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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64호 2016년 11월] 인터뷰 화제의 동문

정무웅 인도네시아동창회 감사

10년간 총동창신문 인도네시아 동문들에게 배달


10년간 총동창신문 인도네시아 동문들에게 배달

정무웅 인도네시아동창회 감사


현지 120명에 빠짐없이 발송
“동창회 일원 깨닫게 해 감사”



“총동창신문의 기사가 인터넷으로도 서비스 되는 것은 이미 모든 회원들이 알고 있습니다. 그러나 업무에 바쁘다 보면 잘 열어보지 않게 되며 열어본다 해도 제목만 대강 읽는 경우가 많죠. 종이신문을 직접 받으면 다릅니다. 좀 더 꼼꼼하게 기사를 읽게 되고 중요한 기사는 몇 번 더 읽게 되며 심지어는 광고도 재미있어요. 종이신문을 받아 들었을 때 서울대인이라는 자각과 함께 총동창회에 대한 감사의 마음이 듭니다.”


코린도 장학재단 이사장 겸 인도네시아 총동창회 감사인 정무웅(상학60-64) 동문은 최근 10년 동안 현지 동문 120명에게 본지를 발송해왔다. 정 동문은 신문 120부를 받을 때마다 편집팀에 늘 잘 받았다는 감사 메일을 보내온다. 본회에서 매월 15일경 신문을 발송하면 인도네시아까지 꼬박 2주가 걸린다. 정 동문은 그렇게 배송 받은 신문을 다시 현지 회원들의 주소를 일일이 확인하고 우표를 붙여 재발송하고 있다. 인도네시아 우편시스템은 한국과 큰 차이가 없지만, 수준이 열악해 배송 소요시간이 훨씬 길다. 오래 기다려 받은 동창신문인 만큼 정 동문은 꼼꼼히 기사를 챙겨 읽는다.


“1면 사진을 제일 먼저 보고 각 지면의 톱기사를 정독합니다. 특히 관악춘추를 관심 있게 읽어요. 현직 중견 언론인들의 관록이 묻어나는 글들이라 늘 감명 깊습니다. 한 식구들이지만 냉철한 관점에서 모교와 모교가 나아가야 할 방향에 대해 짚어 주는 것 같아요.”


장학사업에 봉직하는 정 동문은 본회의 장학사업에도 주의를 기울인다. 장학금 총액이 얼마인지 장학금 수혜자가 몇 명인지 확인하는 것은 물론 지면 하나를 빼곡히 채운 후원자와 수혜자 명단을 자세히 뜯어본다. 본지 인사동정 면을 통해 선후배 동기들의 소식을 접하고 전화로나마 축하와 격려의 인사를 전하기도 한다.


아쉬운 점도 없진 않다. 정 동문이 인도네시아 총동창회 감사로 활동하고 있는 만큼 해외 동창회와 국내 총동창회 간에 보다 긴밀한 협조체제가 구축되기를 희망하고 있었다.


“제가 해외에 거주해서 그런지 해외지부 소식이 늘 기다려지는데, 해외 동창회 관련 기사는 그리 많지 않아 조금 안타깝습니다. 그래도 지난 10월호에는 중국총동창회와 미주동창회 뉴잉글랜드지부 소식을 접할 수 있어 반가웠습니다. 해외동창회 회장 및 총무와 네트워크를 더 강화해서 꾸준히 해외지부 소식이 전해졌으면 합니다.”



정무웅 코린도장학재단 이사장(오른쪽)이 인도네시아 현지 장학생에게 장학증서 수여 후 악수를 하고 있다.



인도네시아 총동창회는 1970년대부터 결성되기 시작했다. 초기에는 단대 별로 모이다가 1980년대부터 총동창회로서 출범했다. 회원 수는 1970년대에 60명으로 시작해 1990년대에 100명을 넘어 현재는 140여 명에 이르고 있다. 현지 총동창회 행사로는 상반기에 골프 시합을, 연말에 골프와 정기총회를 개최한다. 정기총회 때는 동문 가족들이 모여 만찬을 즐기고 회의를 하며 골프 시상과 함께 다채로운 장기를 선보인다.


“연락이 잘 안 돼서 함께 모인 적은 없지만 모교에서 수업하고 돌아온 인도네시아 국적 동문이 51명에 이르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그 동문들도 저희 동창회에 가입시켜서 언젠가 한 번쯤은 한국-인도네시아 합동 동창회 모임을 개최하고 싶습니다.”


코린도 장학재단 이사장으로서 2012년 ‘대교눈높이교육상’을 수상한 정 동문은 자카르타 한국국제학교가 국제적으로 가장 큰 한인학교로 성장하는 데 공헌했다. 상금으로 받은 1만 5,000달러를 자카르타 한국국제학교의 발전기금과 코린도 장학재단의 장학금으로 전액 기부하기도 했다.


1971년 3월 당시 건설회사인 삼환기업의 주재원으로 인도네시아에 파견됐던 그는 1985년 현지 법인인 코린도 그룹으로 이직하면서 인도네시아 국적을 취득했다. 그룹 내에서 영업·구매 사업본부장 및 목재사업 부사장 등 요직을 수행하다 정년을 마치고 장학재단을 맡게 됐다.


나경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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