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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97호 2019년 8월] 오피니언 관악춘추

“너 이거 잘하는데”…사람 바꾸는 한 마디

방문신 SBS 논설위원·본지 논설위원



“너 이거 잘하는데”…사람 바꾸는 한 마디


방문신 (경영82-89) 본지 논설위원
SBS 논설위원,관훈클럽 총무



학교 다닐 때 이런 질문 받아보셨나요? “너는 뭐가 재미있니? 이것 잘하는 것 같던데 도와줄 것 없니?”라는 질문 말입니다. 기억이 많다고요? 그러면 당신은 복 받은 사람입니다.


당신의 현재를 관찰해 주고 미래를 얘기해 주는 사람이 있었다는 뜻이죠. 의식하지 못 했지만 그 덕분에 당신의 삶은 살짝 바뀌었는지도 모릅니다. 지금이라도 크게 감사드리세요. 하지만 대한민국에서 그런 경험은 소수입니다. 선생님 대부분은 그런 질문에 익숙하지 않습니다. 부모님들도 마찬가지입니다. 뭘 잘하는지에 관한 이야기가 없으니 그저 ‘공부하라’고 할 뿐입니다. 그것도 영어, 수학 편중의 선행학습입니다. 학생들은 그냥 하라니까 하는 겁니다. 강요된 생존을 위해서죠. 사교육 광풍, 의대 열풍, 성적순 전공은 이같은 ‘방향 없는 맹목’의 집단 결과물이죠.


그렇다고 공교육 문제점을 외쳐온 진보진영의 교육감 또는 교원단체가 이 문제를 진지하게 실천했을까요? 답변은 부정적입니다. 공부 그만시키라는 말만 했을 뿐 학생들 방치는 마찬가지입니다. 무책임, 이중성은 오히려 더 심해 보입니다. 자사고 폐지를 주장하면서 자기 자식들은 자사고 또는 해외학교를 보내는 분들의 말 따로, 행동 따로는 어떻게 보아야 할까요? 남의 자식은 대충 키우라고 하면서 자기 자식은 비싸게 키우겠다는 뜻인가요? ‘평등교육은 구호일 뿐 나도 해법 없으니 각자도생하라’는 메시지를 준 건 아닌지 걱정입니다.


교육의 다양성은 정치적 주장으로 이뤄지지 않습니다. 진지한 작은 실천에서 시작합니다. ‘무엇을 잘한다고 생각하니?’라는 선생님 질문을 화두로 끌어들인 것은 그 이유 때문입니다. 영어, 수학 외의 다른 재능도 학교가 키워준다는 믿음. 공교육의 복원은 이 믿음의 복원입니다.


50대 후반의 나이에 반추해 보니 성적, 지혜, 행복은 서로 다른 공간에 자리하고 있음을 느낍니다. 학교 성적이 국영수 점수였다면, 지혜는 문사철(문학 역사 철학), 행복은 음미체(音美體) 영역이 크다는 것을 느낍니다.


그래서 부탁드립니다. 이 땅의 선생님과 부모님들! ‘공부하라’는 말을 ‘너, 이것 잘하는 것 같은데 도와줄 것 없니?’라고 바꿔서 말해 주세요. 물론 쉽지 않아요. 선생님, 부모님도 함께 관찰하고 생각해야 하니까요. 그러나 그 질문은 출발점의 각도이기에 미래의 도착점에서는 큰 각도를 만들어 낼 수 있어요. 이 작은 질문 하나만으로도 아이의 미래는 더 확장되고, 교육의 지평은 더 다양화돼 있을 거예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