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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13호 2020년 12월] 오피니언 동문칼럼

신기남 도서관정보정책위원장 칼럼

문화선진국은 도서관 보면 안다
동문칼럼

문화선진국은 도서관 보면 안다



신기남

법학70-74
도서관정보정책위원장
변호사·소설가


며칠 전 종로도서관 개관 100주년 기념식에 초대받아 갔다. 인왕산 줄기가 뻗어내린 산 중턱에서 멀리 도심을 굽어보고 있는 도서관이다. 나로선 까까머리 소년시절 가본 이후 무려 50년만의 방문인 셈이다. 도서관은 그곳에 아직도 우뚝 서 있었다. 비록 건물의 외양은 세월의 이끼가 짙게 드리워진 모습이었으나 속에서 내뿜는 자태는 의연했다. 역사의 무게라고 할지. 창가에 그 시절의 까까머리 소년이 보인다. 옛날의 그와 오늘의 내가 만나 미소를 교환한다. 그 자리에서 반백 년 전의 추억을 소환할 수 있었던 것은 분명 큰 행운이었다.

종로도서관은 1920년 민족 독자의 힘으로 문을 열었다. 한국인이 세운 첫 공공도서관이다. 이용객도 한국인이 대부분이었다. 설립시에는 종로 탑골공원 안에 경성도서관이란 이름이었으나, 광복 후 종로도서관이 되었고, 1968년 지금의 사직공원에 신축을 하여 옮겨졌다고 한다. 일제 강점기에도 문화민족의 혼이 꿋꿋이 살아있음을 보여준 자랑스러운 역사를 간직했기에 그 100주년 맞이는 대단한 의미를 지닌 것이다.

나는 ‘대통령소속 도서관정보정책위원회’ 위원장 자격으로 초대되어 가서 여러 인사들 틈에서 축사를 보태는 영광을 누렸다. 도서관정보정책위원회는 정부의 도서관정책을 수립하고 시행하는 최상위 기구의 위상을 가지고 있다. 도서관정책을 다루는 정부 주무부처는 문화체육관광부이지만, 별도로 대통령 소속으로 도서관정보정책위원회가 존재하는 데는 그만한 이유가 있다.

도서관 수익률 예산대비 2배
아낌없이 사서교사 확충해야


전국에 존재하는 각종 도서관의 수는 2019년 현재 2만2,000여 개인데, 종류별로 보면 공공도서관 1,134개, 작은도서관 6,700여 개, 대학도서관 460여 개, 학교도서관 1만1,000여 개, 전문도서관 600여 개, 교도소도서관 52개, 병영도서관 1,857개, 장애인도서관 47개이다. 도서관 종류에 따라 운영주체가 다르고 관할하는 정부부처도 다르다. 가장 중요한 역할을 하는 공공도서관의 79%는 각 지방자치단체, 21%는 교육청이 운영한다. 작은도서관은 22%를 지방자치단체, 나머지는 개인이나 단체가 운영한다. 대학도서관과 학교도서관은 교육부의 관할 아래에 있다. 교도소도서관은 법무부, 병영도서관은 국방부 소속이다. 전문도서관을 운영하는 주체는 각자 분야에 따라 더욱 각양각색이다. 이처럼 다양하니 정부 어느 한 부처의 힘만으로는 부족하고, 범정부적 차원에서 도서관정책을 종합적으로 조율해 수립하고 시행할 필요성이 절실하다. 대통령소속 도서관정보정책위원회는 위원장을 위시해 30인으로 구성되는데, 11개 정부부처의 장관들이 당연직 위원으로 참여하고, 나머지 19인은 각 방면 전문가들이 위촉직 위원으로 참여한다. 위원회는 5년마다 도서관발전종합계획을 수립하여 정부 각 부처와 지방자치단체와 그 산하 도서관들에 시달하며, 그들이 이 계획에 따라 업무를 잘 수행하고 있는지 여부를 평가하고 바로 잡아준다.

위원회는 그동안 여건이 미흡하여 미처 활동이 본궤도에 오르지 못했던 것이 사실이다. 최근에 조직과 예산을 정비하여 일을 할 준비를 갖추었고, 내년부터는 본격적으로 제 역할을 담당해 나갈 예정이니 기대해 주기 바란다. 

도서관은 21세기 지식정보사회를 이끌어갈 핵심적인 사회적 기반시설(social infrastructure)이며, 지역공동체가 모이고 소통하는 문화적 중심지이다. 문화의 힘이 곧 국력으로 평가받는 시대를 맞아 도서관의 가치와 소용은 더없이 높아졌다. 그러나 도서관에 꼭 필요한 예산과 조직을 요청할 때마다 정치인, 행정관료, 언론의 무감각증 앞에서 느끼는 일종의 좌절감이 있다. 경제만능 사조가 우리 사회에 만연해 있기 때문이다. 외형적 경제효과를 최우선으로 삼는 이들에게는 도서관의 효용이 머리에 그다지 와닿지 않는다. 때마침 도서관의 가치를 순전히 경제적 측면에서 평가해본 연구결과가 나와서 주목을 끌고 있다. 최근에 한국도서관협회가 공공도서관의 운영 실태를 분석하여 내놓은 연구결과인데, 도서관의 예산대비 수익률은 평균 2.23배에 이르고, 사서 인건비의 부가가치율은 평균 8.68배에 이른다는 것이다. 이것은 문화나 교육적 효과를 논외로 하고 오로지 경영학적 차원에서 비용분석을 한 것이다. 도서관 육성에 투입하는 예산의 객관적 근거가 제시된 셈이다. 이제 도서관의 경제적 가치가 그 어떤 분야보다 우월하다는 점에 주목해야 할 때이다.

반면 우리의 현실을 한 가지만 예로 들어보자. 전국의 초·중·고 도서관 1만1,000여 개 중에서 도서관 운영과 독서지도를 맡은 사서교사가 배치된 곳은 10% 정도에 불과한 실정이다. 상담교사, 영양교사, 보건교사, 체육교사에 결코 못지않은 역할을 감당해야 할 교육자가 사서교사이다. 학생들의 마음과 머리를 키우는 도서관이야말로 학교에서 가장 중요한 교육수단이라고 한다면, 그 길을 안내하는 사서교사 없는 도서관은 텅 빈 공간일 뿐이다. 도서관은 아무나 적당히 운영할 수는 없는 전문적 기구이기 때문이다. 이러한 전문가 부족현상은 공공도서관, 대학도서관에서도 공통된 현상이다.

“문화선진국이 진정한 선진국이며, 도서관은 문화선진국으로 가는 첩경이다.” 100년 된 도서관 기념식의 축사를 하는 자리에서 새삼스레 되뇌어본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