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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50호 2024년 1월] 인터뷰 화제의 동문

60대 이상 여성에게 딱 좋은 운동용 레깅스 만들었어요

이소현 박사과정생

60대 이상 여성에게 딱 좋은 운동용 레깅스 만들었어요

이소현 (대학원21-23)
박사과정생


연령에 따른 신체 특징 반영
국제의류학회 최우수 논문상


작년 11월 미국 볼티모어에서 열린 국제의류학회에서 이소현(대학원21-23) 모교 의류학과 박사과정생이 석사 최우수 논문상을 받았다. 한국·미국·영국·홍콩·캐나다 등 그해 갓 석사 및 박사 학위를 취득한 의류학도들이 모여 600여 편의 연구를 발표하는 자리에서 논문의 우수성을 인정받은 것. 이 동문은 노년층 여성을 위한 인체공학적 스포츠웨어 설계 방법을 개발했다. 작년 12월 26일 관악캠퍼스 경영대 카페에서 이소현 동문을 만났다.

“졸업 논문을 쓸 즈음 어머니가 은퇴를 하셨습니다. 건강관리 겸 다이어트를 위해 운동을 시작하려고 하셨죠. 어떤 운동이 좋을지 또 어떤 운동복이 적당할지 함께 고민하면서 60대 이상 여성 체형에 딱 맞는 레깅스가 없다는 걸 알게 됐어요. 요가·필라테스·줌바 같은 운동이 고령층 여성에게 권장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정작 그런 운동을 할 때 주로 입는 레깅스는 20·30대 젊은 여성들 체형에만 맞춰져 있었죠.”

‘운동만 열심히 하면 되지 뭘 입으면 어때?’ 생각하기 쉽지만, 종목에 알맞은 복장은 운동 효과를 높일 뿐 아니라 운동하다 다치는 것을 미연에 방지해준다. 추리닝 같은 펑퍼짐한 옷을 입고 실내운동을 하다가 헬스기구에 옷이 걸려 다치거나 옷자락이 밟혀 넘어지는 경우가 비일비재하다는 것은 이에 대한 방증. 건강하고 젊은 노후를 위해 시작한 운동이 부상으로 얼룩지지 않으려면 체형에 맞는 복장은 필수다.

“노년층 여성과 20대 여성의 체형 차이를 파악하기 위해 각 연령대 여성의 하반신 3D 형상을 만들어 비교했습니다. 나이가 들면 다리 근육은 줄고 엉덩이는 처져요. 복부엔 살이 많이 붙고요. 상체가 꾸부정해지면서 몸의 축이 기울어 배가 더 볼록해지죠. 이러한 특징이 무시된 기존의 레깅스는 복부·밑위·무릎·발목선 등 여러 부위에서 노년 여성과 맞지 않아 불편할 수밖에 없습니다. 이곳저곳 주름이 져 멋스럽지도 않죠.”

이 동문은 ‘3D to 2D 평면화 기법’을 적용, 노년 여성의 신체적 특징을 반영한 원형 패턴을 개발했다. 의류학에서 패턴은 무늬가 아닌 일종의 설계도. 3D to 2D 평면화 기법은 3D 형상의 표면에 하의 패턴 설계에 적합한 기준점 및 기준선을 설정해 삼각 메쉬를 생성하고, 이를 삼각 평면으로 전개한 후 조합해 패턴을 제작하는 방식이다. 3D 형상의 표면 그대로 패턴을 제작해 체형의 특징이 뚜렷이 반영된다.

“옷은 본래 1 대 1 맞춤형이었습니다. 18세기 산업화 이후 대량생산 공정이 확대되면서 사람이 옷에 몸을 맞추는 시대가 됐죠. ‘성인’이란 단일 카테고리에서 ‘사이즈’만 다를 뿐 기성복을 입는 현대의 시스템이 당연시되면서 ‘체형에 맞는 옷’은 그 개념 자체가 희미해졌을 뿐 아니라 산업 측면에서도 간과하는 요소가 됐습니다. 그러나 레깅스를 포함한 기능성 의복인 운동복은 운동 효과와 부상 위험 측면에서 개인의 체형에 맞아야 하는 이유가 명확해요. 제가 개발한 레깅스를 착용했던 피험자들의 얘기를 들어보면, 체형에 잘 맞는 편한 운동복이 운동을 더 하고 싶게 만들기도 하죠. 궁극적으로 고령층 체력 증진에 일조할 수 있을 겁니다.”

노년층 여성에 특화된 이 동문의 레깅스는 아직 출시 계획은 없다. 이화여대에서 학부 졸업 후 4년간 실무 경험을 했던 그가 모교 대학원에 입학한 이유는 연구자의 길을 택했기 때문. 직접 레깅스를 만들어 공급하는 대신 자신의 논문에 지금껏 연구한 자료와 지식을 고스란히 담았다. 논문을 참조하면 업계 종사자 누구나 노년층 여성에 특화된 옷을 만들 수 있을 거라고.

“의학 기술의 발달로 건강한 노년층이 많아졌습니다. 코로나 팬데믹 이후 운동을 희망하는 사람도 많아졌고요. 일반 의류 시장의 성장이 정체된 데 반해, 운동복 판매량은 전 세계적으로 꾸준히 증가하고 있습니다. 노년층 여성의 레깅스 수요는 확인됐지만, 공급은 전혀 없는 상황이에요. 이들을 위한 레깅스 개발 및 공급은 레드오션인 현 의류 산업에서 틈새시장으로서 그 가치가 충분하다고 생각합니다.”

작년 국제의류학회 박사 최우수 논문상도 모교 동문이 받았다. 이수민(대학원17-19) 서울대 생활과학연구소 연수연구원이 그 주인공. 장애인을 위한 손가락 관절 동작을 보조하는 스마트 웨어러블 장갑을 개발했다. 이소현 동문과 함께 박주연(의류93-97) 교수의 ‘웨어러블 인간 공학 연구실’ 소속이다. 국내 대학 최초로 국제의류학회 최우수 논문상을 수상하는 동시에 석사, 박사 부문을 싹쓸이한 박주연 교수 연구실은 인체공학적 패턴을 개발함으로써 의류학과 다른 여러 학문 분야를 융합하는 다양한 시도를 하고 있다.

박 교수는 “미국 대학에서 10여 년간 교수로 재직하던 중 모교의 부름을 받고 후학 양성을 위해 2019년 한국으로 귀국했다. 이번 성과는 학생들이 새로운 연구 주제와 융합적 접근법에 주저하지 않고 열정적으로 따라와 준 덕분”이라고 말했다. 이 동문의 연구는 추후 실증을 거쳐 기술이 더 다듬어지면 연구실 차원에서 상용화를 고려할 예정이다.

나경태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