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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64호 2016년 11월] 인터뷰 화제의 동문

개교 70주년 기념극 ‘법대로 합시다’ 출연 배우 정진영

“하루 공연 위해 두 달 연습…연극은 삶과 부딪치는 기회”


“하루 공연 위해 두 달 연습…연극은 삶과 부딪치는 기회”


20년 만의 연극 무대 복귀
“대학연극의 추억 새록새록”





배우 정진영(국문83-89) 동문이 20년 만에 연극 무대로 돌아왔다. 모교 연극동문회인 관악극예술회와 부설극단 관악극회가 11월 2일부터 13일까지 올린 개교 70주년 기념극 ‘법대로 합시다’를 통해서다. 서울대 총연극회 출신인 정 동문은 1989년 연극배우로 데뷔 후 스크린과 브라운관을 주무대로 활동했다. 영화 ‘왕의 남자’ 연산군 역을 비롯해 ‘황산벌’, ‘국제 시장’, 드라마 ‘브레인’, ‘화려한 유혹’ 등 20여 편의 작품과 시사 프로그램 ‘그것이 알고 싶다’ 진행자로 짙은 인상을 남긴 그다. 이번 연극이 정 동문에게는 여러 모로 ‘홈커밍’의 의미를 가진 셈이다.


10월 20일 충정로 관악극회 연습실에서 정 동문을 만났다. 초저녁부터 ‘법대로 합시다’ 연습이 있던 이날, 정 동문은 빈틈없이 꾸민 스크린 속 모습 대신 소탈한 차림새로 나타났다.


“그동안 스케줄 탓에 관악극회 공연에 참여하지 못했어요. 선배님들과 얘기를 나누면서 이번엔 꼭 해야겠다는 생각이 있었죠. 연출을 맡은 임진택 선배가 7·80년대 현실과 삶에 깊게 뿌리박은 연극의 흐름을 시작하신 분이기에 더욱 끌렸습니다.”


60년대부터 대학가를 풍미한 마당극 역사에서 서울대를 빼놓을 수 없다. ‘마당극’ 용어를 처음으로 쓴 1976년 서울대 총연극회 ‘허생전’ 공연을 시작으로 임진택(외교69-75)·채희완(미학70입) 동문 등이 활약하며 마당극의 전성기를 이끌었다.


그간 왕과 장군, 교수, 검사 등 선 굵은 역할을 주로 맡아온 정 동문은 이번 연극에서 익살맞은 ‘광대’로 분했다. 셰익스피어 원작에는 없는 역으로 “재밌게 놀아보겠다”고 다짐한 그는 흥겨운 춤사위와 입담으로 극을 이끌며 관객들을 들썩이게 만들었다.


“마당극은 80년대 문화운동 단체에 있으면서 몇 번 올렸어요. 학창 시절에는 인문대 연극반에서 무대극을 많이 했습니다. 학생회관에서 주로 공연했지만, 학생 활동이 대부분 금지됐던 80년대였기에 막상 교내에서 연극을 한 기억은 많이 없어요. 워크숍 공연을 준비했는데 학내 행사 불허 처분을 받고 학교 밖 소극장을 하루 빌려 포스터도, 팸플릿도 없이 알음알음 친구들을 불러 공연을 올린 적도 있었죠.”


극단 ‘한강’에서 본격적인 연기 생활을 시작한 그는 ‘부산행’과 드라마 ‘W’에 출연한 김의성(경영84-90) 동문과 전국을 돌며 2인극을 공연하기도 했다. 이후 영화 연출부 생활을 하다 ‘초록물고기’ 단역에 이어 ‘약속’ 출연으로 대중에 이름을 각인시키기 시작했다. 정 동문은 “당시엔 그 누구도 미래에 배우가 된다거나, 예술을 계속 하겠다는 생각도 없이 오로지 연극에 대한 열정만 가득했다”고 추억했다. 세월이 흘러 다시 모인 연극회 동문들에 대해 그는 “나이와 직업, 정치적 이념조차 각양각색인 흔치 않은 조합이지만 우리를 묶어주는 건 젊은 날을 함께 뜨겁게 보냈던 대학 연극의 기억”이라고 말했다.


“연극이란 행위는 요즘 세상에선 효율이 떨어지는 일이에요. 하루 공연을 위해서 두 달을 연습하는 일이죠. 하지만 연극은 몇 달 간 함께 연습하면서 서로의 삶을 정면으로 부딪쳐보는 기회이기도 해요. 20대의 젊고, 어리다고 해도 좋을 푸릇푸릇한 젊은이들이 가장 뜨겁게 만났던 게 바로 대학 연극입니다. 서로 다른 시기에 연극을 했어도 대학 연극이 가지는 공통 특질만큼은 시간을 뛰어 넘는다고 느껴요. 연습도 재밌지만, 끝나고 맥주 한 잔, 엠티 가서 예전처럼 밤새 얘기하는 건 더 재밌습니다.”


어느덧 30년차를 바라보는 배우인 정 동문은 냉철하고 지적인 이미지와 온화하고 소탈한 이미지 모두를 소화해내며 연기에 깊이를 더해가고 있다. 오는 12월 개봉하는 영화 ‘판도라’ 등 꾸준한 활동을 이어갈 예정이다.


박수진 기자