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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86호 2018년 9월] 문화 미술산책

가톨릭 성당에서 만난 비잔티움 성상화

미술산책8. 산타마리아 델라살루테 성당 중앙제단화



미술산책8. 산타마리아 델라살루테 성당 중앙제단화

가톨릭 성당에서 만난 비잔티움 성상화


글 조은정(서양화87-91) 목포대 미술학과 교수


그리스 성상화 박물관을 보기 위해서 베네치아를 방문했던 것은 2008년도 겨울이었다. 비수기 베네치아는 한산했다. 운하에는 관광객을 태운 곤돌라 사공들 대신에, 등교하는 아이들을 배로 바래다주는 아버지들이 간혹 보였다. 발길 닿는 대로 거닐다가 산 마르코 광장에서 마주보이는 대 운하 건너편 푼타 델라 도가나까지 가게 되었다. 이곳에는 건축가 롱게나(1598-1682)가 설계한 웅장한 대리석 돔 지붕의 산타 마리아 델라 살루테 성당이 있다. 관광 블로그나 책자에는 베네치아에서 가장 인기가 많은 성당이라고 소개하고 있지만 필자가 방문했을 때는 미사가 진행 중임에도 불구하고 거의 아무도 없었다. 간혹 길 잃은 관광객이 들어왔다가도 뼛속까지 스며드는 한기를 이기지 못하고 서둘러 나가버렸다.


이 성당 중앙 제단화는 베네치아에서 가장 중요한 성물 중 하나이다. 12세기경에 콘스탄티노플에서 제작된 유서 깊은 비잔티움 성상화이다. 엄숙한 표정의 성모가 근엄한 아기 예수를 안고 있는 패널화는 17세기 중엽까지 베네치아 령 크레타의 한 정교회에 모셔져 있던 것이었다. 화가들의 수호성인인 성 누가가 직접 그렸다는 전설이 전해지는데, 크레타에 있을 때부터 가뭄과 질병을 물리치는 기적으로 명성이 높았다. 1669년 베네치아가 투르크인들에게 크레타에 대한 지배권을 잃게 되었을 때, 성인의 유골을 비롯해서 귀중한 성물들을 본국으로 옮겨갔는데 이 성상화도 그 중 하나였다. 이 성당 자체가 1629년 창궐했던 흑사병을 성모의 가호로 물리치기를 기원해서 설립된 것이니만큼 이 기적의 성모자화가 이곳에 모셔진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이 자그마한 패널화를 꾸미기 위해서 위풍당당한 성 모자에게 쫓겨나는 흑사병(늙은 여인)과 탄원하는 베네치아(무릎 꿇은 여인)를 묘사한 화려한 조각 군상 프레임이 특별히 제작되었다.


1631년 흑사병이 물러난 데 대한 감사로 갓 착공된 성당의 임시 골조에서 개최된 기념제는 현재도 계속되고 있다. 매년 11월 축제일에는 대운하 위로 도제 궁전이 위치한 산 마르코 광장과 성당을 잇는 배들이 줄을 짓고, 자주색 휘장과 수많은 촛불들로 둘러싸인 대 제단 중앙의 성 모자에게는 화려한 금관이 덧씌워진다. 신자들뿐 아니라 시민들과 관광객들로 도시 전체가 떠들썩한 날이다. 그러나 십년 전 그날만큼은 성당과 주변 모두 한적했다. 거무스름하게 퇴색된 성 모자상은 장대하고 극적인 바로크 양식의 장식물들에 둘러싸인 채 조용히 그 자리에 있었다. 넘쳐나는 관광객들로 인해서 몸살을 겪은 나머지 베네치아 시민들이 반대 시위까지 하고 있다는 소식을 들으면, 몇 년 전 이 고즈넉한 물의 도시에서 오래된 비잔티움 성상화를 마주했던 기억이 새삼스럽기만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