졸업식과 별도로 관악캠퍼스 교내 아크로폴리스 광장에서 ‘민주졸업식’을 개최, 고 박종철(언어84입) 열사에 대한 명예졸업을 요구하기도 했다.
민주화 시위로 학위수여식 파행이 계속되자 당시 학교 본부는 ‘졸업식행사개선위원회’를 만들어 졸업식 전반에 대한 변화를 꾀했다. 이에 따라 1989년 학위수여식부터는 ‘대통령상’(전체 수석졸업) 등을 모두 ‘총장상’으로 바꾸고 외부인사 초청을 없애 순수 학내 행사로 치르게 됐다. ‘졸업식’ 대신 ‘학위수여식’이란 명칭을 쓰기 시작한 것도 이때부터다. 또한 이전까진 학부 졸업을 더 중시해 학부생들이 먼저 학위를 받았던 반면 이후부턴 박사-석사-학사 순으로 수여하게 됐다.
1974년 박정희 대통령 참석 이후 꼭 20년이 흐른 1994년에 이르러 김영삼(철학47-51) 대통령이 다시 모교 학위수여식을 찾았다. 800여 졸업생과 5,000여 명의 학부모들이 참석한 그해 학위수여식에서 김 대통령은 “민주주의와 정의를 외친 여러 선배들의 용기 있는 행동이 문민시대를 열었다”고 말해 졸업생들의 박수를 받았다.
김대중 대통령은 김영삼 대통령 참석 이후 6년 만인 2000년 현직 대통령으로서 모교 졸업식에 참석했다. 이기준(화학공학57-61) 당시 모교 총장이 “대통령 부인 이희호(교육46-50) 여사가 서울대 사대를 졸업한 동문”이라고 말하자 박수가 터졌고, 일부 학생들은 휘파람을 불었다. 기분이 좋아진 김 대통령은 “나도 준동창회원”이라며 농담을 건네기도 했다.
학위수여식이 지금처럼 체육관에서 개최된 건 1997년부터다. 그전까진 대운동장에서 바깥 날씨를 안고 행사를 치렀다. 1975년 3월 관악캠퍼스에서 처음 열린 입학식에선 비 때문에 참석자들이 우산을 받쳐들어야 했다. 2018년 8월엔 개교 이래 처음으로 ‘총장 없는 학위수여식’이 개최되기도 했다. 신임 총장 선거 과정에서 불거진 내홍으로 인해 박찬욱(정치72-76) 교육부총장의 직무대리 체제가 이어졌기 때문이다.
1987년 학위수여식에서 졸업생들이 당시 총장에 대한 반감으로 단상을 등지고 있다.
취업난 여파로 불참율 높아져
과거 서울대 졸업식이 ‘시국의 창’이었다면 오늘날 학위수여식은 또 다른 축제의 양상을 띤다. 2011년부터 모교 위상에 걸맞게 콘텐츠를 갖춘 ‘감동의 학위수여식’을 기획하기 시작한 것.
그해 전기 학위수여식은 졸업식사 낭독 및 학위 수여에 그쳤던 기존 형식과 달리 특별강연 및 특별 축하 공연이 마련돼 눈길을 끌었다. 김난도(사법82-86) 소비자아동학부 교수가 연단에 올라 ‘너의 계절을 준비하라’는 제목의 강연을 했고, 40여 명의 교수들로 구성된 서울대 교수합창단이 아이돌 그룹 ‘2AM’의 ‘죽어도 못 보내’를 불러 졸업생들의 뜨거운 박수를 받았다. 김수정(산업미술83-87) 모교 디자인학부 교수는 종합체육관 내부 인테리어를 확 바꿔 서울대 상징색인 청색을 활용한 단순하고 미적인 공간으로 탈바꿈시켰다. 모교 상징색은 이듬해 새롭게 선보인 학위복에도 적용됐다. <아래 기사 참조>
2011년 후기 학위수여식엔 학내 동아리의 공연을 보고 졸업생이 투표하는 경연 형식의 축하 공연이 펼쳐졌으며, 타의 귀감이 될 만한 졸업생이라면 성적과 상관없이 대표연설을 맡게 했다. 2015년 후기 학위수여식에서 졸업생 대표연설을 한 정원희(경영09-15) 동문은 평생을 휠체어에 의지해 생활해왔지만 “장애를 ‘불행’으로 보는 시선에 휘둘리지 않고 원하는 것을 찾아 계속 도전했더니 ‘행복’이 곁에 있더라”고 말해 감동을 줬다.
