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99호 2019년 10월] 문화 미술산책
미술산책 <21> 채찍질 당하는 그리스도
피에로 델라 프란체스카의 수학적 세계
미술산책 <21> 채찍질 당하는 그리스도
피에로 델라 프란체스카의 수학적 세계
글 조은정 (서양화87-91) 목포대 미술학과 교수
“기하학자들에 따르면 점은 면적이 없으며, 선은 넓이가 없는 길이일 뿐이다. 이들은 지적인 측면에서만 인지될 뿐 실제로는 보이지 않는다. 이 때문에 사람들이 눈으로 볼 수 있도록 원근법을 증명하려면 새로운 정의가 필요하다. 그래서 만들어 낸 정의는 다음과 같다. 점은 사람들이 눈으로 인식할 수 있는 최소한의 것이다. 선은 한 점이 다른 점까지 확장된 것이다. 그 선의 넓이는 점의 크기와 동일하다. 면은 선들에 의해서 에워싸인 넓이와 길이의 합이다. 면들에는 다양한 종류가 있다. 삼각형, 사변형, 사각형, 오각형, 육각형, 팔각형, 그밖에 더 많은 수의 다양한 각들로 이루어진 면들이 온갖 형상들에서 발견된다.”
위의 글은 15세기 이탈리아 르네상스 회화의 거장 피에로 델라 프란체스카(Piero della Francesca, 1416-1492)가 쓴 논문 ‘회화의 원근법에 대하여’의 첫 대목이자, 기원전 4세기 그리스 수학자 유클리드의 ‘기하학 원론’ 제1권의 정의들에 대한 대응이다. 화가이자 기하학자였던 피에로에게 수학적 엄정성은 타협이 불가능한 원칙이었다.
반면에 회화에서 구현해야 하는 시각적 효과는 기하학의 요소와 원리만으로는 해결할 수 없는 물리적 실체를 요구했다. 위의 첫 문단은 그가 고전 기하학의 추상적 개념들을 스케치와 구성, 채색이라는 현실적인 작업에 적용하기 위해서 얼마나 고심했는지 잘 보여준다.
이러한 노력이 극대화된 작품이 바로 ‘채찍질 당하는 그리스도 The Flagellation’(1455년경)이다. 이 패널화는 폭이 약 80센티미터에 불과하지만, 워낙 치밀하게 계산된 원근법적 효과 덕분에 책이나 모니터를 통해서 이 그림을 접하는 이들은 그 사실을 미처 눈치채지 못하곤 한다. 등장인물들의 무릎 정도에 맞추어진 소실점의 위치로 인해서 관람자들은 이 작은 화면 속의 인물들을 마치 거인들과 같이 우러러보게 된다.
화면에 바짝 나와서 서 있는 화려한 옷차림의 세 인물들 뒤로 정교한 격자무늬 바닥의 광장이 펼쳐져 있고, 열주랑 안쪽 저 멀리에는 채찍질을 당하는 그리스도와 세 명의 형리들이 서 있다. 안쪽 구석에는 빌라도가 권좌에 앉아서 이 장면을 바라보고 있다. 화면 내부의 모든 건축물들은 광장 바닥의 격자 선에 맞추어서 배치되어 있고, 정면이 화면과 평행을 이루고 있다.
너무나 명징해서 초현실적인 느낌마저 주는 이러한 구성은 피에로가 위의 선 원근법 논문에서 물체의 평면도와 입면도를 조합하여 입체와 삼차원적 공간을 재현하도록 했던 계산 방식의 구체적 예시이다. 아래쪽에서 올려다 볼 때 인물 두상이 어떻게 표현되어야 하는지, 원기둥과 사각형 입방체들은 어떻게 표현되어야 하는지 등, 선 원근법을 처음 접하는 15세기 르네상스 화가들이 맞닥뜨릴 현실적인 문제들에 대한 해답들을 담고 있는 교과서인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