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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01호 2019년 12월] 문화 미술산책

미술산책 <마지막회> 베누스와 마르스, 혹은 파르나소스

만테냐의 파르나소스
 
 
베누스와 마르스, 혹은 파르나소스
 
 

 

글 조은정 (서양화87-91) 목포대 미술학과 교수
 
 
예술가 후원 문화로 유명했던 르네상스 시대 이탈리아 사회에서 이사벨라 데스테(Isabella d’Este)는 두드러지는 인물이다. 페라라의 명문가 일원으로서 만토바 영주와 결혼한 이사벨라는 열성적인 예술 후원자였다. 예술에 대한 애정과 뛰어난 감식안을 지녔지만, 누구보다도 더 까다로운 주문자이기도 했다.
 
그녀가 결혼 직후부터 근 20여 년에 걸쳐서 꾸민 서재(Studiolo)는 부러움의 대상이었다. 원래의 계획은 레오나르도 다 빈치를 포함해서 당대 거장들의 작품을 총망라하려는 것이었으나, 성공하지는 못했다. 워낙 요구가 많은 데다가 화면 구성과 등장인물들과 동식물에 이르는 세세한 부분까지 관여하려 했는데, 작가들로서는 결코 달갑지 않은 일이었을 것이다. 그러나 안드레아 만테냐와 페루지오 등은 이사벨라의 요구를 받아들였다. 이렇게 해서 제작된 첫 번째 작품이 바로 만테냐의 ‘파르나소스(Parnassos)’(1497)이다.
 
파르나소스는 아폴론 성소로 유명한 그리스 중부의 산으로서, 로마 시인들 사이에서 영감의 원천이었다. 만테냐의 거대한 회화는 고대 신화와 근대 문학의 알레고리를 망라하고 있다. 화면 중앙에는 아홉 명의 무사이가 즐겁게 춤을 추고 있다. 이들 양쪽으로는 페가수스와 함께 서 있는 메르쿠리우스와 리라를 연주하고 있는 아폴론이 보인다. 이들 둘은 화면상으로는 멀리 떨어져 있지만 사실은 구도나 주제 면에서 상응하는 존재들이다. 화면에서 벌어지는 상황을 지키고 있는 존재들이기 때문이다.
 
이들은 페가수스와 무사이를 통제할 뿐 아니라 베누스와 마르스가 벌였던 불륜의 연애를 암묵적으로 승인했던 이들이다. 이 두 연인은 파르나소스 산 정산에 침대를 옆에 두고 서 있는데, 화면 왼쪽의 원경에는 베누스 여신의 배신당한 남편인 불카누스가 분노에 휩싸인 채 대장간에서 복수의 그물을 짜고 있다.
 
이사벨라는 이 작품을 통해서 어떤 메시지를 방문객들에게 전달하고자 했던 것일까? 무엇보다도 그녀 자신에게는 어떤 의미가 있었던 것일까? 일반적인 해석은 육욕을 이겨내는 정신적인 사랑의 미덕, 만토바 궁정에 꽃피우는 예술에 대한 찬미를 암시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 그림을 보는 이들이라면 누구나 관능적이고 암시적인 기운을 부정할 수 없을 것이다. 산꼭대기에 의기양양하게 서 있는 두 연인이 이사벨라와 남편 곤차가 후작을 암시한다는 해석이 지배적이지만, 아무리 이들이 사랑의 여신과 전쟁의 신이라고 해도 불륜의 주인공들이라는 사실에는 변함이 없기 때문에 더욱 의문이 든다. 르네상스 시대 미술 작품들 중에는 이처럼 개인적 취향과 사회적 메시지를 알레고리와 도상들 뒤에 숨겨두고 있어서, 보는 사람들로 하여금 보물찾기나 수수께끼 풀이와 같은 지적 유희를 즐기게 해 주는 경우가 많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