2019년 전기 학위수여식엔 ‘방탄소년단’을 키운 방시혁(미학91-97) 동문이 연사로 나서 세간의 주목을 받았다. 연예인으로서는 처음으로 모교 학위수여식에서 축사를 한 그는 200자 원고지 기준 40매가 넘는 장문의 축사를 통해 ‘현실에 안주하지 말고 부조리에 맞서라’는 메시지를 던져 화제가 됐다.
같은 해 8월 개최된 후기 학위수여식엔 여성 연사들이 눈에 띄었다. 신수정 본회 회장에 이어 노정혜(미생물75-79) 한국연구재단 이사장이 축사를 맡았으며, 졸업생 대표연설도 여성 창업자인 강미나(경영13-19) 동문이 맡은 것. 단대별 성적 최우수상을 받은 졸업생 또한 11명 중 6명이 여성이어서 ‘여성 동문의 힘’을 실감케 했다.
그밖에 모교는 본식에 앞서 축하 연주를 하고, 졸업생들의 재학시절 추억을 담은 사진을 슬라이드로 정리해 상영하는 등 졸업생이 스스로 주인공임을 실감할 수 있도록 다채로운 부대 행사를 지속하고 있다. 이러한 시도는 개인주의적 성향이 짙어진 시대에 취업난까지 가중되면서 급감하는 학위수여식 참석율을 끌어올리려는 노력으로도 풀이된다.
지난해 초 취업포털 ‘잡코리아’가 4년제 대학 졸업예정자 1,112명을 대상으로 설문조사한 결과에 따르면 27.2%가 “졸업식에 참석하지 않을 것”이라고 답했다. 그 이유로는 ‘별 의미가 없는 것 같아서(62.4%)’라는 응답이 가장 많았고 ‘취업, 시험 준비에 시간이 빠듯해서(17.2%)’, ‘취업을 못해서(12.9%)’가 뒤를 이었다. 가족조차 부르지 않고 ‘혼졸’(혼자 졸업식에 참석)하거나 졸업장을 택배로 받는 일도 흔한 상황. 2009년 모교 총학생회가 조사한 설문에서 이미 학위수여식을 ‘단지 형식상 절차에 불과하다’고 지적하는 시각이 있었다.
1994년 학위수여식엔 1974년 이후 20년 만에 현직 대통령인 김영삼 동문이 참석했다.
대통령 참석은 DJ가 마지막
모교 개교 초기 학위수여식 축사는 대통령이 맡는 게 관행이었다. 국가 원수이자 국민의 대표기관인 대통령의 축사인 만큼 시대적 소명을 요구하는 목소리가 주로 담겼다.
한국전쟁 중이던 1953년 3월 졸업식에서 이승만 대통령은 “이번에 졸업하는 학사 제군들 중 90%가 사관후보생에 자원한 것은 우리 국군의 위신과 실력을 더욱 빛내는 것으로 기뻐해 마지 않는 바”라고 치하했으며, 박정희 대통령은 “대학은 민족의 전통과 문화를 창조적으로 계승 발전시켜 민족중흥의 대원천이자 근대화의 추진 역량이 돼야 한다”고 말했다.
1994년 김영삼 대통령이 현직 대통령으론 20년 만에 모교 졸업식에 참석했다. 세월이 흐른 만큼 축사에서도 시대적 변화가 감지된다. 김 대통령은 “투쟁이 영웅시되던 시대는 갔다”며 “대학이 개혁과 창조의 선두에 서야 한다”고 말했다. 또한 세계와 인류에 창조적으로 기여하기 위해 야망을 가질 것을 당부하면서 “개인과 나라의 앞길을 거침없이 열어가 달라”고 강조했다.
