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84호 2018년 7월] 문화 미술산책
미술산책<6> 허리 부러진 ‘코레’의 비극
리옹과 아테네의 코레
미술산책<6> 리옹과 아테네의 코레
허리 부러진 ‘코레’의 비극
글 조은정(서양화87-91) 목포대 미술학과 교수
프랑스 리옹 박물관(위)과 그리스 아크로폴리스 박물관(아래)이 소장한 코레(Kore) 상.
그리스의 박물관들은 대부분 관람객들의 사진 촬영에 관대하지만 아테네 아크로폴리스 박물관만큼은 예외이다. 이 박물관 입구의 아스클레피온 유적 발굴품 전시실과 1층의 아케익기 전시실만큼은 엄격하게 사진 촬영이 금지되어 있다. 그만큼 이 유물들은 특별한 의미를 지닌다. 특히 아케익기 봉헌 조각실의 탁 트인 공간에 들어서는 이들은 자연채광 속에 우뚝 서 있는 쿠로스와 코레 상들 앞에서 거의 종교적인 경험을 하게 된다. 물론 경이로운 첫 인상을 극복하고 나면 비슷비슷한 모습 앞에서 대강 훑어보고 지나치게 마련이다.
그 수많은 아케익기 조각상들 가운데 하나가 ‘리옹의 코레’이다. 사실 아크로폴리스 박물관에 소장되어 있는 원본 조각상은 얇은 주름치마에 덮여있는 허벅지와 엉덩이 뿐이다. 하반신 일부분만 남아있음에도 불구하고, 경직된 가운데 인체의 생동감과 사실성을 포착하기 시작했다는 점에서 아테네 지역 조각양식의 발전 방향을 잘 보여주는 중요한 유물이다. 프랑스 리옹 박물관에는 비슷한 시기에 속하는 여성상의 상반신 부분이 소장되어 있다.
과거 ‘마르세이유의 아프로디테’로 불린 이 조각상은 17세기 말 혹은 18세기 초 그랜드 투어 시대에 프랑스 귀족이 수집한 것으로 추정되는데, 아크로폴리스 코레상과는 워낙 상반된 표현 양식을 지니고 있기 때문에 ‘아테네 지역과 멀리 떨어진, 그리스 세계의 변경 지역’에서 제작된 것이라는 의견이 있었다.
이 두 조각상들이 실은 단일한 조각상의 일부라는 것을 밝혀낸 사람이 영국 고고학자 험프리 페인(Humfry Payne, 1902-1936)이다. 페인은 1934년 경 아크로폴리스의 조각상들에 대한 사진 카탈로그를 저술하던 중에 ‘마르세이유의 아프로디테’에 관심을 갖게 되었다. 그는 사진을 검토한 후에, 곧 리옹 박물관에 편지를 보내서 석고 복제본을 요청했다.
프랑스에서 그리스로 보내진 소포가 세관을 통과하기까지 열하루 동안 초조하게 기다린 끝에 그는 곧바로 아크로폴리스 박물관으로 달려가서 리옹의 석고 복제본 상체를 아테네의 대리석 하체 위에 올려보았다. 결과는 놀라웠는데, 천 주름 하나하나까지 정확하게 이어졌던 것이다. 서로 다른 박물관에 떨어져있을 때는 그토록 달라보였던 양식도 동일했다. 실물을 직접 보지도 않고 두 조각상들의 연관성을 확신했던 페인의 천재적 감각은 지금도 경이롭기 그지없다. 현재 아크로폴리스 박물관의 조각상 명판에는 페인의 기여를 알리는 설명이 간략하게 기재되어 있으며, 상체는 복제품으로 합체되어 있어서 원래 조각상이 어떤 모습이었는지 알 수 있도록 했다. 그렇지만 이 그리스 여인상은 여전히 절반은 그리스에, 그리고 절반은 이역만리에 따로 떨어져 있는 운명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