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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57호 2016년 4월] 인터뷰 화제의 동문

국경없는 과학기술자회장 모교 윤제용 교수

“소외된 인류 90% 돕는 착한 엔지니어들”



국경없는 과학기술자회장 모교 윤제용 교수


“소외된 인류 90% 돕는 착한 엔지니어들”


‘적정기술’로 경제빈국 지원 앞장
실천하는 물분야 환경기술 전문가





2009년 설립한 ‘국경없는 과학기술자회’는 과학기술 전문 봉사 단체다. ‘국경없는 의사회’가 필요한 곳이면 어디든 찾아가 의술을 펼치듯, 국경없는 과학기술자회는 ‘적정기술’이라는 이름의 과학기술을 국내는 물론 세계 곳곳의 기술 소외계층에 베푼다. 현재 ‘물 전문가’인 모교 화학생물공학부 윤제용(공업화학80-84) 교수가 회장으로 봉사하고 있다.


지난 3월 23일 연구실에서 만난 윤 동문은 “최근 정부 차원에서도 과학기술을 통한 공적개발원조(ODA)를 국정과제로 내세우면서 적정기술에 대한 논의가 활발하다”고 말했다. 국경없는 과학기술자회가 지난 2013년부터 미래창조과학부의 지원을 받아 캄보디아에 운영중인 적정기술센터도 과학기술 ODA의 일환이다. 그 외에 정수와 하수 처리 등 물 관련 기술을 비롯해 에너지, 농업, 바이오, ICT 등 다양한 분야에 걸쳐 개발도상국을 돕고 있다. 적정(適正)이라는 명칭처럼 “선진국의 시혜적 입장이 아닌 수혜자의 입장에서 가장 절실하고, 현지 환경에 적합한 기술이 무엇인지 파악해 돕는 것이 중요하다”는 그의 설명이다.


윤 동문이 개발한 휴대용 염소발생장치는 적정기술의 좋은 예다. 커피포트 모양의 장치에 어디서나 쉽게 구할 수 있는 소금과 물 1리터 정도를 넣고 작동하면 500리터 물탱크 하나를 소독할 수 있는 고농도 염소 소독제가 만들어진다. 간단한 장치지만 이조차 없는 곳에서 한 해 150만명이 오염된 물을 마시고 수인성 질병으로 사망한다. 적정기술이 지닌 ‘따뜻한 기술’의 힘은 이렇듯 과학기술의 사각지대에 놓인 인류의 90%를 바라보는 데서 시작한다.


많은 과학기술자들이 뜻을 같이하고 있지만 비정부단체다 보니 재원이 넉넉지는 않다. 현지 봉사자들을 통해 기술 요청을 받고, 왕래하는 인편을 통해 현지 조사를 하는 식으로 비용을 절감한다. 보급한 시설의 지속적인 유지 보수도 중요하기에 현지와 메신저로 소통하며 관리하고 있다. 수백여 명의 후원자들은 든든하고 고마운 존재다. iCOOP 생활협동조합에서는 조합원들이 구매한 생수 한 병당 30원씩 매년 7~80만병에 해당하는 금액을 기부해오고 있다. 협회는 이렇게 모인 재원으로 캄보디아의 유치원과 고아원 등에 급수 시설을 공급하고 국내 청소년과 대학생을 대상으로 적정기술 교육 프로그램도 운영한다. 젊은 세대에 대한 적정기술 교육은 윤 동문이 특히 역점을 두는 부분이다.


“적정기술에는 ‘어떤 과학기술을 할 것인가, 어떤 과학기술자가 될 것인가’라는 비전이 담겨 있습니다. 과학을 공부하는 젊은이들에게 ‘이 공부를 통해 여러 사람들에게 도움이 되고 싶다’는 강력한 동기를 부여해주죠. 우리 사회에 꼭 필요한 창의적이고 융합적인 엔지니어를 길러내는 교육입니다.”


외국대학의 경우 많은 곳에 적정기술 관련 교육이 활성화돼있다. MIT에 정규 과목으로 개설된 D-Lab이 대표적이다. 모교에서는 적정기술연구센터가 적정기술 연구 활동과 교육을 담당한다. 정규 교과목은 없지만 글로벌사회공헌단을 통해 매 방학마다 모교 적정기술을 보급하는 해외 봉사활동 프로그램도 진행한다. 윤 동문은 “적정기술 활동에 대한 서울대 학생들의 열정이 뜨겁다”며 흐뭇함을 감추지 않았다.


“이런 활동에 목말랐던 학생들이 참 많아요. 자발적으로 모여서 공부하고, 적극적으로 아이디어를 제안하는 모습을 보면서 바로 우리가 기대하던 젊은 학생들의 모습이란 생각이 들었죠. 모교가 추구하는 ‘선한 인재’상과도 부합하고요. 이런 성과가 서울대만의 것이 아니라 다른 주요 대학들로 적정기술 교육을 확산시키는 출발점이 됐으면 합니다.”


윤 동문은 물 분야 전문가이자 실천하는 환경기술 전문가로 활동해왔다. 환경오염 이슈가 한창이던 80년대에 학창시절을 보내고 환경공학 전공을 선택, 모교에서 석사까지 마친 후 미국 노스캐롤라이나주립대에서 석사학위, 뉴욕주립대에서 박사학위를 받았다. 아주대 교수로 재직하던 90년도에는 수돗물 오염 사건사고가 화제였다. 그는 정수장 개선에 관한 연구와 관련 법 제정 등에 앞장서며 오늘날 나름대로 개선된 수돗물을 만드는 데 일조했다. 그런 그이기에 물 문제를 겪는 개발도상국에 해줄 일이 더욱 많다.


윤 동문은 최근 적정기술학회를 설립했다. 두 단체의 회장을 맡아 힘에 부치지만 안정될 때까지 이끌어가는 것이 목표다. 은퇴한 엔지니어들이 과학기술나눔 활동에 참여할 수 있는 프로그램도 계획 중이다.


“전 농담 삼아 이런 일들을 하면 정년퇴직을 하더라도 심심하거나 우울해질 새가 없다고 말합니다. 다른 사람들을 위한 일이라지만, 실제로 혜택을 보는 사람들은 무엇보다 참여하는 본인이라고 생각해요. 모쪼록 이런 나눔활동이 널리 보급돼서 우리 사회가 밝고 건강하게 성장하는 데 많은 도움이 됐으면 좋겠습니다.”


<박수진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