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사보기

Magazine

[496호 2019년 7월] 문화 미술산책

<미술산책> 고대 에트루리아 유물

에트루리아의 여인들


에트루리아 귀족 여성의 석관. Seianti_Hanunia_Tlesnasa-1889 도판



<미술산책 18> 고대 에트루리아 유물


에트루리아의 여인들 


글 조은정 (서양화87-91) 목포대 미술학과 교수



고대 에트루리아인들이 어디에 기원을 두고 있는지에 대해서는 고대부터 현재까지 의견이 분분하다. 동방의 리디아인들이 배를 타고 움브리아로 이주해 와서 도시를 건설했다고 보는 견해로부터, 이탈리아에 본래 거주했던 토착민들이라는 주장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설들이 있다. 어느 쪽이 맞든지 간에 바다를 면한 중부 이탈리아 지역에 살고 있던 이 사람들은 동방 문화와 그리스 문화의 영향을 활발하게 받아들이면서도 자신들만의 문화를 화려하게 꽃피웠다. 


고대 사료 가운데 이들의 사회 풍습과 문화에 대해서 언급한 내용들 대부분은 고대 그리스와 로마 역사가들이 남긴 것들이다. 이 글들을 읽다 보면 에트루리아인들뿐 아니라 그리스와 로마인들의 사고방식과 관점들을 엿볼 수 있다. 로마 역사가들은 이들이 호전적이고 피에 굶주려 있으며 미신에 의지하는 성향이 강하다고 묘사했는데, 이러한 서술의 저변에는 에트루리아인 왕들의 통치에서 벗어나서 공화정 체제를 확립하고 이후 이탈리아 지역의 지배권을 장악하기까지 에트루리아인들과 지속적으로 벌였던 정치적, 군사적 투쟁의 흔적이 남아 있다. 보다 관심을 끄는 사례는 에트루리아인들의 가정생활에 대해서 언급한 기원전 4세기 그리스 역사가 테오폼포스이다. 그는 아내를 공유하는 것이 에트루리아 사회에서는 일반적인 풍습이라고 서술했다. 또한 에트루리아 여인들은 몸을 가꾸는 데 특별히 관심이 많으며, 운동을 자주 할 뿐 아니라 남자들과 함께 운동하는 일도 흔하다는 것이었다. 이들에게는 남들 앞에 나체로 나서는 것이 결코 부끄러운 일이 아니며, 남편이 아닌 외간 남자들과 침상을 공유한다고 했다. 특히 자신이 선택한 남자에게 잔을 건네어 축배를 제안하는 등 짝을 선택할 때 여성이 주도권을 쥔다는 것이었다. “이들은 매우 능숙한 술꾼들이며 아주 매력적이다”라는 것이 그의 결론이었다.


이러한 언급이 얼마나 신빙성이 있는지 현재로서 확인할 수는 없지만, 가부장적이고 남성 중심적인 문화에 익숙했던 동시대 그리스인들이 보기에 낯설 정도로 에트루리아 사회에서 여성들의 지위와 활동이 두드러졌던 것은 사실인 듯하다. 현재 남아  있는 에트루리아 유물들 가운데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하는 장례 부장품들과 무덤 장식 벽화들을 보면 이를 짐작할 수 있다. 에트루리아인들은 유골함과 관을 침상 모양으로 꾸미고 뚜껑에 고인이 침상에 기대어 누운 모습을 재현한 경우가 많은데, 단독으로 묘사되건 부부가 함께 묘사되건 간에 남녀의 비중에 차별이 없었다. 


결혼 예식용 침상에 함께 누워있거나 남편이 아내를 감싸 안고 있는 모습에서는 서로 간의 애정이 넘치게 묘사된 부부들, 그리고 베일과 장신구로 화려하게 꾸미고 술잔을 드는 등 당당한 자태로 재현된 여성들의 모습들은 동시대 고대 문명 전반에서 찾아보기 힘든 개방적인 분위기를 전해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