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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69호 2017년 4월] 인터뷰 화제의 동문

은빛 인생 : 김종훈 한미글로벌 회장 69세 건축학 박사…

12년 연속 ‘대한민국 100대 CEO’



김종훈 한미글로벌 회장
69세 건축학 박사…"44년 건설사업관리 노하우 물려줘야죠”





김종훈(건축69-73) 한미글로벌 회장은 지난 2월 69세의 나이에 모교를 ‘졸업’했다. 1973년 건축학과 졸업 이후 모교 대학원 입학 14년 만에 건축학 박사학위를 받은 것. 전기 학위수여식에서 주황색 후드가 달린 공학박사 졸업가운을 입은 김 동문의 모습을 볼 수 있었다. 고희를 앞둔 기업 CEO가 오랜 노력 끝에 학사모를 쓰게 된 얘기가 궁금해 인터뷰를 청했을 때, 그는 논문을 쓰느라 미뤄뒀던 히말라야 산맥 트레킹 중이었다. 돌아온 그를 3월 28일 삼성동 사무실에서 만났다.


“44년의 실무 경험을 논문으로 남기게 돼 기쁩니다. ‘이 나이에 굳이 써야 하나’ 포기하고 싶은 때도 많았죠. 그럴 때마다 본 게 논문을 써야 하는 이유를 적어둔 메모였습니다. 내가 받은 혜택과 그동안 쌓인 지식을 후학과 회사 직원들, 업계 종사자들과 나누고 싶다는 의지를 적어두고 되새겼어요.”


김 동문의 박사논문 주제는 ‘시공 전 활동이 순추천고객지수에 미치는 영향’. 계획·설계·발주로 구성된 시공 전 활동은 한미글로벌의 주업종인 건설사업관리(이하 CM)의 핵심이다. 발주처를 대신해 공사가 끝날 때까지 건설 전 과정을 관리하는 CM은 불필요한 비용을 없애고 안전과 공사 기간을 준수할 뿐만 아니라 공사 과정에서 분쟁을 줄여주는 효과가 있다.


김 동문은 1996년 한미글로벌(전 한미파슨스)을 설립하고 처음으로 CM을 국내에 도입했다. 또 건설업에서는 드물게 고객충성도를 평가하는 ‘순추천고객지수’를 경영에 활용해왔다. 한미글로벌의 순추천고객지수는 세계적인 명품업체 수준인 55점. 적어도 국내에서는 김 동문만큼 경험 많은 이가 없을 주제를 택한 것이다.


“국내에선 시공 전 활동에는 소홀하고 공사 단계에만 포커스를 맞추는 경향이 있어요. 공사에 들어가면 의사결정 측면에서는 상당히 늦은 겁니다. 뭔가 바꾸려 해도 많은 비용이 들고요. 시공 전 활동을 잘 해야 건설 프로젝트가 성공하고, 충성도 높은 고객을 만들 수 있다는 가설을 입증해 보였습니다.”


학업 외에도 서울대와 맺은 인연은 남다르다. 1987년 삼성물산 재직 당시 처음 현장소장으로 발령받은 곳이 관악캠퍼스 호암생활관 공사. 지금의 호암교수회관과 숙소 두 동을 짓는 소규모 프로젝트였지만 “내 집보다 더 정성을 쏟았다”고 돌아본다.


“숙소동 외벽은 일반 시멘트벽에 페인트칠하기로 돼 있었지만 현장에서 아낀 예산으로 적벽돌을 쌓아올려 업그레이드했죠. 내부에 들어갈 가구와 가전제품까지 직접 책임졌어요. 열심히 지은 덕에 서울대 건물 중에서도 좋은 평가를 받았던 것으로 기억합니다.”


이후 ‘세계에서 가장 높은 쌍둥이 빌딩’인 말레이시아 페트로나스타워 등 국내외 굵직한 건설현장을 맡으면서 ‘초고층 전문가’로 명성을 쌓았다. 최근 완공한 롯데월드타워는 상암 월드컵경기장과 함께 한미글로벌이 수주한 대표적인 건물이다. 안전성과 관련해 우려도 있었지만 일각에서는 깐깐하기로 소문난 한미글로벌이 감리와 CM을 맡았다는 점에서 믿음을 보내기도 했다. 미국 선진 건설업체인 파슨스와 합작으로 도입했던 CM을 이제는 수출하는 입장이다.


12년 연속 ‘대한민국 100대 CEO’
최근 책 ‘완벽을 향한 열정’ 펴내 


얼마전 김 동문은 임원은 5년마다, 직원에겐 10년마다 주어지는 안식휴가를 다녀왔다. 한 달은 건축과 동기가 운영하는 설악산의 한 숙소에 칩거하면서 논문에만 전념했다고. 파격적인 자녀 학비 지원과 자기계발 지원 등 ‘행복경영’으로도 이름난 그의 회사다. ‘훌륭한 일터상’에 수 차례, 12년 연속 ‘대한민국 100대 CEO’에 선정됐다.


“직장은 구성원들에게 단지 일하고 돈만 받아 가는 곳이 아니라 많은 시간을 보내는 소중한 장소입니다. 직장에서 행복하지 않으면 인생이 행복할 수 없어요. 창립때부터 구성원 중심의 회사를 만들겠다는 원칙을 변치 않고 지켜오고 있습니다.”


‘행복경영’과 함께 고수해온 원칙이 기업의 사회공헌이다. 사내 봉사활동 문화에 더해 복지재단 ‘따뜻한 동행’을 설립하고 장애인 복지사업을 펼쳐왔다. 직원이 월급의 1%를 내면 회사가 두 배를 보태 전 직원 급여의 3%를 기부하고 있다. 재단 내에는 ‘시니어 건축사무소’를 두고 60세 이상의 은퇴한 건축가들에게 사회복지시설의 신축과 개축 등을 맡겼다. “다른 분야의 시니어들도 규합해서 바람직한 세컨드 라이프의 터전을 마련하고 싶다”는 포부다.


“은퇴 후 사회공헌에 여생을 바치겠다는 각오를 여러 번 밝혔어요. 지금도 제 시간은 비즈니스에 50%, 나머지 50%를 봉사활동에 씁니다. 최고의 자리에 오른 이들이 사회에서 얻은 지적자산을 돌려주자는 모토로 ‘CEO 지식나눔’을 만들고 대학생과 벤처창업가 등에게 멘토링과 강의를 하고 있어요. 탈북민, 저출산 문제, 통일 등 사회 문제에도 관심이 많은데, 앞으로 힘 자라는 데까지 봉사하면서 살고 싶습니다.”


김 동문은 건설산업비전포럼 공동대표와 공학한림원 원로회원이다. 최근 낸 저서 ‘완벽을 향한 열정’엔 박사논문의 틀에 담지 못한 그의 인생 이야기가 가득하다. 개인 홈페이지(www.kimjonghoon.com)를 통해서도 활동과 생각을 정리하고 있다.



박수진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