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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99호 2019년 10월] 오피니언 관악춘추

서울대인들의 빗나간 우정

정성희 동아일보 미디어연구소장, 본지 논설위원

서울대인들의 빗나간 우정


정성희
국사82-86
동아일보 미디어연구소장
본지 논설위원



“서울대는 도대체 왜 그래?”
 
최근 온 나라를 찢어놓고 있는 사건에 모교 출신이 여럿 등장하다 보니 이런 질문을 종종 받는다. 아닌 게 아니라 이번 사태는 서울대 동문들이 대한민국을 무대로 극본을 쓰고 주·조연도 맡고 있는 부조리 막장드라마 같다. 욕하면서도 보게 되는…. 다만 처음 코미디였던 장르가 이제는 호러물로 바뀌는 느낌이다.

돈 권력 명예를 향한 사람들의 질주는 새삼스럽지 않지만 그것이 ‘자녀 입시’에도 작동한다는 건 지극히 한국적 현상이다. 조 국 법무부 장관 부부가 자녀 입시를 위해 벌였던 온갖 위법적 행태에 서울대 인맥이 엑스트라로 출동했다. 2005~2014년 서울대 인권법센터에서 딱 한 명이었던 고교생 인턴은 조 장관의 딸 아니면 아들이라고 한다. 조 장관과 절친한 동문들의 협조나 묵인이 없으면 불가능한 일이다. 받은 사람은 있는데 준 사람은 없는 딸의 환경대학원 장학금은 여전히 미스터리다. 

조 장관 딸의 공주대 인턴 역시 부인의 대학시절 천문 동아리 친구가, 한국과학기술연구원(KIST) 인턴도 부인의 대학 친구가 주선해 주었다. 나경원 자유한국당 원내대표 아들의 과학경진대회도 동문인 서울대 교수가 도움을 제공했다. 실험실만 제공받았다는 해명에도 불구하고 그런 기회조차 갖지 못한 청년들의 울분이 크다. 서울대 출신들은 자기들끼리 논다는 세간의 불만에 딱히 할말이 없어진다. 

돌이켜 보면 굴지의 게임회사 대표가 ‘절친’인 현직 검사에게 비상장주식을 건넨 일도 있다. 우정으로 한 일이지만 큰 물의를 빚었을 뿐더러 당사자가 져야 할 법률적 사회적 책임도 컸다. 주식을 받지 못한 한 친구가 “친한 줄 알았는데 나는 개털이었다”고 했다는 말도 들린다. 

엘리트집단의 몰염치가 동문연대를 통해 지켜지고 강화되며 그 과정에서 집단의식은 죄의식을 희석시킨다. 이런 행태가 소위 말하는 학벌에 대한 기대치라면 서울대는 물론 대한민국에도 희망은 없다.

대학생활의 가치는 학문을 배우는 것을 뛰어넘는다. 삶의 등대가 될 세계관과 가치관을 형성하고 사회적 국가적 책무를 익히며 무엇보다 마음 맞는 벗을 발견하는 시기이기도 하다. 

우정은 인생 최고의 선물이다. 그러나 끼리끼리 편의를 제공하고 비위를 눈감아 주고 불법에 가담하는 게 우정이 아니다. 서울대는 선망과 질시의 대상이므로 서울대인은 그들만의 네트워크가 갖는 폐쇄성을 더욱 경계해야 한다.  

‘우정에 대하여’를 쓴 키케로는 “우정은 이익이나 쾌락이 아닌 미덕을 바탕으로 하고 서로 조화를 이루며 안정적이며 신뢰를 가질 때만 가능하다”고 했다. 서울대인의 우정은 과연 미덕에 근거하고 있을까, 회의감이 밀려오는 시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