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92호 2019년 3월] 문화 미술산책
미술산책 <14> 세상은 극장
안드레아 포초의 성 이냐시오 교회 천정화
세상은 극장
글 조은정 (서양화87-91) 목포대 미술학과 교수
안드레아 포초, 성 이냐시오 교회 천정화
“온 세상은 연극 무대이고, 모든 남자와 여자들은 퇴장과 등장을 거듭하는 배우들이다”라고 했던 이는 영국의 대문호 셰익스피어이다. 그가 현세에서 인생이라는 연기를 펼치는 사람들의 모습을 극장에서 재현하는 데 몰두했다면, 예수회 수사이자 화가인 안드레아 포초(Andrea Pozzo, 1642-1709)는 연극 무대의 환영감을 교회와 궁전 등 극장 바깥세상으로 확장했던 인물이라고 할 수 있다. 그리고 이러한 연극적 효과가 집약적으로 구현된 사례가 바로 로마의 성 이냐시오 교회 천정화이다.
이 교회의 중앙 통로 천정에는 예수회 창립자인 로욜라의 성 이냐시오(St. Ignatius of Loyola, 1491-1556)의 업적이 은유적으로 재현되어 있다. 교회 바닥으로부터 높은 천정까지 자연스럽게 소실되는 원래의 벽면 구조와 이어지도록 천정화를 구상한 덕분에 원래의 웅장한 교회 규모가 몇 배로 강조되어 보인다. 그리고 중앙 통로에 서서 천정을 올려다보는 관람자들은 교회 건물이 하늘을 향해 열려 있고 그 광활한 하늘에서 주인공 성인이 천국의 축복을 받고 있는 모습을 지상에서 관람하는 느낌을 받게 된다.
르네상스와 바로크 시대를 거치면서 발전한 서양 무대 배경화의 투시 원근법에서 삼차원적 공간감을 만들어내는 핵심 요소는 특정한 시점에 상응하는 소실점이다. 성 이냐시오 교회와 같이 크고 복잡한 공간 안에서 움직이는 사람들에게도 고정된 주 시점이 필요하다. 교회 중앙 통로 대리석 바닥 한가운데에 있는 원반 문양이 바로 이 주 시점의 위치로서, 여기서 포초가 의도한 환영 효과를 최대치로 누릴 수 있다.
중앙 통로를 따라서 동쪽 제단부로 이동하다 보면 바닥의 두 번째 원반 문양에 도달하는데, 이 위치는 교회 중앙 통로와 수랑이 교차하는 지점에 그려진 또 다른 천정화를 바라보기 위한 주 시점이다. 이탈리아 대형 교회들에서는 일반적으로 이 공간에 돔 형태의 지붕 구조물이 배치되지만, 성 이냐시오 교회에서는 실제의 돔 대신에 평평한 표면에 그려진 ‘가짜’ 돔이 배치되어 있다.
포초는 중앙 통로로 걸어 들어오는 신자들의 동선과 시각에 맞추어서 비스듬히 보이는 형태의 돔 내부를 묘사했다. 그 효과는 놀라울 정도지만, 원래 계산된 위치를 넘어서서 접근하게 되면 돔의 내부 모양이 오히려 어색해지는 결과를 낳는다.
포초는 나중에 회화와 건축에서의 선 원근법과 극장 무대화에 대한 이론서를 출판할 정도로 이 방면에 해박한 지식과 경험을 지니고 있었다. 성 이냐시오 교회 천정화는 그의 역량이 아낌없이 발현된 공간으로서, 서양 바로크 미술에서 연극적 효과와 시각적 체험이 얼마나 중요한 의미를 지니고 있었는지, 그리고 당시 종교 활동을 포함한 일상생활의 전 분야에서 이들이 얼마나 적극적으로 활용되었는지를 잘 보여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