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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95호 2019년 6월] 오피니언 동문칼럼

자그레브에서 만난 사람들

신기남 도서관정보정책위원회 위원장


자그레브에서 만난 사람



신기남
법학70-74
도서관정보정책위원회 위원장


지난 2월 15일자 서울대 총동창신문 제20면 문화면 상단에 내가 쓴 소설 ‘두브로브니크에서 만난 사람’을 소개하는 기사가 실렸다. 내 얼굴 사진에 책 표지 사진까지 함께 곁들인, 어느 언론 기사보다도 한결 자세하고 친절한 기사였다. 역시 동문에 대한 애정이 깃들여 있기 때문이 아닌가 여겼다. 덕분에 이 소설이 좀 더 알려지게 되었을 테니 우선 작가로서 고맙고 그 다음 출판사에도 무척 반가운 일임에 틀림없다.

이 소설의 무대는 크로아티아이다. 이 나라는 요즘 들어 부쩍 한국인들의 인기 관광지로 떠오르고 있다. 그 돌풍의 근원은 두브로브니크이다. 날개를 활짝 펴서 푸른 아드리아 바다를 품에 안은 흰 백조처럼 아름답기 그지없는 성이 우뚝 서 있다. 장담하거니와 이보다 더 아름답다 할 만한 성은 지구상에 없을 것이다. 그래서 이를 보러 먼 곳까지 오는 것이리라. 나 역시 소문을 듣고 찾아갔다가 크로아티아에 푹 빠지게 되었다. 그 성과 자연의 아름다움뿐만이 아니라 역사와 문화와 사람에게까지 내 관심은 확장되었다. 그것이 내처 소설을 쓰게 된 계기가 된 것이다.

한 쌍의 남녀가 두브로브니크에서 우연히 마주친다. 제각기 무언가를 찾아서 온 두 사람은 그것을 찾기 위해 함께 발칸 반도로 퍼즐 맞추기 여행을 떠난다. 그들은 여행길 곳곳에서 발칸의 여러 민족이 서로 얽히며 흘러온 역사의 흔적을 본다. 무엇보다도 유럽 한복판에서 벌어졌던 20세기 마지막 전쟁의 상처를 대하고 마치 자신들의 것인 양 아파한다. 위 총동창신문 기사가 썼듯이, 이 소설은 남녀의 연애 이야기를 주제로 하는 것이 아니라 유고슬라비아 내전을 둘러싼 국제정세와 역사의식을 파헤치는 정치적인 성격을 띤 소설인 것이 사실이다.
이 소설은 우리나라에서 크로아티아를 배경으로 쓴 최초의 문학작품이라 할 만하다. 그래선지 출간 직후 주한 크로아티아 대사관의 쿠센 대사로부터 만나자는 연락이 왔다. 우리는 마치 오래된 친구처럼 느껴져서 그가 가져온 크로아티아산 와인을 마시며 길게 얘기가 이어졌다. 쿠센 대사는 자신도 이 소설을 읽고 싶다고 했는데, 그러려면 그가 읽을 수 있도록 번역이 되어야만 했다. 우린 굳이 영어번역을 거치지 말고 바로 크로아티아어로 번역을 해보자고 결론을 내렸다. 한 발 더 나아가 한국-크로아티아 합작으로 영화까지 만들면 어떻겠느냐는 데까지 비약(?)을 하기에 이르렀다. 멋진 한 편의 로드 무비(road movie)가 될 것 같았다.

소설 번역을 하든 영화를 만들든 우선 나는 크로아티아에 다시 가서 본격적으로 크로아티아와 살갗을 비비고 그 숨결을 느끼고 싶었다. 쿠센 대사는 내가 좋은 곳에서 좋은 사람들을 만나서 꼭 필요한 얘기를 나눌 수 있도록 주선해 주겠다고 다짐했다. 우린 이를 기회 삼아 양국 간의 문화적 교량을 건설하자는 데 의기투합을 했다.

