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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92호 2019년 3월] 오피니언 관악춘추

‘SKY 캐슬’이 던지는 불편한 경고

임석규 한겨레 디지털미디어국장·본지 논설위원

‘SKY 캐슬’이 던지는 불편한 경고


임석규
언어84-91
한겨레 디지털미디어국장·본지 논설위원



어쩌면 분노는 세계적 조류다. 상류 엘리트, 기득권층을 향한 대중의 분노가 곳곳에서 지축을 흔들고 있다. 프랑스 ‘노란 조끼 시위대’는 정치 성향을 불문하고 쉼 없이 뛰쳐나온다. 영국의 브렉시트, 미국의 트럼프 집권도 주류 엘리트에 대한 울분과 환멸 속에 현실화했다. 독일, 네덜란드, 스웨덴에서도 지배 엘리트에 대한 중하층의 불신을 자양분 삼아 극우 정치세력이 힘을 키우고 있다. 저마다 사정은 다르지만 저변에 깔린 공통분모는 경제력 격차 확대다.

한국은 이런 흐름과 차단된 무풍지대일까. 소득 3만 달러 시대에 들어섰다지만 격차 문제는 이들 나라 못지않다. 일본 중소기업 연봉은 대기업의 80% 정도인데 한국은 절반 수준이다. 정규직, 비정규직 임금 격차는 어느 나라보다 크다. 특히 청년 실업률은 일본의 두 배를 웃도는데, 증가 속도가 빨라 더욱 걱정이다. 사람 사는 세상에 격차가 없을 수 없지만 그 정도가 지나치면 통제하기 어려운 방식으로 분출될 우려가 있다.

화제의 드라마 ‘SKY 캐슬’이 던지는 ‘불편한 경고’도 결국 계층 격차 문제 아닐까 싶다. 계층 상승 통로로 여겨온 명문대 입시가 실은 ‘고학력 엘리트 카르텔’을 대물림하는 은밀한 장치라고 드라마는 넌지시 일깨운다. 경쟁에서 승리해 계층 피라미드의 정점에 올라서길 선망해온 사람일수록 그곳에 결코 입성할 수 없다는 현실 앞에 느끼는 열패감은 더욱 크기 마련이다. 드라마 속 현실은 비현실적으로 과장돼 있는데, 그래서 더욱 현실을 생생하고 실감 나게 그려낸다.

저 높은 곳에 우뚝 솟아있는 ‘그들만의 성채’에 들어가지 못했다고 좌절한 청년들이 무슨 생각을 할까. 이들의 정서를 설명하는 단어로 분노보다 더 정확한 어휘는 없을 것이다. 20대의 전폭적 지지 속에 집권한 문재인 정권에서도 청년들의 현실은 크게 변하지 않았다. 돌덩이 같은 분노를 품고 있는 그들에게 ‘교육 부족’을 탓하는 건 상처에 소금을 뿌리는 일이다.

그들이 분노하는 건 눈앞의 현실보다 다가올 미래가 더욱 암울하다는 전망 때문일 거다. 청년 일자리는 수많은 요인이 복합적으로 작용하는 문제다. 단기간에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것처럼 말하는 건 속임수에 가깝다. ‘한방’에 풀 수 있는 비책은 없다는 점부터 솔직하게 인정하는 게 순서다. 고통이 길어질 수 있다는 점도 설득해야 한다. 기성세대가 이 문제를 최우선 의제로 삼아 집요하고 끈덕지게 달라붙는 모습을 보일 때 비로소 청년들도 분노를 삭이기 시작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