1999년 김종필(사회교육46입) 국무총리는 ‘글로벌 시티즌십’을 주문했으며, 2000년 김대중 대통령은 “여러분이 경쟁하고 협력해야 할 상대는 같은 한국인만이 아니라 선진국의 젊은이들임을 명심하라”고 말했다. 그는 또 “인생의 성공은 대통령이 되는 것도, 교수가 되는 것도, 사장이 되는 것도 아니다. 어떻게 사느냐가 중요하다”며 평소 갖고 있던 소신을 밝혔다.
법인화 이후 모교 졸업식 축사는 비동문과 외국인, 기업가, 한학자 등 초청 연사의 면면과 함께 더욱 다양한 주제를 띤다.
2012년 2월 윤윤수(비동문) 휠라코리아 회장은 “서울대 입시에 3번이나 낙방했지만, 당시의 고난과 실패가 큰 재산이 됐다”며 도전 정신을 강조했고, 2016년 2월 하형록(비동문) 팀하스 회장은 “명사로 표현되는 사회적 지위가 아닌 행동으로 실천하는 동사형 삶을 추구할 것”을 강조했다. 같은 해 8월 김인권(의학69-75) 여수애양병원 명예원장은 너무 좋은 직장을 찾지 말라는 축사로 화제를 모았다.
2014년 8월 성백효(비동문) 해동경사연구소장은 노자·논어의 가르침을 인용하면서 “복을 누리는 사람보단 복의 터전을 쌓는 사람이 돼 달라”고 축사했다. 2019년 8월 노정혜 한국연구재단 이사장은 정치적 혼란기에 학교를 다녀 “교수님들한테 배운 것보다 스스로 공부한 것이 더 많았다”며 스스로 찾아 배우는 공부를 강조했다.
나경태 기자
박사 학위복 후드는 단대별로 색깔이 다르다. 인문대는 흰색, 사회대는 군청색, 간호대는 살구색 등이다.
모교 학위복 변화
선비의 옷에 글로벌 감각 담아
2012년 전기 학위수여식부터 현재의 학위복을 입기 시작했다. 그전까지 60여 년 동안 입었던 학위복은 미국식 검은색 학위복으로 서울대 고유의 정체성 및 전통성과는 거리가 있었다.
현 학위복은 청색 계통의 모교 고유색을 사용했으며 친숙한 모교 엠블럼을 가슴에 새겨 정체성을 부각시켰다. 심의, 학창의, 앵삼 등 조선시대 선비가 입던 복식을 본떠 앞면과 소매에 검은색 띠와 흰 선을 배치하는 등 한국 전통의상의 특징을 과감히 살렸다. 학위복 연구 책임을 맡았던 김민자(가정교육67-71) 모교 의류학과 명예교수는 “새 학위복은 서울대의 정체성과 선비 정신, 글로벌 감각을 나타내는 데 초점을 뒀다”고 말했다.
학위 등급에 따른 권위의 존중도 스며있다. 어깨에 두르는 후드는 석박사 학위 수여자에게만 적용됐고, 팔 부위에 파이핑도 석사는 두 줄, 박사는 세 줄 적용한 데 비해 학사 학위 수여자는 파이핑이 아예 없다. 가슴에 모교 엠블럼과 학위모의 술 또한 박사는 금색, 석사는 은색, 학사는 흰색으로 구분했다.
후드의 색은 석사는 이과와 문과로 나뉘어 각각 노란색과 하늘색을 착용하며, 박사는 단과대학별로 다른 색을 착용한다. 인문대는 흰색, 사회대는 군청색, 자연대는 옐로우 오커, 간호대 살구색, 경영대 진밤색, 공대 감색, 농생대 크롬 옐로우, 미대 밤색, 법대 자주색, 사대 하늘색, 생활대 레몬 옐로우, 수의대 회색, 약대 쑥색, 음대 분홍색, 의대 진녹색, 치대 연보라색 등이다. 학위수여식 단상 위에 보직교수들은 보통 박사 학위를 받은 대학의 학위복을 입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