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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83호 2018년 6월] 인터뷰 화제의 동문

역사 책을 다 모았습니다, 서촌에 문 연 특별한 서점

백영란 역사책방 대표


역사 책을 다 모았습니다, 서촌에 문 연 특별한 서점
백영란 역사책방 대표





IT업계 임원 퇴직 뒤 변신
“커피마시며 책볼 수 있어요”


백영란(국사83-87) 동문의 ‘역사책방’은 찾아가는 길부터 그윽한 정취가 느껴졌다. 광화문 육조거리를 등지고 경복궁 서쪽 담장을 따라 걸으면 문무백관이 드나든 영추문이 나온다. 곁눈질한 골목 안쪽엔 옹기종기 모인 한옥. 삼삼오오 전통 한복을 차려입은 이들이 스쳐간다.

이 길의 한편에 지난 5월 역사책방이 들어섰다. 백 동문이 다니던 회사를 퇴직하고 차린 곳이다. 그는 역사를 전공했지만 한국소프트웨어진흥원, NHN, LG유플러스 등 IT 분야에 내내 몸담아왔다. 마지막 직장인 LG유플러스에서는 전자결제 사업을 주도하면서 여성 임원으로 고속 승진해 화제가 됐다. 책방을 연 것은 아날로그와 인문학의 세계로 ‘회귀’하는 동시에 독립서점 경영에 ‘도전’하는 일이었다. 지난 5월 25일 통의동 역사책방에서 만난 백 동문에게 오픈 소감을 물었다.

“정신이 없습니다(웃음). 매일 새롭게 할 일이 생각나서요. 무슨 책을 더 들여놓을지, 공간은 어떻게 꾸미고 책에는 어떤 설명을 붙일지…. 잡념 생길 틈 없이 하루하루 보내고 있어요.”

40평 규모의 책방에 3,000여 권의 역사 관련 서적이 빼곡했다. 각종 매체의 책 리뷰를 샅샅이 훑고 지인에게도 추천 받아 1년여간 가려낸 책들이다. 특히 “대형 서점에서 찾기 힘든 책들, 잘 연구되지 않는 분야의 책들을 열심히 모았다”고 했다.

“유라시아, 서남아시아, 아프리카 세 지역사를 다룬 책에 각별히 신경 썼어요. 책을 팔아 보니 아프리카와 서남아엔 아직은 관심이 크지 않은 듯해요. 반면 유라시아 쪽엔 굉장히 관심이 높단 걸 알게 됐죠. 남북 관계가 개선되면 유라시아 지역이 우리에게 새로운 기회가 될 수 있어요. 그 가능성에 일찌감치 주목하는 것 같아요.”

같은 맥락에서 북한 관련 서적도 부쩍 잘 나가는 책이다. 역시 평화나 안보 등 담론 위주의 책보다 경제 개발 등 실용적인 주제의 책이 더 인기다. ‘과연 팔릴까’ 싶은 책도 비교적 눈길을 받기 쉽다는 것이 독립서점의 장점. 반신반의하면서 벽돌처럼 무거운 미국법 역사 관련 책을 들여놨는데 금세 주인이 나타나더란다.

“역사책방이 온라인 서점이나 대형서점과 완전히 다른 경험을 제공해야 한다고 생각해요. 결국은 인간적인 터치와 큐레이션이 핵심이죠. 다른 곳에선 하기 힘든 책 질문을 마음껏 할 수 있고, 그것에 좋은 답을 줄 수 있는 책방, 오랫동안 읽힐 수 있는 책이 있는 곳으로 만들려고 합니다.”

책방 손님들은 가끔 그에게 “역사를 전공했냐”고 묻곤 한다. 백 동문은 모교 국사학과에서 학사와 석사학위를 받고 경제학으로 방향을 틀어 미국 UCLA에서 경제사 연구로 박사학위를 받았다. 모교 재학 시절엔 마르크시즘에 푹 빠져 있었는데 미국에서 자본주의 경제의 정수를 배웠다.

“여러 면에서 양극단을 오간 셈이죠. 마치 헤겔의 정반합처럼, 서로 다른 경험이 인간적으로 성숙하게 해줬다는 생각도 들어요. 서로 다른 입장이더라도 대화를 단절하지 않고 함께 얘기해야 한다는 생각을 늘 해요. 가령 역사에는 진보와 보수, 고대사나 식민사관을 두고 대립하는 견해가 있죠. 역사책방이 그런 상반된 입장들이 뜨거운 대화를 나누는 장소가 되길 꿈꿔요.”

대학 때 “소주와 짬뽕 국물을 놓고 격하게 논쟁했던” 동기며 선후배들과는 지금도 돈독하다. “맘이 약한 탓에” 국사학과동창회장까지 지냈다. 먼저 독립서점을 낸 동기 정치헌(국사83-87) 최인아책방 대표는 ‘책 리스트부터 만들라’며 금같은 조언을 아끼지 않았고, 신병주(국사83-87) 건국대 교수와 배기찬(동양사학82-86) 전 청와대 동북아비서관, 한홍구(국사78-84) 성공회대 교수 등은 역사책방의 강연 프로그램 ‘플랫폼12’ 강연자로 흔쾌히 나섰다.

끝으로 책 추천을 부탁하자 중앙아시아사의 대가인 김호동(동양사학72-79) 모교 동양사학과 석좌교수의 책 세 권을 꺼내왔다. ‘아틀라스 중앙유라시아사’는 입문용으로, ‘몽골제국과 세계사의 탄생’, ‘근대 중앙아시아의 혁명과 좌절’은 좀더 깊이 알고픈 사람에게 추천했다.

“책방을 준비하면서 이런 연구자가 계시단 걸 알고 놀랐어요. 제국주의 국가들은 지배와 침략을 목적으로 여러 나라에 대해 인류학적 연구 성과를 축적했지만 우리나라는 소위 ‘잘 사는 나라’ 외의 연구가 드물거든요. 얼마나 힘들게 공부하셨을까 싶어요. 오직 연구를 위해 몽골어, 만주어 등 각 나라 언어를 배우신 것도 대단하죠. 많은 분들이 읽어보셨으면 좋겠습니다.”

역사책방은 책 판매뿐만 아니라 공간 대여와 매주 강연 행사도 진행한다. 카페 공간이 있어 커피와 와인, ‘책맥’을 즐길 수 있고 문화 회식 장소로도 인기가 좋다. 영추문 옆, 정부서울청사 창성동 별관 맞은편으로 기억하면 찾기 쉽다. 매일 오전 10시 30분부터 오후 10시까지 연다.

문의: 02-733-8348
역사책방 홈페이지: https://historybooks.modoo.at/

*카카오톡 플러스 친구에서 "역사책방" 검색 후 친구 등록을 하면 책방 소식과 강연 안내 및 참여 방법을 들을 수 있다.

박수진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