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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97호 2019년 8월] 문화 미술산책

미술산책 <19> 귀스타프 도레 작 ‘늙은 수부의 노래’

시와 그림, 음악에 대하여

미술산책 19. 귀스타프 도레 작
‘늙은 수부의 노래’ 시와 그림, 음악에 대하여

글 조은정 (서양화87-91) 목포대 미술학과 교수



사무엘 테일러 코울러리지의 시 '늙은 수부의 노래'를 표현한 판화가 귀스타프 도레의 삽화  





사무엘 테일러 코울러리지(Samuel Taylor Coleridge, 1772-1834)의 ‘늙은 수부의 노래 The Rime of the Ancient Mariner’(1798)를 처음 접한 매체는 사실 시집이 아니었다. 고등학교 재학 시절에 심취했던 헤비메탈 그룹 ‘아이언 메이든’의 노래였다.(아래 ‘Powerslave’ 앨범 이미지) 장장 13분이 넘는 이 대곡을 들으면서도 강한 비트와 절규하는 보컬의 음색에만 심취했을 뿐, 정작 가사의 내용이 무엇인지는 제대로 챙겨보지 않았다. 후렴구에서 계속 반복되는 노수부가 어쨌다는 것인지, 알바트로스가 무슨 의미를 가지고 있는지는 별 관심이 없이 넘어갔던 것이다. 나중에 가서야 이 곡이 18세기 말에 쓰인 시를 소재로 삼았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원작을 제대로 읽어 본 것은 나중에 미술사를 공부하면서였다. 근세 유럽 낭만주의 미술 작품들에서는 인간이 이성적으로 판단하기 힘든 초월적인 존재와 상황에 대한 묘사가 자주 등장한다. 그 중심에는 거대한 폭풍우와 장엄한 산맥, 얼어붙은 바다, 광활하고 눈부신 대기, 처연한 폐허와 황무지 등 우리가 정복할 수 없는 대자연이 자리하고 있다. 이를 지배하는 존재가 누구인지, 그의 의도가 무엇인지는 판단하기 어렵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에 맞섰다가 스러지거나, 매혹되어 이끌려갈 수밖에 없는 것이 인간의 숙명이다.

‘늙은 수부의 노래’는 호기롭게 먼 항해에 나섰던 젊은 선원이 자신의 배를 따라다니며 희망을 주던 신천옹 새를 화살로 쏘아 죽인 후 저주에 걸려서 바다를 떠돌다가 주사위 놀음을 하는 죽음과 그 배우자를 조우하고, 동료 선원들이 모두 죽음을 맞이했음에도 불구하고 홀로 떠돌다가 아름다운 물뱀과 천사들을 만나는 과정, 그리고 결국에는 은자를 만나서 속죄한 후 구원을 얻어서 고향으로 돌아와 젊은 결혼식 하객에게 자신의 이야기를 들려주는 내용이다. 이러한 줄거리 자체보다 더 강렬한 것은 한 문장, 한 문장마다 우리가 접하게 되는 수수께끼와 같은 상황들, 그리고 이러한 혼돈이 빚어내는 매혹적인 이미지이다.

“그 많은 아름다운 사람들! 이들은 모두 죽어서 누워 있었지만, 수천수만의 끈적끈적한 존재들은 여전히 삶을 영위해 나갔고, 나 또한 그러했다.”

한 세기 후에 프랑스의 유명한 판화가 귀스타프 도레(Gustave Dore)의 삽화는 코울러리지가 만들어낸 언어적 환상을 조형적으로 변환시켰다. 도레가 만들어 낸 환상과 공포는 훨씬 더 구체적이고 생생하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더 고착화되고 제한적이다.

반면에 두 세기 후에 대중음악 그룹 아이언 메이든이 만들어 낸 세계는 좀 더 직설적이고 명료하다. 어느 세계가 더 매력적인지를 판단하는 것은 관객의 몫이겠지만, 코울러리지가 만들어 낸 무한한 상상의 세계가 후대 예술가들에게 끊임없는 창작의 원천이 되고 있다는 사실이 경이롭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