그래서 소위 ‘문화사절단’이 구성되었다. 영화감독, 공연기획가, 언론인이 포함된 5인의 민간 사절단이다. 우리 뜻을 전해 듣고 이에 전폭적으로 공감을 한 박양우(행대원81-86) 문화체육관광부장관이 코르치네크 크로아티아 문화부장관에게 보내는 친서를 써 주었고, 이 친서는 후에 우리가 직접 코르치네크 장관에게 전달하여 큰 힘이 되었다. 호주 대사를 역임하고 작년 9월 처음으로 개설된 주한 크로아티아 대사관의 첫 상주대사로 부임해 온 쿠센 대사의 상상력과 업무 집행력은 놀라웠다. 우리 문화사절단이 크로아티아에서 소화할 프로그램이 단 며칠 만에 완성되었다. 만날 대상이 문화, 예술, 스포츠, 정치, 행정, 언론계까지 두루 망라된 그야말로 골든 스케줄이었다. 우린 두브로브니크에서 북쪽으로 600㎞ 떨어진 자그레브로 떠났다.

크로아티아의 수도 자그레브는 오랜 역사를 통해 중부 유럽의 문화중심지 역할을 해왔다. 고대 로마, 중세 르네상스, 근대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의 전통과 문물이 약연하다. 이탈리아 반도의 서로마가 멸망한 후에도 아드리아 해 건너편 발칸의 동로마는 한층 찬란한 문명을 과시하며 천 년을 더 견디었고, 중세 르네상스로 일어난 지중해권 문명은 베네치아와 더불어 현재 크로아티아 영토에 속한 리예카, 풀라, 두브로브니크 등의 도시가 이끌었으며, 근대 유럽 절대왕정 시대 문명의 중심지인 비엔나는 자그레브와 최근거리로 직결되어 있었다. 크로아티아는 한때 유고슬라비아 연방공화국의 구성국으로 공산주의 체제에 묶여 있다가 독립국가로 새 출발을 했고 그 과정에 내전이라는 시련을 겪기도 했으나, 지금은 28번째로 EU에 가입하여 중부 유럽의 중심국가로 도약할 태세를 갖추고 있다.

우린 크로아티아의 핵심지인 자그레브에서 열흘을 머무르면서 30여 명의 각계 인사를 만났고 10여 곳의 공공장소를 방문했다. 국영 TV 방송에도 두 번 출연했다. 차로 3시간 거리인 이스트라 반도에 가서 그 숨 막힐 듯이 아름다운 산하를 돌아보기도 했다. 모두 우리를 따뜻이 맞이해 주었고, 그들과 여러 가지 구체적인 문화교류 방안을 합의할 수 있었다.

내 소설 ‘두브로브니크에서 만난 사람’의 현지 번역출간과 영화화를 지원하겠다는 다짐도 받았는데 이것은 덤에 불과하다고 여긴다.

소설 한 편을 매개로 문화교량을 놓게 된다면 그것은 문학의 위력을 입증하는 사례가 될 것이다. 그들은 한국에 크나큰 관심을 보였고 우리와의 교류를 절실히 바라고 있었다. 그것은 단순히 우리의 경제력 때문만은 아니라고 믿는다. 깊은 역사와 풍요로운 문화를 간직했다는 점에서 그들과 우리는 공통점이 많다. 바다와 면한 긴 해안선을 가지고 있고 기후가 온화하여 그 품에 사는 사람들의 품성도 우리와 비슷하다. 20세기에 내전을 겪은 아픔까지 공유하고 있다. 최근 우리 관광객이 크게 늘어나자 더욱 친근감을 표시해 오는 그들에게 우리가 응답해야 할 이유는 셀 수 없이 많다.

알면 알수록 정이 가는 자그레브를 떠나오려니 못내 섭섭했다. 자그레브에서 만난 사람들이 벌써 그립다. ‘두브로브니크에서 만난 사람’ 속편으로 새 소설 ‘자그레브에서 만난 사람들’을 써 볼 요량을 품어보는 것으로 위안을 삼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